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나리자 스마일> 속 그림 <연보랏빛 안개>

기자명 서준우 기자 (sjw@skkuw.com)

우리는 시를 배우면서, 또 소설을 배우면서 그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도 함께 배웁니다. 그동안 당연시돼온 것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죠. 물론 어떤 예술작품을 만나든 만들어질 때의 상황과 만든 이의 의도에 대해선 충분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만큼 모두가 똑같은 해석을 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보편적인 진리에 반대되는 의견을 갖는 것이 곧 나만의 길을 찾는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도 안 될 거예요.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캐서린은 웰슬리 여자 대학에 강사로 부임합니다. 웰슬리 대학은 우수한 학생이 가득하기로 소문난 학교였지만 그곳의 학생들은 사소한 예절 하나도 철저히 교육받아 정해진 방식대로 사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었지요. 사실 그곳의 교육은 세상을 이끌 지도자를 키운다기보다는 훌륭한 신부를 만드는 데 더 맞춰져 있었어요. 심지어 어떤 교수는 진짜 학점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고 남편이 주는 것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영화의 배경이 여성에게 보수적이었던 20세기 중반 미국사회인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캐서린은 그런 그들의 마음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려 노력합니다.
미술사 수업시간, 캐서린은 학생들에게 물감이 흩뿌려진 커다란 캔버스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미국의 유명한 추상화가이자 표현주의 미술의 대가였던 잭슨 폴락의 작품 <연보랏빛 안개>였어요. 그는 상식의 틀을 깨는 독창적인 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현대 미술의 선구자였지요. 화가가 의도한 것을 그리는 기존의 미술과 달리 그는 온몸으로 물감을 뿌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고, 그 과정 자체를 예술이라 말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그의 작품들은 미술계의 반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캐서린은 그 작품을 보여주는 것 이외에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아요. “그것을 보라”고 말할 뿐이지요.
그녀가 잭슨 폴락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으로 긴말을 대신하려 한건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사회가, 주변 사람이 기대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학생들을 일깨우기 위해서였어요. 재능이 넘치는 그들이 졸업 후엔 당연하다는 듯 결혼을 하고 개인의 꿈은 제쳐두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캐서린의 가르침은 곧바로 효과를 나타내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의 제자들이 속속들이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그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 차차 드러납니다. 캐서린을 비웃듯 가장 먼저 결혼했던 베티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 남편의 외도에도 꾹 참고 결혼생활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더 이상 불행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이혼을 결정하지요. 그리고 접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이어서 캐서린은 모든 학생이 ‘잭슨 폴락’이 되기를 바랐던 그녀의 생각도 정답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녀가 가장 아끼는 학생이었던 조안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대신 결혼을 택합니다. 조안을 법학 대학원에 합격시키기 위해 누구보다 힘썼던 캐서린은 큰 실망을 안고 조안을 찾아가지요. 하지만 조안은 자신은 이런 생활을 꿈꿔왔고 너무 행복해 후회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진실한 고백에 캐서린은 결혼하는 것이 곧 전통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행동이라 여겼던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화 속 수업 시간에 캐서린은 자신의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진이 예술이라 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학생들은 그냥 사진일 뿐이라고 답하지요. 그런데 그 사진이 유명 사진작가가 찍은 것이라면? 학생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무언가가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옳다고 믿으면 남의 뒤를 따라도 좋고 나만의 길을 걸어도 좋아요. 주변을 돌아보지 말고 계속 걸으세요. 언젠간 그 길에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연보랏빛 안개>를 감상하는 캐서린과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