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약 속 성분인 비소 먹는 생명체 발견… 학자들 설왕설래

기자명 김은진 기자 (eun209@skkuw.com)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살충제로 끓인 국 △플라스틱 무침 △고무줄 볶음… 너무 끔찍한 반찬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먹을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을 먹고 사는 생명체가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6대 필수 원소에는 산소(O), 수소(H), 인(P), 질소(N), 탄소(C), 황(S)이 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이들을 이용해 △단백질 △지방 △DNA의 핵산쪹을 형성하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작년 12월, 미항공우주국(이하 NASA)에서는 살충제와 제초제로 이용되는 비소(As)라는 유해성 원소를 인 대신 먹고 사는 박테리아 ‘GFAJ-1’이 지구 상에서 최초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박테리아 GFAJ-1   ⓒJodi Switzer Blum

NASA의 연구원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모노 호(Mono Lake)에서 GFAJ-1을 발견했다. 알칼리성인 모노 호에는 비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연구진은 인의 양을 평소보다 100분의 1만큼 줄인 후 비소가 많은 환경에서 GFAJ-1을 배양했다. 그 결과 GFAJ-1은 무리 없이 자랐다. 생명체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양보다 훨씬 적은 양의 인을 넣어줬음에도 GFAJ-1이 생명을 유지했기 때문에 연구진들은 GFAJ-1이 인 대신 비소를 먹고 자란다고 결론지었다.
연구 결과는 발표와 동시에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지에 실렸으며 전문가들은 이를 ‘우주 생물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연구 결과’라 평가했다. 비소는 생명체의 활동에 해를 준다고 여겨졌는데 GFAJ-1은 오히려 이를 이용해 생명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지구 생명체 중 필수 6대 원소 외의 원소로 대사활동을 한 경우가 없었는데 GFAJ-1이 최초로 다른 물질로 대사활동을 했으므로 기존의 생명체에 대한 틀을 깼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외계 생명체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까지는 6대 원소를 보유한 행성에서만 탐사가 시행됐는데 GFAJ-1의 발견은 탐사의 범위를 넓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아직은 논란이 뜨겁다. 우선 연구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존에는 인이 포함된 생체분자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 질량분석기와 같은 장비를 이용했는데, 이번 연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GFAJ-1은 비소로 대사활동을 할 때 액포의 크기가 1.5배 정도 커지는데, 이것은 독성물질인 비소를 가둬두기 위해서이지 비소를 영양분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액포란 세포질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물질들을 받아들여 가수분해하거나 무해한 물질로 바꾸는 작용을 하는 세포 기관으로 이른바 ‘만능 창고’ 역할을 한다. 즉, GFAJ-1은 비소를 섭취해 실질적인 대사 활동에 사용하기보다는 액포에 비소를 저장하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모노 호수 ⓒrichardfde
이러한 논란에 대해 우리 학교 이종호 교수(생명)는 “미지의 물질을 밝히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 지식의 범주 내에서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전문가들이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비판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또 “다소 논란은 있지만 획기적인 발견”이라며 “관심을 갖고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새로운 발견에는 많은 논란과 걱정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비판과 고찰을 통해 과학은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해왔다. 비소생명체 GFAJ-1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우리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1%만을 알고 있을 뿐, 나머지 99%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이 연구로 인해 새로운 생명체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GFAJ-1의 발견이 우리가 여태까지 몰랐던 미지의 생명체의 가능성을 넓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GFAJ-1과 같이 새로운 생명체에 대한 관용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