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극적인 하룻밤>

기자명 서준우 기자 (sjw@skkuw.com)

이다 엔터테인먼트 제공
눈길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제목과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는 타이틀. 이 둘을 통해 젊은 남녀의 가볍고 충동적인 하룻밤 불장난을 예상했다면 그 기대는 틀렸다. 연극 속에는 다만 사랑에 버림받고 방황하는 두 명의 남녀가 등장할 뿐이니까.
주인공 정훈과 시후는 각각 옛 애인끼리의 결혼식에서 만난다. 둘은 자신들에게 상처를 준 옛 애인의 결혼식에 와버리고, 잠시 통쾌한 복수도 생각해보지만 그들의 웃는 모습에 이내 분노가 누그러지는 마음 약한 사람들이다. 이런 배경이 전제로 깔려있음을 감안한다면 처음 만난 두 남녀가 보낸 충동적인 하룻밤이 이 연극에서 진짜 하고자하는 얘기가 아님을 눈치 챌 수 있다.
뒤 배경이 어찌됐든, 두 남녀가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낸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게 된 시후는 자신을 좀 더 바닥으로 내던지기 위해 정훈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정훈은 시후의 태도에 크게 당황해 뿌리치려 하지만 결국 술이 화근이 돼 자신의 집에 그녀를 들이고 만다.
‘막장’에 불과하던 둘의 관계는 시후가 바닥까지 이르고 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약을 먹고 죽으려 하는 순간부터 변화를 맞는다. 자살을 만류하는 과정에서 정훈과 시후는 서로의 사정과 아픔을 공유하게 되고 채 아물기 전인 마음으로 새로운 끌림을 느낀다. 시후는 정훈을 통해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다시 그 집을 찾아가지만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된 정훈은 시후를 받아들이는 것이 두렵다. 결국 또 하룻밤을 함께 한 날 밤. 정훈은 서로의 연락처를 지우고 1년 안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정말 인연이라 생각하자는 말로 시후를 떠나보낸다. 몇 개월 후 시후의 옛 애인이자 정훈의 친구인 준석의 장례식장에서 재회한 둘은 서로에게 느낀 감정이 진심이었음을 확인한다.
이 이야기를 글로만 표현했다면 마냥 슬픈 내용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가 연방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에 관객은 슬플 겨를이 없다. 정훈과 시후의 심리도 이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실연으로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그로 인한 슬픔을 그대로 표출하지 않고 처음 만난 이성과의 가벼운 하루짜리 관계를 통해 무마시켜 보려 한다.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둘은 더 본질적으로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방법, 새로운 사랑을 발견한다. 정훈과 시후는 똑같은 시기에 실연을 경험했고 그들을 버린 상대가 누군지도 잘 알고 있다.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둘은 서로에게 있어 가장 훌륭한 치료제가 되어줄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연극은 우연한 만남으로 이뤄진 하룻밤의 인연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장관리니 원나잇스탠드니 하는 말이 난무하는 우리 세대에게 연애란 과연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닌 단어일까. 과연 우리는 그것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가닿기를 원하고 있기는 할까. 정훈과 시후의 이야기를 일반화해서 이 질문에 대답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 둘이 원한 것은 단지 하룻밤을 함께 보낼 상대가 아니라 깊게 패인 사랑의 상처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기에. 진짜 사랑을 바라는 잠깐의 가벼움이었기에.

 

△공연명:<극적인 하룻밤>
△공연일시:2011년 9월 18일까지
△공연장소:아트원시어터 2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