기자명 황보경 기자 (HBK_P@skkuw.com)

우리나라는 ‘한글전용법’이 제정된 1950년대 이후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던 ‘국한혼용’에서 한글만을 사용하는 ‘한글전용’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국한혼용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최근 몇몇 국회의원과 국한혼용 지지단체를 중심으로 ‘한자 교육 기본법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 역시 이와 비슷한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6월 7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는 한자 교육 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는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한자교육을 진행하자는 법안으로서 △표준한자교육 과정 및 프로그램 개발 △한자 교육개발단체 지원 △한자 관련 행사 개최와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우리말의 70%가 한자어인 것에 비해 한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국민의 언어생활에 큰 지장이 있다는 점을 골자로 한다. 법안 지지 측에 따르면 70년대부터 한자 교육이 쇠퇴한 이후로 우리나라 어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민현식 교수는 공청회를 통해 “학생들은 ‘안중근 의사’를 ‘의사’로 착각한다”며 “한자교육 붕괴로 인해 어휘력 향상은 요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한글학회를 비롯한 여러 한글 단체에서 ‘법안 반대 국민 토론회’를 열고 법안 철회 권고문을 내는 등 이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다. 국민이 한자를 잘 쓰지 않게 되면서 교육도 자연스레 축소된 것인데 이를 다시 부활하려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한글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실생활에서 쓰이는 한자어는 30~50% 정도이며, 이것마저도 읽고 쓸 시에는 한글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편할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한국어정보학회 진용옥 회장은 “한자 교육은 암기 교육으로서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에 거스른다”며 이를 반대했다.
그런데 더욱 큰 논쟁은 한자에 대한 기본 교육 확대가 궁극적으로는 국한혼용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법안 지지 측의 한국인문사회연구원 홍일식 이사장은 “대학을 나온 지식인들이 3, 40년 전에 출간된 서책도 읽지를 못한다”며 현 상황은 “전통문화와 역사의 맥이 끊기는 엄청난 재난”이라고 전했다. 나아가 “국한문혼용을 생활화하면 중국, 일본인과의 교류 소통은 물론 우리 문화의 발전과 세계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국한문혼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면 한글문화원의 송현 원장은 법안 반대 토론회에서 “‘초등 및 중등학교 국어 교육…’을 ‘初等 및 中等學校 國語 敎育…’과 같이 쓰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문해 불능’으로 만든다”며 이에 대해 반대했다. 또 많이 이들이 고문헌을 해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옥편을 줘도 팔만대장경은커녕 마을 묘지의 비문도 해석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현재 법안의 찬반 양 측은 타협을 보지 못한 상태로 한 쪽에서는 법안을 추진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를 반발하고 있다. 한자어가 많은 우리나라 말의 특성상 한자 교육의 확대가 국민의 더 나은 언어생활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국한혼용체를 지향하는 것이 우리말의 올바른 발전 방향일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존재한다. 국민의 여론마저 찬반으로 나뉘어 ‘문자전쟁’이라고 불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과 논의가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