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수작] 파랑새
[소설 우수작] 파랑새
  • 성대신문
  • 승인 2011.11.30 21:20
  • 호수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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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심리07)

<탕 ->
나무 사이로 고개를 디밀고 있던 라이플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탕 ->
첫 총소리의 울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총성이 울렸고, 그제서야 숲의 동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고서 뿔뿔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던 총이 접히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쩔뚝대며 걸어 나왔다.
"제기, 또 허탕이야? 돈푼깨나 주고 산 건데 왜 이 모양이야."
사내는 노렸던 사슴을 맞추지 못한 것이 자신의 어설픈 사격 실력 때문인지, 월마트에서 단돈 350달러를 주고 산 라이플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물려줬던 라이플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분명 꽤나 사격 실력이 좋았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참을 싸구려 라이플과 움푹 패인 땅을 바라보다가 곧 발걸음을 돌렸다.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그의 마음을 짓이기는 것 같았다. 사내가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벌써 2주째, 그 동안 라이플의 총알 값만 지불했을 뿐이다.
'이래 가지고 대체 어떻게 사냥으로 생활을 이어간단 말이야. 제기.'
사실 사냥으로 생활이 되지 않는 것은 숲 주변의 사냥꾼들도 마찬가지였다. 숲은 사냥꾼들의 생활을 충족시켜줄만한 사냥감을 내어놓지 않았다. 가끔 가다가 비싸게 팔리는 동물들을 마주할 때가 있었지만, 보호 동물로 지정되어 잡아도 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숲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십여 년 전 즈음부터 이미 다 도시로 떠나갔고, 가끔 소로우에 감화 받은 자연주의 사상가들이나 도시 생활에 지친 은퇴형 사냥꾼들이 숲 주변에 자리를 잡을 뿐이었다.
톰 하겐 역시 전형적인 은퇴형 사냥꾼이었다. 오클라호마에선 제법 큰 도시인 이다벨에서 이십년 가량을 변호사로 지냈지만, 남은 것은 깨져버린 사랑과 자식들의 냉소, 그리고 퇴직금으로 받은 5만 달러가 전부였다. 그는 5만 달러로 어렸을 적부터 꿈꿔왔던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숲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소로우처럼 도시 문명을 거부하자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그는 자신이 잡은 동물로 식사를 해결하고 생활을 해 나가는 소박한 삶을 꿈꿔왔던 것이다. 자연에서의 소박한 삶, 나이 마흔 아홉에 꾼 꿈은 그런 것이었다.
"미스터 하겐! 큰일 났어요."
라이플을 질질 끌며 자신의 오두막으로 향하던 하겐에게 누군가 소리쳤다. 비교적 가까운 데 사는 빌리라는 청년이었다.
'제기, 밥 맛 떨어지는 자식.'
톰은 고개를 돌렸다가 소리치는 사람이 빌리라는 것을 확인하고 못 들은 척 걸었다. 그는 평소에 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두막에 전기를 끌어오도록 도와주었던 것도, 사냥 덫에 걸려 다리를 다친 날 부축해주었던 것도 맘씨 좋은 그 청년 덕분이었지만, 어쩐지 게이 같은 면이 있어 신경이 거슬렸던 탓이다.
"미스터 하겐! 하겐!"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따라붙는 빌리에게 하겐은 죽을힘을 다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아! 빌리. 그래. 내 귀는 아직 먹지 않았으니 제발 소리는 지르지 말아주게."
"큰일 났어요. 케니가 숲에서 사라졌답니다."
"케니? 그게 누군데?"
"마을 어귀에 사는 조의 어린 아들 말입니다."
"아, 그 꼬맹이..."
"어제부터 숲에서 파랑새를 보았다며 찾으러 나갔는데, 지금까지도 보이질 않는다더군요."
"파랑새? 크큭 그것 참 걸작이군. 꼬맹이가 치르치르라면 이제 곧 돌아오지 않겠나?"
하겐은 자기가 한 농담이 웃긴다는 듯이 다시 한 번 웃었다. 빌리는 잠시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 애쓰다가 그의 말이 농담이라는 것을 깨닫고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미스터 하겐, 지금 농담할 일이 아닙니다. 가을에는 퓨마와 곰이 활동할 시기라고요!"
"그것 참 신기한 일이군. 내가 그놈들을 한번이라도 마주쳤다면 새 라이플을 하나 살 수 있었을 텐데."

"엊그제 조엘이 숲에서 불곰의 앞발 자국을 봤다고 했어요. 그리고 어린애가 숲에서 하루 동안 실종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냉정할 수 있습니까!"
"아...그래 솔직해지자고 빌리. 그 집 꼬맹이가 숲에서 길을 잃는 게 뭐 뉴스거리는 아니지 않나. 난 가끔 조 같은 어설픈 자유주의자가 애들을 데리고 이 동네에서 살아남는 게 신기하단 말일세."
"이건 조 씨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에 대한 문제고, 인간에 대한 문제란 말입니다. 지금 하겐 씨와 이렇게 말다툼할 시간이 없어요. 찾는 걸 도와 주실겁니까, 말겁니까?"
빌리의 격앙된 몸짓에 조금 움츠라든 톰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도덕적 가치를 들이대면서 밀어붙이는 설득에 반박할 방법이야 도가 튼 그였지만, 주변 마을 사람들의 적의를 사서 굳이 좋을 것도 없었다.
'...총탄도 많이 남았는데, 그놈의 곰이나 한번 찾아보도록 하마.'
"알겠네. 내가 케인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지."
"케니입니다. 케니! 까먹지 마시고요. 찾으면 꼭 마을까지 데려와주세요. 아시겠죠?"
"알았네, 알았어."
빌리는 끝까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톰을 노려보다가 이내 숲으로 달려갔다. 톰은 라이플을 어깨에 걸쳐 메고 땅을 툭툭 차며 숲으로 향했다.

톰은 어두워지는 가을 숲을 걸으며 옛 생각에 잠겨 있었다. 케니인지 케인인지 하는 아이 따윈 까먹은 지 오래였다. 사실 그는 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그도 한 때는 정열적인 사랑을 했었고,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돕고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외로움을 느꼈고, 그 외로움은 점차 그의 일상을 갉아먹었다.
그는 성공한 변호사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로펌에서 나름 자리를 잡은 중견 변호사였다. 굳이 클라이언트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한 달에 7천, 8천 달러정도는 수입이 들어왔고, 대학 때 탄탄히 다져놓은 사회지식 덕분인지 투자하는 곳마다 괜찮은 수익을 올렸다. 아내는 미인이었고, 다들 부러워할 정도로 다정한 사이를 유지했다. 자식들 역시 이렇다 할 사고 없이 똑똑하게 자랐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이해받고 있지 못했다. 그의 자유로운 사상과, 넘치는 생명력을 받아주기엔 아내는 너무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아이들은 그에게 물질적인 것들만 바랐을 뿐이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라곤 변호사라고 명함을 내밀기도 창피할 정도로 숫자놀음 뿐이었다. 회계장부, 정리해고, 인수합병...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변호사가 되겠다던 20대의 결심이 창피할 정도였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매일 터질듯 한 갑갑함을 안고 그는 병들어 갔지만,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충실하게 그들을 돌봤고, 단 한순간도 성실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메를린...'
회계장부를 뒤적이던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이 생활을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고백했다. 더 이상 갑갑한 생활을 못 견디겠으니, 젊었을 때 함께 꿈꿨던 것처럼 숲에 들어가서 살자고. 하지만 아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20년의 결혼생활의 끝을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변호사 생활을 그만한다는 말을 하자마자 배신을 고백하다니! 배신감으로 화가 치미는 톰에게 메를린이 한 말은 미안하단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 톰, 불쌍한 톰. 당신이 혹여나 내가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래. 먼저 가족을 배신한 것은 당신이니까. 당신은 우릴 사랑한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우리를 속였어.'
'뭐? 지금 뭐라는 거야!'
'당신은 당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하면서, 당신의 직장을, 우리를 당신 인생에서 빼냈어. 그리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우릴 안아주려고 했지. 20년 동안 난 단지 아이들의 엄마였고, 당신의 아내였을 뿐이야!'
'당신은 아이들의 엄마고! 내 아내야!'
'톰, 이 머저리 같은 인간. 난 메를린이야. 미쎄쓰 하겐이라는 호칭 말고도 내게 이름이란 게 있다는 걸 대체 언제쯤 깨달을 생각이야?'
'...그놈이랑 잤어?'
'하! 그래. 그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겠지. 잤냐고? 그래 우린 끝도 없이 섹스를 했어. 당신이 드러누워 티비를 보던 소파에서, 내 방 욕조에서, 그이의 차고에서 개처럼 섹스를 했어. 아주 질펀하게 섹스를 했다고. 그거 알아? 아마 이 말이 당신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이겠지만, 심지어 오르가즘도 느꼈어.'
'....당장 나가. 총으로 쏴버리기 전에.'
'당신이 그럴 수 있는 인간이었으면 내가 바람을 피지도 않았겠지.'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고, 톰은 잠시 상황을 이해해보려 했으나,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톰은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길을 잃고 만 것이다. 과거 생각에 몰두하다가 생각 없이 길을 들어선 것이 화근이었다. 숲은 지형이 험한 숲은 아니지만, 주립공원이랑 연결되어 있는 만큼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닐 정도의 크기는 절대 아니었다.
'숲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닐까?'
숲에서 밤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사실 말이 사냥꾼이지 톰이 숲에 발을 들여놓은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깊은 숲은 빌리의 안내 없이 들어와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사냥할 때조차 깊은 곳까지 가기를 꺼리는 그였다. 말로는 퓨마와 곰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맹수는 동물원에서 마주친 기억밖에 없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이었다.
"톰 하겐! 넌 똑똑한 놈이야 뭘 좀 해봐!"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기합을 넣어봤지만, 이미 숲은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졌고 그가 서 있는 곳은 숲 한복판이었다. 방향도 모른 채 움직이다간 오히려 다른 사냥꾼들의 샷 건에 맞던가, 덫에 걸려서 비참하게 죽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제기랄, 그놈의 꼬맹이만 아니었어도.'
그는 플래시를 켠 뒤, 라이플을 꽉 움켜쥐고 걸음을 뗐다. 적어도 밤새 숨어 있을 곳 정도는 찾아야 했던 것이다. 삼십 여분을 더 걸었을까. 썩은 통나무로 만든 작은 굴을 찾았다. 아마 다른 사냥꾼이 숲에서 급하게 야영을 했을 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톰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 가지 끝으로 구멍을 슬슬 긁어냈다.
'혹시 뱀이라도 있진 않겠지?'
플래시를 비춰보며 십 여분을 뒤적거린 그는, 사냥용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모포를 꺼내 덮고는 구멍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앉았다.
'절대 자지 말아야지. 이런 곳에서 자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하지만 가을밤은 추웠고, 깊은 숲에서 두려움과 추위에 체력을 많이 뺏긴 톰은 밤을 지새우기엔 너무 늙었다. 톰은 자신의 졸음과 싸워보려 했으나 여태까지처럼 또 패하고 말았다. 무기력하게.

<찌르- 뻬뻬뻬뻬->
생소한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톰은 잠에서 깨었다. 해가 꽤 높이 떠있는 것을 보니 아침이 된지도 꽤 오래 지난 모양이었다. 웅크리고 잠이 들어 찌뿌둥한 허리와 지독하게 저려서 감각이 없는 다리를 신경 쓰기도 전에 톰의 눈에 들어 온 것은 특이하게 노래하는 새였다. 검은 머리와 짙푸른 색이 감도는 몸통을 부르르 떨며, 그 작은 새는 톰의 바로 앞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저게 - 파랑샌가?'
수년 전 아이를 위해 구입했던 자연도감에서 본 사진을 기억하려 애쓰다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고 곧 눈앞의 새를 보는데 빠져버렸다. 새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지, 아니면 숲에서 지나치게 안온한 생활을 했는지, 아주 작은 몸으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톰을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 순수하고 강렬해서, 톰이 시선을 피할 정도였다.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있었다니. 이 새를 소재로 행복에 대한 동화를 쓸 만도 하구나.'
교태를 부리듯, 사랑을 속삭이듯, 춤을 추며 노래하던 파랑새는 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가 몸을 비틀어 멀어지곤 했다. 톰은 마치 숲의 요정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새는 종종 걸음으로 움직이며 바닥을 쪼며 노닐다가, 이내 재밌는 것을 발견한 표정으로 나뭇가지 위로 날아갔다. 톰은 급히 기어서 굴에서 나와 파랑새를 찾았지만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절망감. 그때 톰은 오랜만에 자신에게 절망이라는 감정이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가 떠났을 때도, 2주 넘게 사냥감을 잡아오지 못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절망감이, 단 5분여 동안 만난 새를 볼 수 없다는 마음에, 절망감에 사로 잡혀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붙잡고 거칠게 걸으며 새를 찾기를 두어 시간, 톰은 우연히 숲 더 깊숙한 곳에서 한 아름다운 샘을 찾았다. 샘으로 들어가는 길은 쓰러진 오크나무와 잔 덤불에 가려 쉽게 보이지 않았지만, 파랑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돌아다니던 톰에겐 일종의 '계시'처럼 길이 보였던 것이다.
가시덤불과 쓰러진 오크나무 밑을 기어 들어가 발견한 샘터에서 그는 그렇게 찾아다니던 자신의 파랑새를 발견했다. 샘은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것처럼 자연의 냄새로 가득했고, 동물들이 꽤 많이 머무르고 있었으나 톰을 보고 놀라는 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얼마 전에 노렸던 것 같은 사슴조차 톰과 그의 350달러짜리 라이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다.
'이놈이 내가 이 거리에서도 못 맞출 거라고 생각해서 움직이질 않는구나.'
톰은 사슴이 움직이지도 않는 것을 보고 잠시 라이플을 움켜쥐었지만, 파랑새가 떠나갈까 봐 조용히 라이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 사슴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은...너무나 평화롭구나. 마치 숲속에 숨겨진 정원 같잖아.'
꿈이라고 느껴질 만큼 샘터는 조용한 평화로 가득 차 있었다. 파랑새는 샘터의 공주인 마냥 다른 동물들 사이를 오가며 노래했고, 톰은 그저 샘터에 앉은 다른 동물들처럼 순한 눈으로 파랑새를 바라봤다. 그렇게 동물들 사이에 껴서 초대 손님인 마냥 노래를 즐기며, 톰은 숲에서 두 번째 밤을 맞았다.

"제기랄 그놈 새끼는 어디에 숨은 거야?"
40대 언저리로 보이는 수석 보안관이 말보로에 불을 붙이며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제가 그래서 그놈 왔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했잖습니까. 아 무슨 변호사가 총을 들고 사냥을 한다고, 이 시대에 동물한테 총질하는 놈들이 싸이코 밖에 더 있습니까?"
20대처럼 보이는 보안관이 비릿한 웃음을 띠며 말을 받았다.
수석 보안관이 발을 올리고 있는 책상에는 두 장의 실종보고서가 올려져있었다. 4일하고도 반나절. 톰 하겐이 실종되었다고 보안관에게 신고 된 날로부터 지난 시간이다. 5일 하고도 반나절, 톰 하겐이 납치했다고 추정되는 케니가 실종 보고된 이후 지난 시간이다.
케니가 실종된 지 3일째, 도저히 케니의 족적을 찾을 수 없자. 보안관은 납치나 그보다 더한 범죄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의심했고, 마을의 빌리라는 청년이 톰 하겐의 범행 가능성을 제기했다. 평소 빌리의 신용을 생각했을 때, 거짓 신고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케니와 하루 간격을 두고 사라진 것 역시 석연찮았다.
보안관은 주변 사람들의 탐문조사 결과 톰 하겐이라는 인물이 케니의 아버지인 조를 평소에 욕하고 다녔으며, 아내로부터 이혼당하고 혼자 틀어박혀 살고 있다는 점에서 프로파일에 들어맞는다고 보고 납치범의 용의선상에 올려두었다. 또한 톰 하겐의 오두막 바로 건너편에 사는 조엘의 증언에 따르면, 매일 같이 숲에 들어가서 총을 쏘면서도, 단 한 마리의 사냥감도 잡아오지 않았고, 특히 케니의 실종 당일에 숲에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보안관은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납치 유력 용의자로 톰 하겐을 지명 수배했다. 또한 그가 무기를 휴대하고 있으며, 아이와 함께 사라진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감안해 매커튼 카운티 전역에 수색령을 내렸고, 오클라호마 주 경찰에서도 위험인물 등록과 함께 지명 수배했다.
<끼익- 쾅!>
보안관 사무실의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제기랄. 또 왔구먼, 어이 브래드, 자네가 좀 상대해봐."
수석 보안관은 모자를 집어 들고 급히 일어서서 뒷문으로 나갔다. 브래드라고 불린 젊은 보안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보안관을 향해 소리쳤다. 얄팍해 보이는 인상의 마른 얼굴을 찌푸리니 더욱 비열해보였다.
"이런 건 수석보안관님이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제가-"
"이봐! 당신들 일할 생각이 있는 거야?!"
조가 사무실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워낙 혈색이 좋지 않았던 데다가 며칠간 잠을 못잔 탓에 거의 시체처럼 보였다.
"진정해요 조. 전 아침에 두통이 심하다고요."
"뭐? 두통이 심해? 야 이 새끼야. 내 아들이 지금 납치범에게 잡혀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
"아 말은 바로하자고요. 납치사건이 확실한 것도 아니고요. 지금 수색대가 며칠 밤낮을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뭐? 납치사건이 아니면, 대체 왜 톰을 용의자로 지명했는데?"
"아, 뭐 톰 씨가 유력한 용의자가 맞지만..."
"그러면 톰을 찾아내란 말이야!"
브래드는 모자를 눌러쓰고 조의 욕지거리가 끝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쯤 졸면서 '조의 욕지거리가 일종의 랩이었다면 더 잘 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문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쾅!>
'제기랄, 톰 하겐을 잡게 되면 문 수리비부터 받아야겠어.'
"헉 - 헉 - 돌아왔어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빌리가 겨우 말을 뱉었다.
"뭐! 케니가 돌아왔어?"
조가 빌리의 얼굴을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며 말했다.
"아니- 헉 - 톰이 돌아왔다고요. 지금 자기 오두막에 있어요."
<끼익- 쾅!>
누가 먼저다 할 것 없이, 브래드와 조가 달려 나갔다. 브래드는 이 지겨운 사건이 드디어 끝난다는 사실과 납치범을 잡고 받을 보너스 생각에, 조는 아들을 납치한 납치범을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에 얼굴이 시뻘개 지도록 서로를 밀치며 달렸다.

톰 하겐은 그의 오두막에서 아동 유괴 혐의로 체포되었다. 보안관 사무실에서 취조를 당하는 동안, 줄곧 자신은 사냥을 하러 돌아다녔으며, 파랑새를 발견하여 오랫동안 머물다왔다는 이야기만 되풀이 하였다. 조는 얼굴이 시뻘건 상태로 마구 욕지거리를 하며 취조실 문을 차거나 소리를 지르며 보안관 사무실을 왔다갔다했고, 수석 보안관은 증거 부족으로 구속 영장을 발급할 수 없다는 법원의 연락을 받고 전화기에 대고 있는 대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24시간의 격정적인 시간이 지나고 결국 톰 하겐은 구류상태에서 풀려났다. 톰은 자신에 대한 보안관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 자신이 머물던 숲의 샘터까지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여깁니까?"
오랜만에 숲에 들어와 지칠 대로 지친 브래드가 이제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말투로 물었다.
"네, 여깁니다. 들어와 보시죠."
톰과 브래드가 샘터에 들어가자, 깜짝 놀란 동물들이 마구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뭇가지 위의 파랑새와 다른 새들만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구경하는 눈빛으로 둘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하 - 경치 좋네. 그래서 여기서 3일이나 머무셨단 말이요? 어디서 잠을 주무셨소? 증거 채집해야 되니 장소를 짚어 봐요."
"여기 이 나무 구멍 밑에서 모포 덮고 잠들었습니다."
확실히 사람이 오랫동안 머문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자. 보안관은 한숨을 푹 내쉬고 예의 그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 사진을 찍었다.
"확실히 말해둡시다. 미스터 하겐. 당신이 여기서 머물렀다 해서 아이 납치 혐의가 풀리는 건 아니요. 단지 당신을 구속할 증거가 부족할 뿐이지 지금 당신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은 알아야 할 겁니다."
"난 확실히 케인을 납치하지 않았소."
"케니요. 이제 와서 무관심한 척 해봐야 소용없으니 연기는 집어치쇼. 난 당신이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 걸 아니까. 아무튼 장소야 확인했으니 돌아가 보쇼."
톰은 인상을 찌푸리고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나무 위에서 부들거리며 떨고 있는 파랑새의 모습을 보고선 말을 삼켰다. 돌아서는 톰에게 보안관이 한마디 덧붙였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오두막에서 벗어날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 거요. 사라졌다하면 이번에야말로 집어넣을 테니까...그리고 나라면 조한테 총 맞기 싫어서라도 집 밖으로 안 나오겠소."
톰은 발을 질질 끌며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숲 근처 마을의 분위기는 매우 험악했다. 조는 공공연하게 톰을 죽여 버리겠노라고 공언했고, 사람들은 톰의 이상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주요 일과가 되어 버렸다.
"내가 보기엔, 톰 그놈이 이미 케니를 죽인거야."
"어떻게 그걸 아는데? 그 사람 꽤 배운 사람이던데 은퇴해서 애나 죽이러 왔겠어?"
"이 바보 보게. 문제가 있는 놈이니까 아직 창창한 나이에 은퇴해서 숲에 들어오는 거 아니야. 그리고 보안관한테 진술한 거 얘기 못 들었어?"
"뭐라 했는데?"
"파랑새를 보느라고 숲에서 안 나왔다더라.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야? 식량도 없이, 싸구려 라이플 하나 들고 그 깊은 숲에 들어가서 파랑새만 보다가 나왔다고?"
"미친놈은 미친놈인가 보네."
두 남자의 대화에 빌리가 재빨리 껴들었다.
"제가 그놈을 유심히 관찰해봤는데요. 그놈 요새도 숲으로 들어가더라고요."
"뭐? 조사받는 놈이 숲에는 왜 들어가."
"뭐 파랑새를 만난다나..."
"거참 그 새끼 아주 미쳐도 제대로 미쳤구먼. 애 숨겨놓고 보러 가는 거 아니야?"
"제가 따라가 봤는데, 자기가 머물렀던 샘에 가서 진짜 파랑새랑 있더라니깐요. 근데, 그거 기억나시죠? 케니가 파랑새 찾는다고 숲에 들어간 거. 제가 그 이야기를 그 자식한테 했었거든요. 제가 봤을 땐, 그냥 아주 대놓고 사람들을 비웃는 거-"
"야 이 개새끼야! 왜 그 이야기를 이제서 해!"
구석에서 이야기를 듣던 조가 냅다 소리를 지르더니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뒤에 나온 조의 손에는 도끼와 레밍턴이 들려 있었다. 빌리가 사색이 되어 조를 말렸다.
"조 아저씨! 톰을 죽이면 안돼요! 아직 범인이라고 확증도 없는데..."
"비켜!"
조는 빌리를 뿌리치고 숲을 향해 걸어갔다. 숲에서 두 번의 총성이 들려 온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정도 흐른 뒤였다.
<타앙- 타앙->

톰은 납치범이란 누명을 쓰고 있음에도 신중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밤에 잠을 청하려고 눕기만 하면, 파랑새와 함께한 꿈같았던 5일이 떠올랐다. 마치 생에 처음 사랑을 하는 소년처럼, 새의 움직임 하나하나 눈으로 담고 싶어서 가슴이 뛰었다.
파랑새는 톰에게 어렸을 적 꾸었던 꿈들을 상기시켜주는 존재였으며, 자신의 감수성 어린 면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파랑새의 울음소리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리듬을 맞추면, 그녀는 마치 자신의 마음을 달래 주는듯한 목소리로 답가를 불러주었다. 그녀는 톰을 평가하지 않았다. 톰이 다가갈 때마다 피하곤 했던 가족들과 달리, 조그마한 손짓에도 <뽀로록->날아와 톰의 어깨에서 노닐곤 했다.
어린아이는 동물과도 교감할 수 있다고 했다. 톰은 그 말을 떠올리며 자신이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평생에 처음으로 애교도 떨고, 또 눈물도 흘리면서 파랑새에게 자신이 꿨던 꿈들을,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가치들을 이야기했다. 물론 파랑새는 톰의 어떤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는 듯이 나뭇가지를 오가다가도, 갑자기 날아와 부리로 자신의 어깨를 쪼는 그 작은 생명체만큼 톰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어준 존재도 없었다.
그날 아침도 톰은 습관처럼 숲속 깊숙이 들어갔다. 이제 아예 라이플은 들고 다니지도 않았다. 습관처럼 두 시간여를 걸어 샘에 도착한 톰이 마주한 것은 다 뜯겨 있는 숲 덤불과 죽어 있는 동물들이었다.
"아- 안돼애애!"
비명을 지르며 샘터로 뛰어든 톰의 눈에 띈 것은 수도 없이 죽어 있는 새들과 동물들이었다. 샷 건에 맞아 고통스럽게 죽어있는, 또는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면서 톰은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샷 건을 뿌리듯이 쏜 것과, 사체를 주워가지 않은 것을 보아 사냥은 아니다. 도끼로 온갖 나무를 베어 놓은 것을 보아 톰을 노리고 한 짓임이 틀림없었다.
"으으으으..."
톰은 거의 실성한 듯한 신음을 내며 바닥에서 파랑새를 찾았다. 빨간 새, 까만 새, 시체를 집어 던지며 낙엽을 손으로 쓸다가 노란 탄피를 찾았다.
<SUPER SPEED XTRA 7½>
'20 구경, 레밍턴 전용...조 네 이놈...'
마치 살인 현장의 증거물을 다루듯이 탄피를 주머니에 넣은 뒤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다 파랑새를 찾았다. 톰의 파랑새는 날개에 산탄이 스쳤는지, 약간의 피는 났지만 약간 몸을 부들거리며 살아있었다.
"오 하나님! 오 하나님..."
그는 파랑새를 움켜 안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신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질 못했다.

톰은 파랑새를 데려온 이후로 집 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지극 정성으로 파랑새를 돌봤고, 파랑새는 십여 일만에 작은 날개 짓을 하며 집안을 돌아다닐 정도로 회복했다. 톰은 파랑새의 회복에 기쁨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연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파랑새를 사랑했지만, 막상 자신의 집안에 가냘프게 누워있는 파랑새를 바라보니 애처로운 마음에 밖에 내어놓을 수가 없었다. 또 언제 다시 조가 파랑새를 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동시에 이 생각 자체가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 여부와 상관없이 톰은 파랑새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더 이상 힘들게 숲으로 찾아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마음 졸이지 않아도 집에서 언제든지 파랑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파랑새 역시 톰과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보였기에 톰은 파랑새와 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결심했다.
<뚜르르르- >
전화 소리가 들렸지만, 금새 자동응답기로 넘어가리라. 톰은 파랑새의 춤을 보는데 신경 쓰느라 전화를 받을 틈이 없었다.
<톰의 오두막입니다. 부재중이니 메시지를 남기세요. 삐->
"톰, 나야. 당신 문제가 있다고 들었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애들이 불안해해."
메를린의 목소리가 전화로부터 들려오자. 다급히 다가가 수화기를 들었다.
"메를린, 오랜만이야."
"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당신이 아동 유괴 용의자라는 게."
"별거 아니야. 약간 오해가 있었어. 난 그저 파랑새를 보느라고 숲에 -"
메를린이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도 들었어. 당신이 새를 길러? 기르는 건 좋은데 새 때문에 이상한 취급을 -"
"아니, 난 파랑새를 기르는 게 아니야. 함께 살고 있을 뿐이야."
"...뭐? 함께? 당신 제정신이야? 잘 들어. 당신이 미친 짓 하는 것은 좋은데, 우리 애들한테 피해는 안 끼쳐야 할 거 아냐. 우리 제니는 이번에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되는데 당신 이야기가 벌써 다 퍼졌어. 여기 작은 도시인거 몰라? 변호사까지 하던 사람이 대체 왜 수배자로 신문에 -"
톰은 딸의 이야기를 걸고넘어지는 메를린이 역겨웠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창피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항상 아이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를 통제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듣고 있어? 당신 다시는 애들 볼 수 없게 소송 걸꺼야. 아니, 사실 이미 법원에 -"
더 이상 자신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톰은 그냥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메를린이 자신을 비난하는 이야기보다도, 아이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보다도, 자신의 파랑새를 '기르는' 동물 취급했다는 것이 화가 났다. 자신의 순수성을 깔아뭉개는 태도에 화가 났다.

"...넌 그러지 않을 거지?"
톰은 파랑새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 후 며칠 동안 톰은 집에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2주여 만에 케니가 시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케니는 밧줄에 손발이 묶이고, 항문에 온갖 쓰레기가 집어넣어져 있는 상태로 브로큰 바우호 인근 강가에 버려져 있었다. 변태 아동성애자의 노리개로 쓰이다가 죽음을 당한 것이 확실했다. 케니의 시체가 얼마나 처참했던지 조는 그 모습을 보고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이것이 치르치르의 결말이라면 지나치게 현실적이군.<행복은 우리 곁에 있어>라...'
30대 초반에 형사 재판을 담당 하면서 온갖 더러운 것들을 많이 보았던 탓인지, 톰은 별다른 감흥이 없이 씁쓸할 뿐이었지만, 이것이 또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샀다. 냉정해야 하는 보안관마저 대놓고 톰을 범죄자 취급을 했다. 하지만 추가 조사 결과 4일간 꾸준히 이동하지 않았으면 사망추정시각까지 톰이 도착할 수 없는 거리라는 것이 밝혀졌고, 그 시간에 보안관에게 조사를 받고 있었던 톰의 혐의는 풀렸다. 물론, 공범이 없다는 전제 조건이 붙은 추론이기는 했지만, 딱히 다른 용의자가 없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톰의 범행으로 몰 수 없었다.
"개 같은 자식, 네놈 새끼 항문에도 쓰레기를 처박아주마."
혐의를 벗겨주면서 보안관 브래드가 톰에게 한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공식적 조사와 상관  없이 톰의 범행을 의심치 않았다.
사건이 유명해지자 주변 언론에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톰은 사람들을 피해 그저 오두막에서 파랑새와 놀 수밖에 없었다.
긴 취조와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리고 집에 들어간 어느 날. 톰은 창문으로 다른 파랑새들이 들어와 자신의 파랑새와 노는 장면을 보았다. 왜인지 눈물이 나면서 화가 치밀었고, 한쪽 벽에다 라이플을 쏘았다.
<탕 ->
새들은 창문으로 달아났으나 파랑새는 아직 날지 못해 부들대며 방안에서 도망칠 수밖엔 없었다.
"너 때문에 내 삶이 이렇게 꼬였는데! 내가 널 이렇게 오래 간호를 해줬는데! 넌 내 앞에서 노래조차 하지 않는구나!"
소리를 지를수록 파랑새는 떨며 구석으로 달아날 뿐이었다.
"노래해! 노래하라고! 제기랄."
톰은 총을 집어던진 채, 한참을 파랑새를 노려보다가. 자신의 행동이 한심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새를 손에 올려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말도 못하는 동물에게 화를 내다니...'
자신을 반성해보았지만,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파랑새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매료됨으로 인해서 톰의 인생은 꼬여버렸고, 파랑새를 보호하고 돌봐주었음에도 자신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다른 새들 앞에서만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저귄다는 사실이 괘씸했다.
불안감. 그 다음에 그를 집어 삼킬 듯이 다가온 감정은 불안감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버렸듯이, 메를린이 자신을 버렸듯이 파랑새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애시 당초 파랑새는 새들과 있을 때 더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한참을 파랑새를 쓰다듬던 그가 결연한 결심을 한 듯이 사냥용 칼을 가져왔다.
<착 - >
칼날을 바로 세운 뒤, 파랑새의 오른쪽 날갯죽지를 향해서 똑바로, 찔러 넣었다.
<삐르 - 삐르 삐익!>
파랑새는 더 이상 날아갈 수 없을 것이다.

<똑 - 똑 - >
"미스터 하겐! 저 빌리에요. 집에 계신가요?"
아침에 톰을 깨운 것은 촉새 같은 빌리였다.
'쓰레기 같은 자식...너 거기 가만 서있어라.'
톰은 그동안의 빌리의 행태를 생각하면, 문에 라이플을 갈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라이플을 꽉 주며 한참을 머리를 쥐어뜯다가 한숨과 함께 총을 내려놓고 다리를 질질 끌어 문 앞에 섰다.
"뭔 일이야. 용건만 말해."
"미스터 하겐! 문 좀 열어주세요. 제가 사과를 드리고 싶어요."
문을 안 열어주면 숲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를 기세로 사과를 하고 싶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또 이놈이 하는 행동이 어떻게 불리하게 작용할지 몰라 일단 문을 열었다.
"헤헤 - 미스터 하겐, 제가 미안했어요. 그래도 혐의가 풀려서 다행이네요. 여기 제가 직접 만든 마카로니 가져왔어요."
"마카로니는 됐고, 사과는 받아들이지. 그럼."
문을 닫으려는 찰나 빌리가 발을 쑥 집어넣어 문을 못 닫도록 막았다. 톰의 얼굴이 험상궂어 졌지만 빌리는 상관도 안한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그 파랑새 말이에요. 저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절대- 안 돼."
"그 파랑새 때문에 모든 게 시작된 건데...계속 같이 있으실 건가요? 놓아주지 않고?"
"이젠 내가 기르는 새야."
"그게, 뭐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니긴 한데요. 아무래도 케니가 죽은 게 파랑새 때문이니까.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섬뜩해 보일수도 있잖아요?"
빌리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가식적인 미소와 제스처에 톰은 곧바로 빌리의 의도를 파악했다.
"너 - 기자랑 인터뷰하려고 내게 이런 얘길 물어보는 거구나."
"아, 뭐- 진실을 알리면 좋잖아요. 미스터 하겐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건데요."
<쾅!>
톰은 빌리를 쳐 죽일 기세로 문을 닫았다.
차라리 조처럼 대놓고 욕을 하는 무식한 타입이 훨씬 상대하기 편했다. 창문으로 기자들에게 달려가는 빌리의 모습이 보였다. TV카메라에 자신이 나온다는 생각에 아주 우쭐한 표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오빠의 실수를 부모에게 일러바치는 여동생의 표정으로,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몸짓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망할 놈. 뱀 같은 놈.'
생각해보니 빌리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자기도 가끔씩 파랑새를 볼 때 마다 치르치르 아니, 케니의 시체가 떠올라서 섬뜩할 때가 있었다. 톰은 곧 창고에서 빨간 페인트를 가져와 파랑새에게 칠하기 시작했다.
'뭐 어차피 강아지들도 염색을 하는 시대니까. 색깔이라도 바꿔놓으면 좀 낫겠지.'
파랑새의 깃털 하나하나를 빨간 색으로 칠하는 동안 파랑새는 울지도 않고, 몸을 떨지도 않았다. 그저 숲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순수한 눈빛으로 톰을 바라볼 뿐이었다.

파랑새가 집에 들어온 지 거의 30일이 지났다. 그동안 톰의 생활은 차를 몰고 월마트에서 식료품을 사오고, 집에서 이제는 색이 붉은 색인 파랑새와 노는 것뿐이었다. 뉴스에서는 마치 톰이 아동 성추행범인 동시에 살해범이지만 머리를 굴려 법망을 피해간 교활한 범죄자처럼 비춰지고 있었기 때문에 외출할 때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와야만 했다. 조는 아예 이다벨 시에서 톰의 잔혹함과 아동살해범을 용서하는 사법당국의 비겁함에 대해 성토하는 일종의 행진을 하고 있었다. 메를린에게선 그 이후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메를린과의 통화 후 며칠 지나지 않아 가정법원의 명령서가 왔지만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았다. 아니 뜯어볼 기력조차 없었다. 분명 톰이 바랐던 은퇴 생활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은 파랑새의 존재였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동경과 신비로운 느낌은 죽어 버린 지 오래였다. 파랑새는 더 이상 톰의 어깨 위로 날아오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노래하지 않았다. 마치 노래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파랑새는 조용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며칠간은 노래를 듣기 위해 달래주고 안아주었던 톰도 지칠 대로 지쳐, 창고에서 오래된 새장을 꺼내와 파랑새를 집어넣었다.
<삐끄덕- 삐끄덕->
파랑새는 새장 속의 그네를 탔다. 먼지 가득한 오두막에서, 소파에 누워 죽은 듯 잠만 자는 톰의 완벽한 정적과, 파랑새의 그네 소리의 불협화음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삐끄덕- 삐끄덕->
"에이 제기랄!"
톰은 새장 문을 거칠게 열어 파랑새를 움켜쥐었다. 그리곤 문을 열어 집 앞에다가 파랑새를 던져주었다. 파랑새는 잠시 멍한 듯이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상황을 깨달았는지 힘겹게 날개짓을 하였다.
<퍼득- 퍼득- >
이제는 파랑도, 새도 아니게 된 이 생물은 온전한 한쪽 날개를 움직여 10센티 정도를 떴다가 바닥으로 꼬꾸라지기를 반복하며 안간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이 지냈던, 그리고 그 이전부터 사랑을 나누었던 톰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는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바닥을 기며 앞으로 향했다. 톰은 문간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존재였는데, 사람이 아니더라도 교감할 수 있다는 어렸을 적의 꿈을 이뤄준 존재였는데, 이렇게 쉽게 날 떠나는구나.'
한참을 지켜본 것 같은 데도 겨우 몇 미터 나아가지 못한 파랑새를 보다가 문을 닫아버렸다.
'떠나는 구나. 내 삶은 또다시 엉망이 되었고, 이제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되었는데.'
톰은 파랑새를 놓아주며 내심 돌아오길 바랬다. 그를 향해 웃어주고 지저귀던 그 시절의 모습으로, 단 한순간이라도 돌아오길 바랬다. 하지만 파랑새는 자유가 주어지자마자 필사적으로 톰을 떠났고, 그 모습은 메를린이 떠났던 순간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다.
고개를 드니 눈앞에는 라이플이 걸려있었다. 월마트에서 350달러에 구입한 라이플은, 톰의 손에 들어온 뒤 단 한 마리의 짐승도 죽이지 못했다. 톰은 비장한 눈빛으로 라이플을 집어 들었다.
‘그래, 적어도 한 마리는 죽일 수 있겠지.’

<탕 - >

 

당선소감

지켜준다는 것이 좋은 것인지, 싸구려 맥주를 마시며 논쟁하던 때가 있었다. 그녀는 개똥철학에 얼굴 붉히며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비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응, 비겁한건 나니깐.
명륜당을 지나가면 그녀의 향기가 난다. 할머니가 해주던 달고나 냄새보다 달달한 냄새. 그래서 너구리 부부는 아직도 명륜당을 찾나보다.
이상하게 이제와서야 더 이해할 수 있다. 축제 때 날려버린 애드벌룬처럼, 멀어져갈수록 가슴에 선명하게 남는다.
졸작을 나의 작은 파랑새에게 바친다. 이제는 자신의 아름다운 날개를 믿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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