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보경 기자 (HBK_P@skkuw.com)

일상에서 옷과 건축물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건물 역시 우리의 신체를 감싼다는 점에서 ‘거대한 옷’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실제로 의상학의 영역에서는 옷이 건물의 형태를 닮은 ‘건축적 패션디자인’이 존재한다.

ⓒCillian storm
건물과 옷은 신체를 중심으로 제작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특정 재료가 모여 몸을 둘러싼 구조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도 둘은 매우 비슷하다. 이에 인류는 자연스레 건물과 옷에 동일한 미적 기준을 부여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동시대의 건축물과 의복이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어 기원전 벽화 속 이집트인의 복장 형태는 마치 피라미드를 닮은 삼각형이다. 그리스 시대의 신전 형태와 당대 조각상에서 나타나는 옷의 모양은 공통으로 수직선을 강조한 형태로서 절제된 균형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 고딕 시대에 유행했던 길고 뾰족한 모자는 당시 건축물의 지붕과 모양이 흡사하며 르네상스 시기에 건물의 원뿔형 지붕은 중세 영국의 귀부인들이 초상화 속에서 입고 있던 풍만한 드레스를 연상시킨다.
 
상호작용에서 탄생한 美
그러나 건축적 패션디자인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패션과 건축 사이의 공통점은 19세기에 들어서야 주목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20세기 초반부터 이 둘의 연관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는데 그 당시 패션보다는 건축의 영역이 더 중요시됐기에 초점은 주로 건축에 맞춰졌다. 이후 20세기부터는 패션과 건축의 상호작용을 동등한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가 늘어났고 21세기에 들어서자 의상학의 관점에서 건축과 패션의 관계가 정립됐다.
건축적 패션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이렇듯 건축물과 옷의 상호작용에 대해 주목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덕성여자대학교 의상디자인과의 어경진 강사는 “영역 간 상호 교류가 점점 용이해지는 상황에서 건축적 패션은 건축 영역과 패션 영역의 긴밀한 연관성을 밝혀준다”며 “또 (건축적 패션은) 현대 디자인의 중요한 특징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또한 “건축적 패션은 건축물이 아닌 옷을 통해 새로운 형태를 창조한다는 조형성을 지녔고 이에 따라 새로운 미적 가치를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즉 순수하게 의상의 측면에서 공간의 개념이 부각된 건축적 패션은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을 생성해 낸 것이다.
 
패션도 ‘소통’이 경쟁력
그렇다면 21세기의 건축적 패션은 어떤 특징을 가질까? 이와 관련해 어경진 강사와 동 대학 박현신 교수는 21세기에 나타난 패션의 표현특성을 연구했다. 지난 6월,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를 통해 발표된 위 연구는 디지털 시대로 정의되는 현대에 건축의 영향을 받은 옷의 특징에 주목했다.
형태가 없기에 변형이 자유롭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디지털은 △이동성 △변형의 용이성 △상호작용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현대의 건축물은 회전과 이동이 가능하며 빛을 활용해 건축물 표면의 무늬를 표현하고 조절한다. 또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지능적 건축물은 사람과의 상호작용도 수행할 수 있다.
이에 두 교수는 21세기 건축적 패션의 특징을 △이동성 △지능성 △비물질성 △표피성으로 규정했다. 이동성이란 옷의 목적이 기존의 ‘입는 것’에서 더욱 확장돼 옷이 자유롭게 변형됨을 말한다. 예를 들어 터키의 패션디자이너 후세인 샬라얀의 2000년 컬렉션에서는 의자 덮개가 드레스로, 나무의자가 여행용 가방으로 변형된다. 또 비슷한 시기에 패션 브랜드 C.P Company에서 출시한 점퍼는 하의를 붙이면 침낭으로,
ⓒ어경진, 박현신
떼어내면 하의를 가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는 과거에 움직이지 않았던 건축물이 디지털 시대에 들어 모양을 바꿀 수 있게 된 특성이 의복에 반영된 결과다. 이와 관련된 건축물의 예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프라다와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쿨하스가 합작해 만든 ‘트랜스포머’를 들 수 있다. 이 건축물은 용도에 따라 회전할 수 있게끔 제작됐는데 회전하는 면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바뀌었다.
한편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인간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는 수용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건축물에 반영되면서 건물 역시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수준의 지능을 갖추게 됐다. 예를 들어 건축가 토비 슈나이더의 ‘리모트 홈’이라는 건물은 원격 조정 기능을 통해 다른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한다.
건축물의 이러한 지능적 특성은 다시 패션에 반영돼 의상 역시도 지능을 갖게 했다. 한 예로 미국의 MIT 공대 미디어 연구소의 리아 부쉬리 교수는 특정 신소재를 재킷에 부착했다. 이 소재는 재킷 뒷면에 장착된 LED 신호를 이용해 타인에게 방향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기능을 수행해 사람의 인지 능력을 한 차원 높였다.
그 밖에도 비물질성은 빛과 같이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소재를 이용해 옷을 표현하는 것을, 표피성은 옷의 표피가 기존의 직물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소재로 확대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특징이 사람의 즉각적 필요에 대한 반응과 관련된다는 점이다. 신체와 얼마나 민감하게 상호작용하는지, 즉 인류와 의복 사이에 어느 정도의 소통이 이뤄지는지가 중시되는 것이다.

패션의 발전을 위해
시간의 흐름이라는 요인과 함께 건축적 패션디자인의 변천을 살피는 것은 궁극적으로 향후 패션의 발전 방향 제시를 목적으로 한다. 어경진 강사는 “시대적 관점을 달리하며 건축적 패션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연구는 앞으로의 패션디자인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향후 건축적 패션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에 대해 어 강사는 “지능미와 같은 진보적인 미적 가치와 인간의 감성, 내면을 만족하게 하는 감성적 측면이 강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건축적 패션디자인은 시대의 흐름을 건축과 패션의 미적 상호작용으로 반영하는 거울이자 흐름을 통찰함으로써 패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지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