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뮤직비디오 상영전 스케치

기자명 정재윤 기자 (mjae@skkuw.com)

설레는 마음으로 컴컴한 계단을 올라가면, 아늑한 공간 가득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난 16일 문화공간 씨클라우드에서 디지털 인디 뮤직비디오 특별상영전이 열렸다. 이번 상영전에서는 8월에 막을 내린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NeMaf)2011>의 출품작이었던 △국카스텐 △노브레인 △트랜스픽션 등 인디 밴드의 뮤직비디오 총 18편이 관객들과 다시 만났다. 상영전을 주최한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의 이은정 팀장은 “뮤직비디오를 작품으로서 진지하게 관람하는 기회를 통해 인디음악과 비디오아트라는 두 영역에 친숙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상영전 기획의 취지를 말했다.
상영작들은 인디 뮤직비디오라는 이름에 걸맞게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듯한 실험적인 영상들로 구성됐

로켓다이어리, <District 13>
다. 18편의 영상이 연속 상영되지만 지루함에 대한 우려는 접어두어도 좋다. 로켓다이어리의 <District 13>은 어슴푸레한 새벽녘, 기타 리프에 맞춰 걸어가는 멤버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어느새 그들은 숨 가쁘게 달리기 시작하고, 카메라는 달리는 사람들을 따라 뛰는 것처럼 흔들린다. 화면은 흐릿하고 초점 전환이 급작스럽지만 그것은 아마추어리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피 끓는 청춘의 열정에 가깝다. 멤버들은 계속해서 길 위를 달리고, 높은 기타 소리와 달리는 모습이 겹쳐진다. 관객 또한 그들과 함께 숨을 몰아쉬며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국카스텐, <거울>
국카스텐의 <거울>에서 보컬은 표정없는 얼굴로 기타를 연주한다. 그는 정면을 바라보면서도 카메라는 응시하지 않는, 진지하면서도 무관심한 시선을 보낸다. 리드미컬하게 몸을 움직이며 연주를 하지만 그 몸짓은 어딘지 모르게 과장된 느낌이다. 보컬이 ‘거울을 보며 나를 찾고 있네’라고 노래를 부르면 그의 모습이 세 명으로 분열되는 등, 반복되는 전자음에 맞춰 화면을 가득히 채우는 팝아트적인 이미지가 노래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한창 강렬한 일렉기타 소리가 귀에 익을 때 즈음 부슬부슬 비가 오는 공터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영상이 시작된다. 바로 아마츄어 증폭기의 뮤직비디오 <도경만의 유아숙>이다. 화면은 알록달록한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남자를 보여준다. 그는 벽에 기대 다리를 떨면서 통기타를 치는데 어디를 보며 노래를 부르는지는 알 수 없다. 등장인물은 한 명뿐이니 그가 주인공일 법도 하지만 카메라는 절대 남자를 정면으로 잡지 않는다. 심지어는 남자 대신 바닥의 귤 껍질 혹은
아마츄어 증폭기, <도경만의 유아숙>
물웅덩이를 보기도 한다. 공들여 매만진 가수의 얼굴을 끊임없이 클로즈업하는 기성 뮤직비디오의 틀을 비집고 나온, 그야말로 ‘인디적인’ 작품이다.
기타 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색이 곱게 바랜 듯한 다음 영상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트램폴린의 <Anthropology>는 첫 장면부터 지하보도라고 쓰인 안내판을 클로즈업하며 당당하게 촬영장소를 공표한다. 두 여자는 주홍색 불빛 아래서 기타와 키보드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부드럽게 웅웅대며 귀에 울리는 멜로디는 다분히 몽환적이며 꿈을 꾸는 것 같다. 보컬은 깡충깡충 춤을 추는 듯이 키보드를 연주하고 기타리스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확대된다. 화면의 초점은 흐려지고 밝아지기를 반복하며 최면에 걸린 느낌을 준다.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정민아가 담담하게 부른 <무엇이 되어>의 영상을 마지막으로 인디 뮤직비디오 특별 상영전은 막을 내렸다. 관객이 부족해 공연장이 다소 쓸쓸한 것이 아쉬웠다는 기자의 말에 상영전의 공동 주최자 씨클라우드 대표 이병한 씨는 “인디라는 장르가 낯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관객들이 이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상영작들은 전반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인상을 주었지만 흔들리는 카메라와 몽환적인 화면을 통해 저마다의 개성을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듯했다. 상영전을 찾은 이고영(20)씨는 “기성 뮤직비디오는 대중의 입맛에 맞추어졌다는 인상이 강하다”며 “하지만 인디 뮤직비디오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노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모두가 기성 음악의 숨이 막힐 듯한 세련미를 추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서로 다름이 공존하며 저마다의 총천연색 빛깔이 반짝이는 인디 뮤직비디오의 세계에서 영상은 매체가 아닌 음악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