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오상 편집장 (osyoo@skkuw.com)

접 설립한 이탈리아 최대 미디어그룹인 ‘미디어세트’와 국영방송들은 세계적 조롱 속에서도 꿋꿋이 의리를 지켰다. 방송에서는 총리의 성추문을 두고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비판적 언론인들이 해직당하고 좌천됐다. 다름아닌 국영방송 라이(Rai)의 얘기다.
그가 집권한 뒤 국영방송 기자들은 ‘샌드위치’라고 부르는 뉴스 보도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요구받았다. 이 지침에는 모든 정치뉴스가 실제로는 베를루스코니 개인의 입장과 정부의 입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도록 돼있었다. 그 다음 야당 입장을 한두 마디 붙이고 다시 정부의 반박을 붙여서 끝낸다. 반면 사실이 명백한 비판보도에 대해서는 기계적으로 정부의 반박내용을 50대 50으로 실어야 했다. 모두가 비웃는 지침이었지만 지난 수년간 실제로 지침은 지켜졌다.
베를루스코니의 업적이 부러웠는지 따라하는 지도자들도 많았다. 2005년 부시행정부는 부시의 교육정책을 칭송한 한 칼럼니스트에게 24만 달러를 지급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속에는 공화당원들을 대거 포함시켜 우호적 질문만 하도록 종용했다는 것이 밝혀져 망신을 사기도 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9년, 20대의 아들을 공기업 이사장에 앉히려다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문제는 그 언론이 프랑스 언론이 아니라 영국 언론이었단 것이다. 프랑스 언론은 그때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탈리아 언론은 거세당했다’라는 언론인 페루치오 데 보르톨리의 말은 굳이 어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언론은 좋았을까? 이탈리아의 대표적 중도지였던 <코리에레>는 그 동안 정부에 대한 비판이 실종되고 유화적인 논조로 일관해 판매부수가 급격하게 떨어졌고 아직도 그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탈리아 자체도 경제 불황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총리가 54번이나 재신임 되는 바람에 지금은 유럽 경제의 블랙홀로 비난받고 있다. 국민들은 왜 그때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못했는지 아직도 분노하고 있었다.
이제 신문제작의 실무에서 한 발짝 떨어지게 된 필자도 지난 한 학기 신문을 보며 약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취재수첩에 적힌 아이템은 반절도 지면에 옮기지 못한 채, 몸을 사린 것은 아닌지, 홈페이지와 소식지에 자세하게 적힌 홍보문구를 주간지에 꼭 크게 실어야 했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학교와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라는 사명이 더욱 간절해지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