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함, 그 허무의 미학이여
난해함, 그 허무의 미학이여
  • 황보경 기자
  • 승인 2011.09.15 14:12
  • 호수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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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중, 한 독자가 물었다. “이 작품을 세 번이나 읽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작가님께서 접근법 하나만 제시해주실 수 없을까요?” 그러자 작가는 대답했다. “그럼 네 번 읽으십시오.”

W. W. Norton & Company, 1993
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세 번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kner)가 1929년에 쓴 소설 『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였다. 위 일화는 이 소설이 독자에게 얼마나 난해하게 느껴지는지, 반면 작가는 소설에 얼마나 큰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음향과 분노』는 미국 남부에 사는 콤슨 가(家) 식구들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첫 장부터 난해함이 예사롭지 않다. 누군가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데 여기에는 논리도 순서도 없다. 마침표가 생략되는 것은 예사거니와 의미 없는 띄어쓰기에 심지어 시간의 순서마저 부분적으로 뒤엉켜 있다.
사실 1장의 내용은 3살의 지능을 가진 25살 막내아들 벤지의 의식이다. 과연 세 살짜리 아이가 글을 쓴다면 이런 느낌일까? 시공간을 초월해 무작정 흘러가는 그의 의식은 그저 외부에서 오는 감각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만 이뤄져 있다. 결국 1장은 독자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후 제멋대로 끝나버린다.
그러나 혼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우울증 말기 환자, 첫째아들 켄틴이기 때문이다. 독백의 수준이 조금 높아졌을 뿐 “시계는 칼라 상자 셔츠의 칼라만 넣어두던 상자.” 혹은 “나가 말했다” 등 문법은 여전히 무시된다. 여기에 심각한 우울함과 나락으로 떨어지는 망상까지 더해져 독자는 괴로울 지경이다.
소설이 난해함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원인은 바로 이러한 서술 방식이었다. 독자는 소설의 반을 읽어도 줄거리는커녕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3장을 기점으로 소설은 반전되기 시작한다. 온전한 의식을 가진 인물인 둘째 아들 제이슨과 하녀 딜시가 다음 장을 이어나가며 앞서 나왔던 난해한 사건들을 ‘해설’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4장은 1장의 시작 직전으로 돌아가 객관적 서술을 통해 사건을 다시 한 번 제시하는데 이를 통해 앞서 맥락 없는 의식들은 비로소 그 의미를 갖게 된다.
윌리엄 포크너 ⓒPerecoba

이에 따라 드러나는 소설의 줄거리는 콤슨 가가 몰락해가는 과정이었다. 각 장은 각기 다른 인물이 자신들의 시점으로 이끌어나가지만 모든 이야기가 딸 캐디와 그녀가 낳은 사생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한 남자와 교재 중 사생아를 낳게 되고 이를 수습하려 은행장과 결혼하지만 그에게서도 버려지고 이후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을 산다. 또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건강을 잃고 괴팍해진 어머니, 우울증을 앓다 자살한 큰 형 등 캐디와 그녀의 가족들이 타락함에 따라 콤슨 가도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읽기 어려운 소설을 통해 작가 윌리엄 포크너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콤슨 가를 통해 몰락하는 미국 남부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남부 지역에 매우 큰 애정을 갖고 있었지만 그 당시 남부에서는 지나친 인종차별로 흑인들이 매일같이 박해를 받았고 동시에 비인간적인 노예 제도까지 만연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남부는 작가가 사랑했던 전통과 가치관을 점점 잃어 갔던 것이다.
난해한 접근법 또한 남부의 타락을 지켜보는 그의 허무함의 표현이었다. 시간을 정지해놓은 채 콤슨 집안 의 몰락을 네 개의 시점으로 한번에 보여줌으로써 허무함을 극대화했다. 책의 제목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Macbeth)』의 마지막 대사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음향과 분노로 가득 찬 백치의 이야기”에서 인용했다는 사실 또한 이를 드러낸다.
글을 읽으며 논리를 찾으려 애쓰거나 냉소적인 무시로 일관한다면 소설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초반에는 선로를 한참 벗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도 참을성 있게 따라가다 보면 순수함, 우울, 희망과 같은 인간의 본성이 나타날 것이며 결국엔 남부 마을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까지 194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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