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케치 - 포이동 후속취재

기자명 김원식 기자 (wonsik0525@skkuw.com)

정송이 기자 song@skkuw.com
한 번 상상해보자. 화재로 인해 집이 다 불타버렸다. 집을 다시 지었더니 국가에서는 이 집을 다시 헐어버리려고 한다. 누구나 억울하고 울분이 터지는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납득 안 되는 상황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17일 다시 찾은 포이동의 상황은 1월보다 더욱 열악했다. 그 곳에선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지난 6월 12일, 포이동에 큰 화재가 일어났다. 전체 96가구 중 75가구인 약 80%가 불에 탔다. 집 대부분이 불에 타기 쉬운 판자, 천 등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주민인 김용근 씨는 “작았던 불이 그렇게까지 퍼질 줄을 몰랐다”며 “집들이 타들어가는 걸 보는 내 마음이 타들어갈 지경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화재에도 불구하고 포이동 마을의 주민은 절망하지 않았다. 화재 이후 주민과 24개의 시민단체가 ‘화재진화실패 주거복구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복구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큰 시련이 포이동에 닥쳤다. 화재 복구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9월 29일, 강남구청 공무원과 철거 용역들이 포이동의 임시 건물 7채를 철거한 뒤 급히 철수한 것이다. 철거 과정에서 철거업체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던 마을 주민 4명이 실신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민중주거 생활권 쟁취를 위한 철거민 연합’의 박정재 연대사업국장은 “강남구는 포이동 건물 14채가 주차장 부지와 인접해있으니 이를 철거하면 다른 쪽에 집을 짓는 것을 허용해주겠다고 약속했다”며 “따라서 14채를 철거하고 다른 곳에 집 7채를 지었으나 강남구에서 원래 약속과 달리 이를 강제로 철거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화재 이전에는 포이동 건물에 대해 ‘토지는 국가 소유지만 그 위에 지어진 건물의 권한은 주인에게 있다’는 지상권이 인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화재 이후 구청은 지상권이 소멸했다고 보고 주민에게 이주를 강요하고 있다. 또 토지 변상금도 여전히 주민에겐 부담이다. 마을 전체 주민이 국가에 지급해야 하는 토지 변상금은 누적액 약 30억 원 정도에 달한다. 주민은 자신들이 강제 이주민이므로 토지 변상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국가는 포이동 마을이 서울시 소유의 토지에 위치해 있으므로 변상금을 내야한다는 입장이다.
화재로 인한 포이동 피해 복구 작업은 지난 11일 완료된 상태다. △시민단체 △자원봉사자 △주민은 구청의 도움 없이 주택 건립, 시설 정비 등의 복구 작업을 했으며 12월에 입주식을 할 예정이다. 불에 타버린 75가구 중 새로 지어진 주택에 들어가는 가구는 52가구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강남구청은 복구 주택을 도시 개발 계획 시행 전까지 포이동 재건마을을 임시 주거지로 인정해 철거 작업을 중지하겠다고 서면으로 약속했다. 그러나 현재 발표 후 고착 상태에 머물고 있는 서울시의 도시 개발 계획이 시행된다면 당장 다음 봄부터라도 개발이 시작돼 철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강남구청 측은 지난 9월의 철거 행위가 사람이 살지 않는 무허가 건물을 행정적으로 철거하기 위한 긴급철거였다고 주장한다. 또 지난 10월 7일 열린 마을 주민과 강남구 부구청장 간의 면담 자리에서 노수만 부구청장이 강남구는 포이동 주거 복구를 불허하는 입장이며 복구 작업을 계속한다면 이미 복구한 집들까지 다 철거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구청을 향한 그들의 투쟁은 현재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이다. 화재 복구가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구 작업이 일단락된 이상 그들은 다시 활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박 연대사업국장은 “여태까지의 활동은 복구 작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우리의 상황을 제소하는 등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에 비해 포이동의 상황은 분명 악화됐다. 주민을 힘들게 하는 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화재를 기회 삼아 포이동을 완전히 철거하려는 강남구청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움츠러들지 않고 외친다.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어요” 화재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그들의 움직임이 이제 다시 한 번 도약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