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치료 외에 건강교실·노인요양원 운영 등 다양한 보건 프로그램도 운영

기자명 양명지 기자 (ymj1657@skkuw.com)

△‘3분 진료’ 혹은 과잉진료 △항생제 남용 △매출에 따른 의료진 압박… 오늘날 대형 프랜차이즈 병원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환자들은 이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지만 아프면 대형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요구하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 대안적 의료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는 의료생협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의료생협이란 의료 및 건강,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만든 협동조합이다. 의사가 직접 설립하는 경우가 많은 일반 병원과 달리 의료생협이 세운 병원은 의사와 환자가 포함된 조합원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일반 병원이 치료와 의료인 중심이라면, 주민의 출자로 설립된 주민참여형 의료기관인 생협 병원은 철저히 공익을 목적으로 질병의 예방 및 조기발견과 환자를 중시한다. 그래서 이들은 지역주민의 장기적인 건강을 위해 교육을 실시하고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을 사전에 제거하는 등 다양한 보건예방활동과 건강증진활동을 한다. 각 지역 특성에 맞춰 △거리 무료검진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한 방문 진료 △노인요양병원 운영 △만성질환자의 자조 모임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건강 돌보는 일 △체조교실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주민이라면 누구나 기본 출자금 1~3만 원을 내고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출자금은 의료기관의 기기와 시설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고, 이는 기부금이나 회비가 아니기 때문에 조합 탈퇴 시 환불된다.

소비자 요구에 맞춰 곳곳에 생겨
이런 생협 병원은 대형병원의 상품화된 진료에 염증을 느끼고 믿을 수 있는 병원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높아지는 최근의 흐름에 부응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생협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시민·노동운동이 발전하던 시기에 태동했다. 의료생협의 직접적 시초는 안성이다. 지난 94년 설립된 안성의료생협은 87년 연세의대 기독학생회의 농촌주말진료활동을 계기로 시 농민회와 의료인이 주축이 돼 안성 농민의원을 개원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인천 △안산 △서울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의료생협이 생겨났다. 2003년에는 한국의료생협연대가 설립돼 이들은 의료생협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회원의 조직, 의료, 경영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이 연대에 속한 13개 주민참여형 의료생협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2백여 개의 의료생협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조합비를 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의료생협이 이렇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서울의료생협의 장남희 상임이사는 “생협은 자본금 2만 원만 내도 내가 그 병원의 주인”이라며 “병원 운영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믿을 수 있는 의료진이 마치 주치의처럼 상존하며 약을 쓰기 전에 요가나 여행을 권해주고 대인관계를 상담해 주는 등 환자에게 진짜 필요한 진료만 제공한다. 또 임플란트나 예방접종 등 비보험 진료는 할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자연히 의료비 지출을 절감할 수 있다. 환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과잉 진료와 과다한 항생제를 사용해서라도 빨리 치료하려는 대형병원의 사정과는 다르다. 여러 보건 프로그램을 통해 질병의 조기발견도 가능하다. 의료진도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 매출액으로 의료인에게 압박을 주는 자본주의적 대형병원과 달리 의료생협에서는 밀착진료, 보다 여유로운 진료가 가능하다.

영리추구형 의료생협은 문제
한편 최근에는 의료생협과 관련된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영리를 추구하는 의료생협 병원이 우후죽순 늘고 있는 것. 2백여 개 의료생협 중 주민참여형을 제외한 많은 병원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영리 목적의 진료에 치중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료생협연대 사무국 관계자는 “생협은 인가가 나면 사실상 그곳이 영리를 추구하는 곳인지 진짜 주민참여형 생협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며 “의료생협에 있어 의료기관 운영은 부수적이고 주치의와의 상담이나 거리검진, 예방교육이 더 중점적인 것이지만 영리추구형 생협에겐 의료기관 운영 자체가 목적”이라고 말했다. 생협 병원은 의료인을 고용하기만 하면 법적인 문제가 없다. 때문에 의료생협의 이름만 빌려 개인이 아닌 여러 조합원의 자금을 동원해 병원을 세우고 막상 운영 면에서는 주민자치와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성의료생협의 윤재일 조합사업부 사원은 “일정액 이상의 출자금과 인원만 있으면 협동조합을 만들어 의사 없이도 병원을 만들 수 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생협 병원은 형식만 협동조합”이라며 “지역주민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주민참여형 의료생협이 진정한 의미의 의료생협”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3월 개정돼 비조합원도 50%까지 진료할 수 있도록 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도 영리추구형 생협 병원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의료는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상품화되고 모든 이에게 보편타당하게 제공돼야 함에도 사회적 신분과 재산에 따른 차등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에 맞는 의료생협 자리 잡아야
이런 문제에 대해 서울의료생협의 장남희 상임이사는 “주민참여형 의료생협을 구분하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며 법적 제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국의료생협연대에서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주민참여형 의료생협의 개념과 그 기준에 대해 교육을 실시해 영리추구형 의료생협에 대한 처벌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도적 변화도 필요하지만 주민의 적극성도 요구된다. 한국의료생협연대 관계자는 “해당 지역에 의료생협이 있다면 조합원들이 활동은 하는지, 중요사항을 이사회에서 결정하는지 등을 살펴 위반하는 곳이 있을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 인가 취소를 받도록 해야 한다”며 관리감독의 필요성을 말했다.
몇몇 생협의 이런 파행이 있음에도 주민참여형 의료생협에 의한 지난 몇 년간의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지역자원을 활용해 지역주민의 협동과 자치를 이끌어내는 민주적 의료 서비스의 기반을 닦고 지역사회를 통합함으로써 사회안전망을 구축했다. 한편 의료생협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채식생협이 출범하는가 하면 친환경 먹거리를 취급하거나 장애아동들을 돌보는 센터를 만드는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의료생협도 있다. 안성과 인천 등은 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일본 의료생협과 자매결연을 하고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혹자는 건강하다는 것은 몸과 정신뿐 아니라 사회적 건강도 포함한다고 말한다. 의료생협은 그런 의미에서 꾸준히 건강한 지역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