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억수씨 만화가

기자명 정송이 기자 (song@skkuw.com)

‘가족이란 뭘까. 사랑..? 음. 지겹고 구차하고 구질구질하고 아름답지 못한 사랑. 그래도 사랑’, ‘너희들은 낭만이 없다’. 다소 발칙한 대사를 하는 만화가 있다. 그리고 만화가가 있다. 만화라는 그릇에 현실을 담아내는. 억수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 우리 학교 중국 철학과를 졸업한 웹툰 작가 남준석씨가 그 주인공이다. 때론 가족을 주제로, 때론 행복을 주제로 고달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은 그의 만화는 재밌지만 아프고, 웃기지만 잔인하다. 작품에 그대로 감정 이입된 독자들은 만화가 그려내는 현실적인 현실에 울고 웃는다. 만화같은 현실과 현실같은 만화 사이를 오가는 그를 만났다.

# 만화, 다가와 스며들다

■ 시작이 궁금하다
어렸을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어요. 노트에 계속 끼적이다가 어느 순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끼적임에서 직업으로, 멈추지 못하게 하는 만화의 매력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선 만화는 재밌어요. 재밌는 것도 매력이지만 또 다른 매력은 접근성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만화에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인 것 같아요.
■ 오히려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화 자체가 가벼운 재밋거리로 여겨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런 시선이 좋아요. 저는 만화가 가벼워야 한다고 봐요. 가볍게, 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더 대중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권이나 성폭력 같은 무거운 주제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요. 그게 만화의 힘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 인기작가로 불리는데, 인기작가임에도 힘든 점이 있다면
그다지 인기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경제적인 부분이 힘들긴 하지만 그 부분은 항상 그러려니 해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아요. 문제는 작품이죠. 작품에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잘 안 그려질 때가 가장 힘들어요. 주인공이 겪는 일을 통해 사회가 이렇구나 하는 것을 전해야 하는데 그걸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그리는 것이 힘들죠. 스스로의 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힘듦에도 손을 멈추지 않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막 시작했을 때 힘들어도 멈추지 않았던 건 그때 해야 할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말은 마치고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힘들어도 계속하는 이유는 만화를 제 직업으로 삼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내 만화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계속해야 하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손을 움직이는 힘인 것 같아요.
■ 독자들이 때론 힘이 되지만 반대로 아닌 경우도 있을 텐데, 악평을 들을 때는 어떤지
처음으로 일단은 상처받죠. 그리고서 생각하죠. 수긍되는 부분은 받아들여요. 사실 악평에 많이 단련된 편이에요. 그리고 악평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아요. 오히려 악평이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 만화하길 잘했다 싶었던 적이 있는지
굉장히 미인인 팬이 포옹해달라고 했었어요. 그래서 안아드렸지요. 그 때 좋았어요. 다른 것은 연옥님 작품을 5년 연재했는데, 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내 만화를 따라와 주시는 분들을 보고 잘했구나 싶었어요. 가끔 진심을 담아서 힘이 났다는 글들을 볼 때는 ‘아, 내가 가치가 있구나, 잘했구나’ 느끼면서 뿌듯해요.

# 묻다, 감춰진 당신의 생각

■ <30>이라는 작품에서 나이가 중요하게 그려지던데, 나이를 먹는 것의 의미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진짜 어렵네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29세랑 30세의 시기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뭔가 내가 바뀌고 변하는구나 느껴요. 고정관념이 생기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고. 20대는 사회에 격리된 느낌이었는데 30대는 이제 사회의 주체가 되고, 또 발을 담가야 하는 전환점인 것 같아요.


■ <연옥님이 보고 계셔>에서 전교 1등 진수는 코피 때문에 수능을 망친다. 마냥 착한 진수아빠는 어쩐 일인지 감옥에 들어간다. 마냥 행복한 만화를 그리지 않는 이유는
나는 행복한 것만이 재밌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감동, 슬픔, 분노, 좌절 같은 감정의 동요가 재밌는 것이 아닐까요. 하하, 하고 웃기고 행복한 결말만이 재밌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것을 보고 느낌을 가지고 생각하게 되면 그게 재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에 그게 반영된 것 같아요.
■ 작품 속에서 돈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운다. 행복에 돈이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 하는가
네. 돈이 있으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돈은 중요해요. 다만 주의할 점이 있어요. 돈은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돈이 우선순위는 아니라는 것이죠. 스스로 우선순위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한 대학생이 휴강해서 좋다는 댓글을 다셨는데, 그 아래 한 시간에 돈이 얼만데 휴강했다고 좋아하냐 라는 댓글이 달렸어요. 아, 돈이 커져버렸구나 싶었어요. 등록금이 1000만원에 육박한다니 돈을 우선순위로 삼을 수밖에 없는 학생도 있겠죠. 그래도 돈 때문에 행복을 놓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우선순위를 고민해 봤으면 해요.
■ 별책부록에 독자들이 고민거리를 보낸다. 성폭행, 이별, 가족사 등 감춰두고 싶은 말들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그런 걸 본인에게 털어놓을 때 무슨 생각이 드나
한편으로 왜 그러지 싶어요. 마땅히 나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언도 잘 하지 못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계속 털어놓는 이유는 그저 들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연을 읽고 있으면 괴로워요. 사연 하나하나가 편한 것이 없어요. 굉장히 힘들지만 그래도 계속 털어놔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죠.

# 대학생에게, 萬話

■ 대학생을 연어에 비유하셨다


내 생각이 전적으로 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냥 내 생각을 말해볼게요. 연어는 본능적으로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오르잖아요. 대학생들을 보면 본능적인 것처럼 열심히 하는 듯해요. 다른 말로 하자면 왜인지는 모른다는 거죠. 그냥 남들이 하니까 안하면 불안해하는 것 같달 까요.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열심히 거슬러 올라야 하겠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알면 좋겠어요. 그 얘길 하고 싶었어요.
■ 사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분명 왜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분들도 있겠죠. 어떤 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아요.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요즘은 느껴져서 얘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요. 그래도 그냥 ‘꿈을 꾸십시오, 이러한 현실을 20대의 패기로 이겨냅시다’ 할 수는 없잖아요. 자신에게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 20대의 패기로도 이겨낼 수 없는 벽이 있는 요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이 듣고 싶다
교수님이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너희들은 외롭다고. 그러므로 동료를 만들어라 라고. 우리가 연애에 목을 매는 이유도 외롭기 때문 일거라 하셨어요. 아닐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함께하는 이가 있으면 더 낫다는 거. 동료를 만들어서 외롭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동료가 있다면 벽을 넘는 것도 가능해 질지도 모르잖아요.
■ 대학생이 읽으면 힘이 될 만화가 있을까
대학생이라고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만화는 없어요. 그냥 모두에게 추천하자면 복싱만화 ‘보이즈 온더 런(Boys on the run)’이에요. 주인공이 완전 찌질해요. 여자 앞에서 굴욕을 당해서 시작하지만 끝까지 찌질해요. 하지만 거기서 젊음, 그리고 현실이 느껴져요.

# 그, 나아간다

■ 꼭 다루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택시 운전사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아 재밌을 것 같아서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 매력적이지 않나요?
■ 앞으로의 목표나 꿈이 있다면
현실적인 부분이에요. 집을 가지고 싶어요. 이유를 설명하자면, 집은 보금자리예요. 그 말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말로는 어떤 것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의 목표는 집을 갖는 것이에요. 다른 목표는 작품을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끝내는 것, 그리고 만화를 계속 그려나가는 것이에요. 그걸 이루기 위해 내일도 저는 스토리를 짜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