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화된 남한어와 북한어, 그 차이점과 변화 요인

기자명 황보경 기자 (HBK_P@skkuw.com)

오는 9월, 북한에 다국적 패스트푸드 기업 KFC가 ‘평양 1호점’을 개설할 것이라는 전망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으니, 바로 순우리말로 바꾼 메뉴 이름들이다. 와플은 ‘구운 빵 지짐’, 햄버거는 ‘다진 쇠고기와 빵’ 등… 재미있는 한편으로는 무척 ‘우리말스러운’ 것이 오히려 생소할 지경이다.

‘와플’과 ‘구운 빵 지짐’, 매우 다르게 보이는 두 단어는 사실 표현 방식만 다를 뿐 같은 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반도가 분단되기 전에는 하나의 언어였던 우리말이 분단을 겪으면서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할된 기간이 짧지만은 않았기에 두 언어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남한어와 북한어는 어떤 차이를 보이며, 차이를 만든 요인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차이, 어휘부터 맞춤법까지
우선 앞서 예를 통해 봤듯 남한어는 많은 외래어를 수용했기에 일상생활에서 외래어를 흔히 접할 수 있는 반면, 북한어는 대부분의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해 사용한다. 그렇지만 북한 내에서는 외래어가 극히 적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만일 국민이 실질적으로는 순화된 말보다도 외래어를 더 많이 쓴다면 어쩔 수 없이 외래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은 북한말로 ‘얼음보숭이’이라는 것이 북한 외래어 순화의 흔한 예로 쓰이지만 실제로는 ‘아이스크림’으로 불린다. 따라서 1992년에 발간된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는 ‘얼음보숭이’가 아닌 ‘아이스크림’, ‘직승기’가 아닌 ‘헬리콥터’등 많은 외래어가 실렸다.
다음으로 분단 직후 남한에서는 두음법칙을 계속 사용했는데 북한은 이를 폐지했다는 것도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따라서 남한어에서 두음법칙에 따라 ‘ㅇ’으로 순화되는 첫머리 ‘ㄴ, ㄹ’이 북한어에서는 △락동강 △리영희 △랭장고처럼 그대로 쓰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에서 이러한 발음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는 점인데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고영근 명예교수는 저서 『북한의 언어문화』를 통해 “인위적인 언어규범이 발음변화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또한 북한에서의 ‘동무’와 남한에서의 ‘동무’가 다른 것처럼 다른 사회적 이념 때문에 동일한 어휘가 남북한에서 각기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궁전’은 ‘어린이들이나 근로자들을 위하여 여러 교양 수단들과 체육ㆍ문화 시설 등을 갖춘 크고 훌륭한 건물’을 뜻한다. 또 ‘천리마’는 ‘인민들의 혁명적 기상’을, ‘예술’은 ‘기술과 수련’을 가리키며 ‘아가씨’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빨치산’에는 혁명적 영웅을 가리키는 긍정적 의미가 내포돼 남한에서 쓰이는 동일한 어휘의 의미와는 크게 다르다.

‘하나’가 ‘둘’이 된 이유
분단 이전, 우리말 연구는 주시경의 제자들이 창립한 ‘조선어학회’가 도맡았으며 이들은 △맞춤법 제정 △표준말 사정 △외래어와 로마자 표기법 마련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연구를 진행했다. 그런데 광복 이후 분단의 상황을 겪으면서 학회의 연구원들도 남과 북으로 갈라섰는데 이때 조선어학회의 주요 연구원 중 다수가 북한으로 갔다.

조선어학회 회원들

이후 북한은 분단 직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맞춤법을 대부분 그대로 계승했는데 이에 대해 고 교수는 저서에서 “북한 어학자들이 조선어학회의 중진회원이었고 주시경의 수제자인 김두봉이 북한 권력의 내부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남한에서도 조선어학회가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활동을 지속해나갔으며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가 대학 학과로서는 최초로 발족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우리말 연구가 이뤄졌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남한은 정부가 직접적으로 언어문제를 다루지 않는 데 비해 북한에서는 언어를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위한 필수적 토대라고 생각하며 국가 차원에서의 시도를 해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아래에는 사회적 이념 차이라는 중대한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언어학적으로 북한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언어이론을, 반면 남한은 ‘기술언어학’과 같이 미국과 유럽의 언어이론을 수용했다. 특히 『북한의 문법 연구와 문법 교육』에 따르면 북한이 수용한 유물론적 언어이론은 “언어를 토대 위의 상부구조로 간주하는 것”으로서 “언어의 변화를 경제의 발전, 쇠퇴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띄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북한은 이를 기반으로 ‘주체적 언어이론’을 탄생시키는 등 혁명에 있어 언어의 역할을 매우 중시했다.

이렇듯 이념적 차이가 분화시킨 같지만 다른 두 언어는 결국 ‘두 개의 우리말’이다. 그러나 이는 결과만 놓고 본 것일 뿐, 사실 두 언어가 밟아간 과정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남한에는 ‘한글순화운동’이, 북한에는 ‘문화어운동’이 있었던 것이나 양국 모두 한자 사용을 폐지하고 한글전용을 실시한 점 등에서 그렇다.
따라서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북한말을 접했을 때 느낀 이질감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