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케치 - 부킹 주점 블루케찹

기자명 양명지 기자 (ymj1657@skkuw.com)

목요일 밤 11시.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여자 둘에게 종업원이 다가와 뭔가를 건넨다. 자세히 보니 ‘큐피트 카드’.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에게서 온 ‘부킹 신청서’다. 종업원의 설명을 듣고 빙그레 웃으며 옆 테이블 남자들을 쳐다보던 여자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부킹(즉석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것이다.

나이트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주점 ‘블루케찹(Blue Ketchup)’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성과의 만남을 ‘게임’ 내지는 유흥 수단 중 하나로 생각하는 세태를 반영하듯 최근 몇 년 새 번화가와 대학 근처에서 이런 부킹 주점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해 문을 연 블루케찹은 현재 강남, 신촌을 비롯한 △서울 △경기 △경남 등 전국 곳곳에 32개 매장을 두고 있다.
블루케찹에서는 ‘큐피트 카드’를 이용해 부킹이 이뤄지는데, 주로 남성이 1천 원을 내고 큐피트 카드를 사서 자신의 이름, 전화번호, 메신저 아이디 등 간단한 신상정보와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은 뒤 종업원을 통해 원하는 여성 테이블에 전한다. 카드를 받은 여성 테이블이 승낙하면 합석이 이뤄진다. 이전 술값은 합석 전에 계산하고 카드를 받은 여성 테이블은 카드 1장 당 1천 원을 할인 받는다. 그간 주점에서 손님이 직접 원하는 이성에게 합석을 제안하는 ‘헌팅’은 공공연히 있어 왔지만 이렇게 업체 측에서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선하는 방식은 새롭다.

과연 블루케찹 같은 부킹 주점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블루케찹 박슬기 성신여대 점장은 “남성들은 대개 술을 마실 때 모르는 사람이라도 여성과 함께 하길 바라고 여성들은 (큐피트 카드로)할인도 받고 합석 시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며 “종업원을 거치기 때문에 부킹을 원하지 않을 경우 아예 (부킹을)해주지 않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헌팅과는 다르게 원하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즉석만남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여성들의 경우 더 편안하다는 것이다.
부킹으로 첫 만남을 갖는 남녀의 모습이 궁금했다. 박 점장은 “합석 후 10분으로 그 만남의 성사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데, 크게 3가지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로 성공적인 경우, 처음엔 어색하지만 통성명과 술 몇 잔, 이후 술게임을 거쳐 분위기가 좋아진다. 둘째는 여성이 중간에 먼저 일어나는 경우로, 남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여성들이 보이는 행동이다. 이 경우 남겨진 남성 테이블의 분위기가 한 동안 싸해지기도 한다고 박 점장은 말했다. 셋째가 가장 드물고 좋지 않은 경우인데 합석한 남녀가 싸우고 자리가 파하는 것이다. 보통 합석 후 계산은 암묵적으로 남성이 하는데 이 세 번째 경우엔 남성이 ‘먹고 튀기’도 한다. 가끔 블루케찹을 찾는다는 대학생 김모 양은 “합석을 통해 드물게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 겉모습만 보고 합석한 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주점을 나가야 한다는 점이 가장 불편하다”며 부킹 제도라고 해도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즉석만남이 지속적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할까. 이에 대해 박 점장은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고 했다.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다”며 “사실 자기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인데 부킹을 통해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전했다. 어두운 곳에서, 은밀히 이뤄진다고 부킹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비록 단발로 끝나더라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짝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갈 수 있다면 그건 젊은 세대의 만남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