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올해 9월 공지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도가니라는 영화가 개봉하였다. 개봉하기 전부터 사람들이 많이 기대하던 영화였고, 그 기대를 반영하는 듯 흥행에 성공하였다. 본인은 공지영 원작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재미있다는 사람들의 말에 이끌려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가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말 그대로 도가니 그 자체였다. 혼란의 도가니였고, 분노의 도가니였다. 어이없음의 도가니였고 파렴치함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영화관은 (분노로 인한)눈물의 도가니였다. 여러 사람들이 보였던 그 분노의 눈물은 영화관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해당 학교를 폐쇄하고 사건을 재수사 하라는 등 정부에 분노 섞인 요구를 하였고 이런 요구에 부합하여 정부는 장애인 학교에 관한 법안과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안 개정을 발표하였다. 이에 더해 검·경은 해당 사건을 재수사 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사실을 접한 많은 이들은 우리가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했다며 기뻐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이렇게 정의가 승리한 것 같은 이 상황에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럼 이렇게 성폭력 관련 법안이 수정되고, 재수사를 통해 가해자가 처벌을 받게 됐으니 이젠 모든 여성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인가? 지금 현실을 바라봤을 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회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도가니 사건 외에도 많은 극악무도한 성폭력 사건들이 발생해 왔고, 그 때마다 가해자에 대한 수위 높은 처벌이라든지 관련 법률 개정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도가니 사건과 마찬가지로 대개 그런 사건들은 여론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해결이 되어왔다. 그렇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마치 가해자 개인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 혹은 관련 법안 수정이 성폭력을 근절시킬 것처럼 주장하였음에도 여전히도 여성들은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본인은 이런 문제들이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근본적 변화가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기반이 되지 않고 매번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것을 처리하는 것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지고, 결국 ‘성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개선이 아닌 ‘가해자의 처벌 혹은 단기적인 법제도의 개선’으로 모든 논의가 수렴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이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쓰레기를 옆에 두고서 냄새가 난다고 방향제나 향수를 뿌리는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상적으로 성폭력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더군다나 여성들로 하여금 이를 제기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가 상존해 있는 상황에서 성폭력은 예방되거나 근절될 수 없다. 도가니 사태에 대해 보여줬던 그 분노가 진정성을 가진 것이었다면, 진정으로 성폭력 없는 학내 공동체와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성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준형(사회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