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웅(사복05) 동문

기자명 정재윤 기자 (jjjj67677@hanmail.net)

김태웅 제공
중학교 졸업. 김태웅(사복05) 동문이 CEO가 됐을 때 최종 학력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모교에서 퇴학당했다. 소위 ‘불량서클’을 운영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꼭 성공하고 싶었거든. 가난한 내가 출세하는 방법은 공부뿐이었는데 퇴학을 당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
그 후 김 동문은 갖은 직업을 전전하다 제대 후 출판사의 창고 관리 임시직으로 일했다. 출판사에서 일한 것은 순전히 책이 좋아서였다.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으며 일하던 그에게 어느 날 회사는 정직원 전환 제의를 해 왔다. 중졸 학력으론 불가능한 일인지라 그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위조했다. 가난한 비주류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조 졸업장으로 일하는 것이 마음 편할 리 없었고, 이후 그는 외국어 교재를 출판하는 작은 회사 동양북스를 인수해 독립했다.
대학 진학을 결정한 것은 회사가 업계 1위로 성장했을 때였다. 성공한 CEO로서 ‘커밍아웃’을 하면서까지 복학을 한 이유를 묻자 김 동문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이전 회사의 경험으로 출판사를 경영하긴 했지만 항상 뭔가 부족한 것을 느꼈어. 공부를 계속하면 그걸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기왕 공부를 시작할 것, 검정고시 대신 제대로 고등학교에 다니고 싶어 다시 교복을 입었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복학했을 때 그는 48세였다.
자식뻘의 학생들과 공부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나이 많은 학생을 부담스러워한 교사들 때문에 개학 날까지 반 배정도 받지 못했고 아이들은 그를 피했다. 아이들과의 벽이 높아져 갈 무렵 김 동문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처음에 그는 아이들을 아들딸같이 여기려 했으나 이제부터는 고등학생의 눈으로 아이들을 대하기로 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그를 ‘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중엔 아내가 놀라더라고. 아들보다도 어린 아이들이 ‘형, 형’하면서 어깨동무를 하니까 말이야” 그의 고등학교 성적은 좋았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큼 학생들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김 동문은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우리학교 사회과학부로 입학해 사회복지학과 학생이 됐다. “강의실에서 교수님 안녕하세요, 하는 학생들도 있었어. 사실 나는 스무 살인데 한약을 잘못 먹어서 늙었다고 속이기도 했지”하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는 올해 2월,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지 37년 만에 학사모를 썼다. 그의 대학 졸업을 가장 기뻐한 사람은 김 동문의 어머니이셨다고 한다. 그는 “동생들도 모두 나온 대학을 큰아들 혼자 못 나왔으니 그게 마음의 한이 되셨나봐. 뒤늦게나마 효도한 셈이지”라 말했다.
졸업 이후 요즘 그는 이곳저곳 특강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나야 오십 대 어른으로서 십 대, 이십 대 친구가 있는 아주 드문 사람 아니겠어? 그 장점을 살려 청춘들과 기성세대가 소통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것이 내 계획이야”
중졸 학력 임시직이었던 김 동문의 20대는 어찌 보면 ‘루저’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했다. “당장은 실패한 것 같더라도 실패가 아니야. 길을 조금 돌아서 가는 것뿐이지. 다른 길이 반드시 있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밝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