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보경 기자 (HBK_P@skkuw.com)

<아마존의 눈물>을 비롯한 ‘눈물 시리즈’, <휴먼다큐멘터리 사랑(2011)> 과 <목숨 걸고 편식하다>, <타블로, 스탠퍼드 가다>, <고기 랩소디> 등 숱한 다큐멘터리를 기획 및 제작했고 <성공시대>와 <화제집중>을 연출했으며 <PD수첩> 최초의 여자 피디이자 데스크. 특히 여자를 안 뽑기로 유명했던 MBC에 입사 동기 중 유일하게 여자였던 그 피디. 바로 MBC 정성후 피디다. 만 24년을 시사교양국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심의실에서 심의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정 피디를 만났다.

지민섭 기자 jms2011@

#1. 일상적인 것의 힘

시사교양국. 어두운 사회의 일면을 날카롭게 찌르는 곳이기에 이해가 얽힌 누군가가 여기저기서 끝없이 반격해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다. 마치 전쟁터와도 같은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있었던 그녀의 언론관은 무엇일까.

■ 특히 다사다난해 보이는 곳이 시사교양국이다. 시사교양국 피디의 자질은 무엇인지
영화 <도가니>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 예일 뿐 사실 사회 전체는 불합리성의 도가니라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심하면 <PD수첩>을 처음 만들 때의 기치가 ‘PD수첩이 사라지는 그날까지’였겠는가. 다만 시사교양 프로는 영화와 달리 사실을 각색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사교양국의 피디들은 편향되지 않은 시각과 사회에 대한 관심, 인문학적 소양 등을 바탕으로 자신의 느낌을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렇다면 ‘느낌의 전달’ 측면에서 <화제집중>부터 <휴먼다큐멘터리 사랑(2011)>까지, 많은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든 이 프로그램들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가
일상적인 것의 소중함이었다. <휴먼다큐멘터리 사랑(2011)>에 나온, 교도소에서 아기를 낳은 소향 씨는 아기가 밖에 나가고 싶어서 울며 보채도 교도소 철문을 열어줄 수 없었다. 이들은 출소 이후 ‘문 열어주기’ 놀이를 한다. 내가 나가고 싶을 때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그 사소한 일이 이들에게는 이렇게도 소중한 일이었던 것이다.

■ 완성된 프로그램들은 매우 감성적이다. 제작할 때에는 이성적으로 접근하나 감성적으로 접근하나
피디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제작할 때 당사자의 삶에 동화되는 편이다. <성공시대> 때를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내면을 너무나 많이 끄집어냈기에 그 사람의 깊은 곳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따라서 프로그램 하나를 끝낼 때마다 한 사람을 보내는, 실연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 이외에도 <목숨걸고 편식하다>, <라이온 퀸> 등 신선한 다큐가 많다. 차별화 전략이 있다면
대학생 때 큰 화두로 삼던 것이 ‘creativity’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를 위한 전략은 단연 뒤집어보기다. 그러나 단순히 튀어 보이기 위해 뒤집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건 ‘원래 그래’라는 생각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이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조차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고 본다.

■ 직접 제작한 다큐도 많지만 책임 프로듀서(CP, Chief Producer)로서 팀을 이끈 적도 많았다. 좋은 리더란 어떤 사람이라고 보는가
부서마다 리더의 역할은 다를 테지만 적어도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서는 신뢰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피디들은 ‘목숨 걸고’ 프로그램을 만든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그들을 믿고 맡겨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큰 방향성을 말해줄 수는 있어야 하지만 간섭을 적게 하는 사람일수록 좋은 리더라고 본다.

■ 현재는 심의평가부에서 일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MBC 프로그램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지가 들어올 수 있는 부분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는 연구를 하고 그것을 현직 제작자에게 알려준다. 이전에 제작을 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시각으로 프로그램을 접하는 작업인데 재미있게 하고 있다.

#2. ‘먹는다’의 은유

그녀는 <목숨걸고 편식하다>의 제작 이후 채식주의자가 됐다. 그러나 채식주의라는 것이 단순히 취향이나 식습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채식주의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장 적나

지민섭 기자 jms2011@
라하게 보여주는 방법 중 하나이기에.

■ 왜 채식주의를 고집하는가
폴 맥카트니는 “도축장의 벽이 유리였다면 모든 이가 채식주의자였을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왜 고기를 먹는가? 닭의 수명은 15년인데 대부분의 닭고기는 6개월 이하의 닭들이다. 상품가치가 없는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쓰레기 봉지에 버려지고 암평아리는 항시 불을 켜놓는 좁은 상자로 들어간다. 스트레스로 주변을 쫄 수 없게 부리가 잘리고, 항생제를 놓아 절대 죽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 상자를 나가 햇빛을 보는 날이 도축되는 날이며 산 채로 컨베이어 벨트에 걸린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소나 돼지를 죽이고 자르는 것이 아니라 산채로 배를 갈라 고기로 만든다.

■ 도축의 잔인함을 대충은 알지만 맛있으니까 의식하지 않고 먹게 되는 것 같다
채식을 권고하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런 의심 없이 먹어 왔던 것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사실 채식주의는 이런 고민을 대변하는 은유에 불과하다. 정육점에 걸린 고기를 동물의 사체로 생각해 보는 시도처럼 너무도 당연히 여겼던 일들에 의문을 던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의심하고 대답하고 곱씹어보는 과정을 거쳐야 생각하는 힘과 사회의 이면을 바라보는 능력이 생긴다.

■ 결국 ‘먹는 것’의 은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생명체이기에 우리는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따라서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처럼 내가 먹는 것은 나의 상징이고, 내가 무엇을 먹는지는 결국 사회를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먹을 것인지 찬찬히 고민해봄으로써 결국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기를 권하는 것이다.

■ 한국에서 채식주의로 산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을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단체급식에서는 소수자를 배려하는 노력이 아직은 부족하다. 이는 결국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고기를 먹고 싶지 않을 때 먹지 않을 자유가 있는, 그런 사회를 꿈꾸고 있다.

#3. 그녀, 그녀, 그녀

그녀는 피디이기 이전에 대학생이었다. 피디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누군가의 아내였으며, 피디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다. 그런 ‘그녀로서’의 그녀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 서울대 신문방송학과 83학번, 어떤 대학생이었는지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는 집과 학교만을 오가며 사회에 관심 없는 수동적인 모범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용광로 같은 80년대 대학, 그것도 사회대에 진학했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가. 또 당시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주위 사람들을 희생시켰다는, 빚을 진 존재라는 인식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낭만적이기보다는 힘들고, 버거웠던 것 같다. 미니스커트를 한번도 못 입어보고 졸업한 것이 아쉽다.(웃음)

■ 그럼 현재의 대학생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철이 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많겠지만, 엄마가 차려 놓은 아침상이나 외출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방이 청소돼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를 감사히 여기라는 것이다. 세상은 절대로 나를 위해 조직돼 있지 않다. 이것을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은 다르다. 제대로 아는 자만이 결국 무언가를 스스로 할 수 있다.

■ 엄마이자 아내이자 커리어우먼이라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방송국 일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지금은 다행히 서운함보다 엄마가 MBC 피디라는 자부심을 강하게 느끼더라. 아이들을 이만큼 키우는 데에는 남편과의 좋은 관계가 큰 몫을 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 당분간 제작 계획은 없는지
MBC라는 회사의 일원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할 수는 없기에 회사의 결정도 중요하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다시 제작 부서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아까 말한 고기를 먹지 않을 자유, 소수자에 대한 존중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 장기적인 삶의 계획은 무엇인가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처럼 살고 싶다. 스콧 니어링은 반체제적 발언으로 해직된 교수였다. 취직이 되지 않자 단풍나무 숲으로 들어가 부인과 집을 지어 자연 속에서 살았다. 그는 늘 노동하고, 책을 읽고 기록했으며 이미 70세 때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결정해놓았다. 결국 자신이 죽길 원하는 나이였던 100살 때 스스로 곡기를 끊어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자연스러운,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 무언가 가미되지 않은 그런 삶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