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기업 정년 평균 57.3세… 세계적으로도 정년 연장 움직임 일어

기자명 양명지 기자 (ymj1657@skkuw.com)

ⓒ에덴요양병원
‘마(魔)의 10년’ 피해 정년 늘리기
정년 연장과 관련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미 영국 정부는 올 상반기부터 퇴직 제도를 없앴고 연금 수급 연령을 현행 60세에서 66세로 늦추는 방안을,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도 만 60세에서 65세로 정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21일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녹색성장 정상회의 2011’에서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우리나라에 장기적으로 정년제 폐지를 권고했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점진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렇듯 국내외적으로 정년을 늘리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는 수명이 연장된 만큼 은퇴기간도 길어져 노후자금의 규모 또한 부담스럽게 커졌다. 이른바 ‘마의 10년’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늘어나는 수명과는 반대로 점점 앞당겨지는 은퇴 때문에 연금혜택을 받기 전인 55~65세에는 생계유지가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고정적 수입을 가져다주는 일자리는 최고의 노후 보장책이다.
국내에서 정년 연장에 관한 논의가 불거진 것은 1955~63년생인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이 시작된 시점부터다. 정부는 앞으로 10년 간 상용직근로자를 중심으로 약 1백 5십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 근로자가 퇴직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들의 국민연금 가입 비율은 절반 수준이고 연급 지급 대상이 되는 60~65세 전에 퇴직할 경우 수급까지 공백 기간이 생기게 된다.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을 들어놓지 않은 이들의 경우에는 당장 생계를 꾸리기조차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이들이 수 없이 신청하는 것이 조기노령연금인데, 이는 10년 이상 보험료를 낸 사람이 60세에 받을 연금을 55~59세에 당겨 받는 제도로 나이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하지만 이 제도를 인정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고 당겨 받는 데 따른 손실을 감수해야 해 이상적인 노후대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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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성화 vs.
젊은층과 취업 경쟁

정년 연장은 크게 △근무 연장 △재고용 △정년 상향의 세 가지로 나뉜다. 근무 연장은 회사가 기준을 정해 대상자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근로조건은 전과 동일해야 한다. 재고용의 경우 회사가 대상자 선택 기준을 정하고 근로조건 변경도 가능하지만 조건 미 충족 시 재고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정년을 상향 조절하는 것은 숙련된 근로자를 계속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직원 전원을 무차별적으로 고용해야 하고 임금·퇴직금 등의 부담이 크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년 상향보다 계속 고용이 더 많이 채택되고 있다.
한편 정년 연장은 정부와 중장년층 노동자에게 희소식이다.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는 노년층의 경제활동을 보장함으로써 연금수급연령을 늦추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노동자의 경우에도 마땅한 일자리 없이 보내야 하는 기간이 짧아져 경제적 부담이 덜하다. 근무 연장의 한 가지 방법인 임금피크제(salary peak)는 퇴직 전 몇 년간 임금을 점차 줄이면서 정년을 늘리는 일종의 일자리 나누기 제도다. 고령화의 심화에 따라 지난 2007년 정부가 내놓은 이 제도는 중장년층 근로자의 기존 직위를 박탈하고 새로운 보직을 배정한다. 현장 근무가 많은 기업의 경우 중장년 근로자들은 숙련된 기술을 활용할 수 있고, 청년층은 지방 근무를 기피하기 때문에 제도 적용 당사자들의 불만이 적다.
선진국에서 정년 연장은 일반적 현상이다. 고령 인구 활용뿐 아니라 세원 확보 같은 경제적 측면은 물론 고령자의 새로운 인생 모색과 삶의 만족감을 높이는 심리적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아예 정년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도 있는데, 이들은 나중에 구한 직장에서 근무할 때 이전 직장에서 획득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비효율적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정년 연장과 폐지에 이로운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중장년 근로자의 경우 연금 수급 연령이 더욱 뒤로 미뤄질 수 있다. 청년층은 윗세대가 오래 일할수록 취업 시장으로의 진입장벽이 높아져 실업을 걱정해야 한다. 또 기업 관련 이해 당사자들은 정년이 늦어짐에 따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줄어들고 부당해고 소송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정년 연장에 반대한다.

안정된 인생 제2막을 위해선


정년 연장 외에 수명 연장과 조기 정년에 대비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본 등 고령화된 선진국을 보면 중장년층이 연금을 받으면서 추가로 일을 해 노후를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연금 겸업형’ 삶의 형태는 기업 또는 사회의 도움 없이 중장년 근로자의 독립을 이뤄내는 방법이다. 정부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우리 정부는 최근 고학력·전문직에 종사하던 은퇴 지식인이 전문성과 경험을 살려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앙코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고령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여러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다. 고령 인재를 재고용하는 것은 기업의 급격한 인력 공동화 현상을 막고 전문 인력의 숙련된 노하우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우리나라도 공무원과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년 연장 시도와 은퇴 후 재고용을 위한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식 세대의 교육과 인생살이에 치여 대책 없이 ‘마의 10년’을 맞고 있다. 머지않아 100세 사회를 내다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더 이상 ‘인생 제 2막’은 일부 몇몇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년 연장의 효과는 두고 볼 일이지만, 하루 빨리 제도가 정비돼 황혼이 된 우리 아버지 세대가 평생을 바친 직장서 쫓겨나 구직 시장을 전전하는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