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남현준 공연예술가

기자명 김희연 기자 (ohyeah@skkuw.com)

팝핀현준의 몸동작은
마디마디가 로보트처럼 끊어졌다가
부드러운 물결을 만들어낸다.
춤 깨나 추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만한 그,
팝핀현준을 만났다.

지민섭 기자 jms2011@

#1.춤에 빠져 힘든 어린 날
라면 먹기도 힘들었던 그때
차비마저 없던 난 연습실
난롯가에서 잠을 잤죠.
근데 눈을 떠보니 지금
이런 음악에 맞춰서 제가
끝내주는 춤을 추고 있는 거에요
노래 〈Don’t Stop〉 에서

■ 팝핀이 무엇이고 왜 추게 됐나
스트리트댄스인 올드스쿨 춤 중 하나입니다. 근육의 이완 혹은 수축을 통해 몸을 튕겨 뻣뻣하거나 부드럽게 보이도록 해요. 팝핀을 추게 된 건 초5 때예요, 박남정 씨가 TV에 나와 로보트 춤을 췄는데 굉장히 멋있어 보여서 그 때부터 추기 시작한 거죠.

■ 관객에게 처음 춤을 선보인 것은
첫 무대는 초5 때 수학여행에서였고요.(웃음) 정식으로 무대에 선 것은 17살 때 가수의 댄서로 방송에 나온 거예요. 그 땐 떨리기도 했지만 내가 주인공이 아닌 백댄서의 입장이라 무엇보다 재밌었어요. 그리고 99년도 국제힙합페스티벌이라는 세계 대회가 한국에서 열렸었는데, 제가 한국 대표로 참가를 해 메인 솔로로 처음 무대에 섰죠. 그러고 일본팀과 배틀에서 이겼는데 긴장도 됐지만 굉장히 뿌듯했어요. 그 때 신문에 제 사진과 함께 ‘한국의 댄서가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라는 기사가 조그맣게 났었어요.

■ 3년간 노숙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집이 부도가 나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집도 없어졌고, 학교도 못 다니게 된 상태가 돼서 스스로 앞가림해야 하는데 너무 어렸거든요. 고1이었으니까. 그냥 길에서 자고 음식을 주워 먹기도 했어요. 나쁜 짓도 많이 했죠. 무전취식 같은 거. 친구들도 절 피했어요. 1년 내내 똑같은 옷 입고 머리도 안 감으니까 더럽죠. 그래도 재밌게 지냈어요. 하루는 추워서 트럭 뒤 천막 안에 들어가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88도로를 달리고 있는 거예요. 서울역에서 차를 탔는데 안양까지 간 거죠. 그래서 다시 버스타서 돌아오고.(웃음) 사람 인생은 수레바퀴예요. 저 밑에서 저 위로 올라가는 거거든요. 밑에서 시작한 사람은 위에서 다시 밑으로 내려간다 해도 또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알아요.

■ 그 때 춘 춤과 지금 추는 춤이 다르나
퀄리티는 다르죠. 마음은 똑같아요. 행복하다는 거. 춤을 추는 것 자체는 저한테 어떤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절대로. 우리가 눈을 깜박이거나 숨을 쉬는 게 노동이라고 생각 안 되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듯이.

 

#2.댄서라고 무시당했죠
그럴때마다 난 눈물을 삼켰죠
땀처럼 눈물을 닦아 냈죠

■ 드라마 ‘오버더레인보우’에서 만종역을 맡았는데 ‘백댄서? 무대에 앞뒤가 어딨어’란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제가 일기에 쓴 말이에요. 작가가 제 일기를 참고해서 대본을 만들었거든요. 실제로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무대에 앞뒤가 어딨습니까. 근데 저는 사실 춤추는 애들이 항상 불쌍하고 가난하게 그려지는 것은 불만입니다. 유복한 애들도 많아요. 저는 스승님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주노 형이라서 정말 많은 혜택을 누렸어요. 비싼 옷도 입고 일본 유학이나 미국 댄서들 초빙 같이 돈 많이 드는 일도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 주셨죠.

■ 한국의 팝핀 1세대로서 힘들었던 점은
옛날엔 저희 차림새를 보고 경찰이 풍기문란으로 잡은 적도 있었어요.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 택시가 피해가기도 했어요. 또 발레나 현대 무용하는 사람과는 좀 다른 대우를 받죠. 저희 춤은 불량 학생들이나 추는 춤이라고 무시를 많이 받아요. 아직도 비보이 공연은 ‘공짜로 볼 기회가 생기면 보고 아님 말고’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길거리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대학교에도 부전공도 아닌 전공과목으로 실용무용 비보이학과라는 게 있는데 졸업했다 한들 나가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현대무용, 발레리나, 소수의 재즈 아티스트 등을 제외한 나머지 댄서는 정말 직업인으로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해요. 법적으로도 의료보험 같은 4대 보험을 보장받지 못 하고요. 팝핀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문화가 꽃피우기 힘든 것 같아요.

■ 비보이의 옷차림과 대비되는 게 양복. 춤을 추다가 양복을 입게 되는 친구들도 많았나
춤을 관두고 양복 입은 친구들이 굉장히 많죠. 저도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있었죠. 그런데 꿈을 이루려면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 배는 더 노력해야 돼요. 현실이 얼마나 냉정한데요. 그런 걸 이겨내야 해요. 저는 춤을 추는 동안 아버지가 암에 걸려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관절이 다 닳아서 다리를 거의 끌고 다니면서 파출부 일을 하셨어요. 그런데도 저는 춤만 췄어요. 여자친구도 안 만나고요. 인생에서 10여년을 아무 것도 안 하고 춤만 춘 거예요. 저한테는 춤이 그만큼 중요했었거든요. 돈이 없고 배가 고파도 춤 출 수 있는 팔다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춤 하나만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초청받고, 청와대에도 다녀오고, 교수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겁니다.

 

#3.이 음악을 멈추지 말아요
어릴적 내꿈의 내가 될 수 있고
춤을 추면서도 돈도 벌 수 있고
춤에 빠져 내가 행복할 수 있게

■ 춤이라는 창작활동에 어떻게 영감을 얻나
어렸을 땐 뮤직비디오나 외국 댄서가 춤을 췄던 모션 같은 자료를 많이 봤고요. 바퀴벌레 춤은 일상생활에서 영감을 받은 거고. 그리고 팝핀이 마임과 비슷한 점이 있어요.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재밌는 게 있으면 따서 하기도 해요. SF영화에도 영감을 받아요. 트랜스포머에서 나오는 음향 효과나 범블비가 변신할 때 모션 등을 보고 영감을 받아요.

■ ‘나는 가수다’에서 조관우 씨와 호흡을 맞췄는데
관우 형 노래가 느린 편이잖아요. 사람들은 음악이 신나고 박자가 빨라야 춤을 출 수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노래만 봐도 느린 음악의 가창력이 훨씬 더 잘 들리잖아요. 춤도 마찬가지예요. 느린 음악에 춤을 추는 게 더 어렵고, 또 잘 춰내면 정말 좋은 춤이 나와요. 사실 ‘나는 가수다’에서 공연할 당시엔 춤동작을 좀 작게 하거나 더 뒤에서 춰 달라는 제작진의 요청 때문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어요.

Ⓒ박애리

■ 다른 장르 연계한 공연을 많이 하는데
같이 하면 윈윈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원래 비보이는 젊은 사람의 문화고, 클래식이나 국악 같은 건 교양 있는 사람들의 문화라는 생각이 뿌리 깊잖아요. 근데 이 두 문화가 만나면 우리는 격이 올라가는 거고, 클래식이나 국악은 종래의 지루하다는 평을 깨고 좀 더 재밌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 2년 전 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했는데
대학에서 예술 경영을 공부하려고요. 제가 아티스트면서 회사도 운영하거든요. 하다 보니 이 쪽 분야는 제가 1세대니까 밑에는 다 동생들이예요. 그럼 제가 어떻게 경영을 하느냐에 따라 후배들이 잘 살 수 있을지가 결정되잖아요. 그래서 제대로 배워서 후배가 잘 풀어갈 수 있을 만한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예술 경영을 배우자고 생각했어요.

■ 춤에 어떤 걸 담고 싶나
진실함이요.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한, 슬픔, 혹은 흥겨움 등을 진실되게 담아내서 고스란히 느껴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제 춤에는 박수를 유도하기 위해서, 또는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좋아서 춘다는 진실함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춤 춰서 돈 버는 것과 돈 벌기 위해 춤추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요즘엔 춤이 그저 하나의 상품 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춤이 ‘일’이 된다는 게 싫어요. 말 그대로 ‘돈을 위해 춤추는 상황’을 원치 않아요. 그냥 저는 무대에 서고 싶을 때 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
공연을 기획하고 있어요. (부인이 판소리를 하니까) 한국 전통 소리와 젊음을 대표하는 힙합 문화를 엮고자 합니다. 기존에 했던 것처럼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춤추는 식과는 달라요. 예를 들어 판소리 흥부가에 박타는 타령 보면 정말 랩같이 계속 이어지거든요. 그런 소리에 맞춰서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아요.

■ 제2의 팝핀현준이 되고자 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하나만 고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루브, 바운스, 재즈, 힙합과 같은 기본이 될 수 있는 춤은 다 배워야 해요. 댄서는 무대 위에서 사람들과 춤으로 교감하고 대화해야 해요. 하나만 잘 하면 15초 이상을 볼 수가 없고 두 번 세 번 볼 수가 없어요. 지루하고 뻔하니까요. 그리고 혼이 있어야 해요. 찰리 채플린의 개그가 재밌으면서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 사람만의 혼이 담겼기 때문이에요. 춤도 왜 그렇게 움직이는 지 이유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