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올 초 마이크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상당히 인기를 가져왔다. 이는 다수결원칙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갖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논리를 비평하며,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문제를 제기하였다. 기존의 발전국가 체계에서는 모든 일에 사회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소수의 일방적 희생강요는 국가라는 권위하에 정당화되지 못하는 시점에 왔다. 따라서 희생받는 사람과 이득을 얻는 집단간에 많은 경쟁과 갈등을 야기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발생은 오히려 사회적 비효율을 가져오게 되었다. 따라서 최근 국가운영의 새로운 방향이 자발적 참여와 이들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거버넌스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가장 이슈화 되는 부분이 도시개발 분야이다. 도심 재개발, 뉴타운건설 등으로 불리우는 모든 것을 허물고, 새로 계획하고 건설하는 주거환경 개선사업의 경우 “용산참사, 포이동 재건축 문제, 명동 재개발 농성” 사례에서 보듯이 주거라는 생존권과 재산권의 박탈이라는 잃는 자와 자기 재산권의 권리행사를 원하는 얻으려는 자간에 극한 대립과 반목, 갈등을 가져온다.  이를 두고 어느 한쪽만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열악한 주거환경을 재개발로 개선해서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과 주거가치의 상승을 통해서 토지, 주택소유주의 재산권을 증진시키고, 높아진 가치만큼 재산세의 증진을 통해서 세수확보를 하려는 시정부’와 ‘재개발을 통한 자신의 재산가치 상승을 원하는 소유주’의 행동도 일견 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실소유주들도 사실상 재개발 기간 동안의 이주와 더불어 비싼 재개발 비용의 부담으로 인해 실제 재개발된 아파트에 들어갈 수 없어 살던 마을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비싸진 지가로 인해서 기존에 살던 세입자들은 오랜 삶의 터전인 마을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다. 특히 재개발 되던 곳은 일반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상대적으로 도심에서 낮은 주거비용을 지불하던 곳이므로 주로 저소득층이 많이 살고 있었기에, 현재의 월세, 전세 보상가격으로는 삶의 터전이었던 도심에서 유사한 주거지역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희생이 뒤따른다. 이에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최근 성북구 삼선4구역 장수마을의 사례는 실제적 자발적 협력적 거버넌스에 의한 주거환경 개선사업 형태로서 우리에게 새롭고 실험적인 대안개발 방식이다. 이는 거주민의 의견을 무시하는 정부의 일방적인 계획방식 대신에 주민들이 스스로 주거환경 개선사업에 참여하여 개발방향의 설정과 골목길 보수, 마을미화, 집수리 및 사회적 기업을 통한 주택개량사업을 실시하여 주거가치를 상승시키고 있다. 이런 장수마을 사례는 승자와 패자가 없는 모두가 승리하는 Win-Win 게임이 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개발 방식이다.
하지만 모든 재개발 방식이 이렇게 장수마을 방식으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아직도 장수마을에도 전면적 개발을 원하는 건물주와 세입자 위주의 지역주민들 간에 갈등이 상존해 있다. 이런 대안개발의 성공 여부는 아마도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신뢰, 네트워크, 지역규범으로 정의되는 사회적 자본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한 대안적 개발이 무조건적으로 좋고 이렇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대안적 개발을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의 확충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생의 시대이다. 대안개발, 협력적 거버넌스 방식같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도심 주거환경 개선방법이 필요하다. 성대 후문지역과 정문앞 지역도 살기좋은 지역, 걷고싶은 지역으로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재개발은 우리의 많은 학생들을 다른지역으로 몰 것이다. 따라서 학교사회와 지역사회, 구청이 협력하여 아름다운 지역을 만드는 개발방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만약 샌델 교수가 온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과연 도심 주거환경 개선에 있어 정의로운 방식이란 무엇인지? 아마도 여러분들은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