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보이체크>

기자명 정재윤 기자 (jjjj67677@hanmail.net)

(재)국립극단 제공
강의실을, 도서관을, 영어 학원을 바쁘게 뛰어다니는 당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지만, 언제나 불안하지는 않은가? 
연극 <보이체크>에는 당신과 매우 비슷한 주인공이 있다. 텅 빈 회색빛 무대. 막이 오르면 비쩍 마른 파리한 안색의 남자가 무대 위를 분주히 뛰어다닌다. 남자는 무척 초조해 보인다. 그의 이름은 보이체크로 독일의 가난한 병사다. 그는 애인인 마리와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먹여 살리느라 애를 쓴다. 마리와 아기는 보이체크가 힘든 삶을 견뎌야 하는 이유이자 원동력이다.
그의 상사인 소장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보이체크를 ‘도덕이 없다’라고 비난하며 거들먹거린다. 게다가 보이체크는 돈을 위해 자신의 몸을 의학 실험대상으로 팔아넘겨 의사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 의사는 보이체크를 감정을 가진 인간이 아닌, 실험대상으로만 취급해 그를 소외시킨다. 인간을 당나귀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장기간의 실험 때문에 보이체크는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며, 연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던 중 자신이 보물처럼 아끼는 여자 마리가, 보이체크와는 달리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고적대장의 유혹에 넘어가자 보이체크는 마리를 찌르라는 환청을 듣고 그녀를 살해하고 만다.
“옛날에 불쌍한 어린아이가 있었더란다. 세상 만물이 다 죽고,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그래서 그 아이는 하늘나라엘 올라가려고 했어. 그런데 달님에게 가보니 달은 한쪽이 말라 썩은 나무였더란다. 다음날엔 해님에게 갔대.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해님은 시들은 해바라기였다나. (중략) 그래서 다시 땅으로 내려오려고 하니 지구는 엎질러진 요강이 되어있던 거야. 아이는 혼자서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지. 지금까지도 혼자서 울고 있단다.” 마리가 고적대장의 유혹에 넘어간 후, 극에 등장하는 옛이야기다. 이 동화는 세상에 시달리고 마리에게마저 배신당해 의지할 곳이 없는 보이체크의 가련한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보이체크는 단순히 마리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죽인 것이 아니다. 그의 비인간적인 삶에서 가족은 최후의 ‘인간적인 어떤 것’이었다. 보이체크는 마리의 불륜이 그에게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삶을 파괴했다는 분노로 마리를 죽인 것이다.
가만 보면 오늘날 우리의 삶이 보이체크의 처지와 다를 것이 없다. ‘88만 원 세대’는 이제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다. 대학 문턱을 밟자마자 학점 관리와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지만, 졸업하고도 비정규직으로 평균 88만원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는 세대. 우리 20대들은 보이체크만큼이나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노력한 만큼 보상받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타인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왔다. 그렇지만 순식간에 불필요한 잉여인간으로 전락해 낙오자가 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아마 그러한 일일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은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것 말이다. 우리가 170여 년의 시간을 넘어 보이체크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2011년 우리의 삶이 1879년 보이체크와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명:<보이체크>
△공연일시:2011년 9월 10일까지
△공연장소: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