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신방07)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등장인물
 
형사+백수?박천민(조준휘)
기자?나대영(정혜원)
언니?양귀비(백예리)
교수?박사임(한송연)
애인?변태균(김진우)
실종남(녀)-양성민
 

 

 
 

  

 

#1. 경찰서 내부 (반장/기자/언니/애인)

 
무대 중앙 or 오른쪽 한 켠
핀 조명이 켜진다.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서서 옷매무새와 얼굴을 가다듬다 조명이 켜지자 당황한다.
하지만 이내 집중하고 정면을 본다.
자신감 있는 표정. 어렴풋한 미소. 드디어 해냈다는 듯 한 만족스러운 느낌의 표정).

 
기자 : (목소리가 들떠있다.)14일 밤, 지난 5일 실종 되었던 20대 후반의 남성 양모 씨가 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지난 5일 실종 신고 접수 이후 일본으로 출국한 것으로 밝혀진 그의 행방에 전 국민적인 관심이 쏠렸었습니다. (반장의 코고는 소리가 나고 기자가 당황한다.) 중요한 것은 올해 들어 이런 실종신고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각 지역 (코고는 소리) 관할 경찰서에는 속속들이 실종사건 전담반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천천히 왼쪽으로 걸어가면서) 본 사건의 수사, (또 코고는 소리)를 담당 했던 서대문 경찰서의 박천민 반장입니다.
 
기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왼쪽으로 이동하면서(옆으로 게걸음) 조명이 전체적으로 밝아진다.
왼쪽에는 조반장이 책상에 엎드려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다.
 
기자는 앞만 보면서 옆으로 이동하다(게걸음) 엎드려 코를 골고 자고 있는 경찰관에게 마이크를 들이민다. 그런데 코 고는 소리만 난다.
 
기자 : (앞만 보며 있다가 아무 말이 없자 경찰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에? 에헤 거 사람 참..
 
기자가 책상 한 켠에 있던 수사기록파일을 들어 경찰관의 머리를 내려친다.
반장은 어리바리 하게 일어나서 침을 닦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인터뷰 할 준비를 한다.
 
반장 : (자다 일어나 허공에 대고)어, 뭐야 뭐야 어 거기 김형사 커피는 혼자 먹나, (돌변하여) 이번 사건은 말 입니다. 그게..
기자 : (주머니에 초시계를 꺼내며) 30초. 아까 보다 5초 늘었어. 아 형사님 그 무조건반사 몰라요? 마이크만 들이대면 그~냥 무조건 적으로 말이야. 어 거 참, 입 좀 맞춰 보자니까요. 사람이 왜 그 모양 입니까. 어 이래 가지고 하나 빵 터졌을 때 어, 한방인데 한방.
반장 : (하품하며 머리 긁적이며 일어나 책상 한 켠에 있던 빵을 준다) 한 방 타령 그만하고 이 빵이나 자셔. 오늘은 야식 없어.
 
반장은 야식이 없다고 하면서 자기 이빨을 이쑤시개로 쑤신다.
 
기자 : 에? 거 세상 참 각박하게 돌아가네. (빵을 한번 보더니 주머니에 넣는다.)
 
기자가 빵을 주머니에 넣다가 이빨을 쑤시고 있는 반장의 얼굴에 얼굴을 들이민다.
실눈을 뜨고 반장의 얼굴을 관찰하다 반장을 빙빙 돌며 킁킁거린다.
 
기자 : 이건 분명히 요 앞 장미여관을 끼고 돌아 지하에 카바레가 있는 건물의 맞은편에서 내려다보이는 두 마리 치킨의 올리브유(강조)에 3번 튀겨낸 치킨의 냄새인데…….(킁킁거리다 반장과 기자가 눈이 마주친다.) 정말 오늘 야식 없어요?
 
반장, 기자를 꿀밤을 때리고 자리에 앉는다. 기자는 무대를 돌아다니며 이야기 한다.
 
기자 : 대한민국 민주경찰이 말로 해야지 말로. 아 그나 저나 세상이 뒤숭숭한데 여기만 조용해. 아 이거 한방인데 한방.
 
이 때, 뒷 편에 문을 열고 여자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선글라스를 끼고 도도하게 걸어 들어와 반장 맞은 편 자리에 앉는다. 들어오면서 문 쪽에 있던 기자를 밀친다. 자리에 살짝 앉았다 화들짝 일어나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경찰서 의자와 책상 노트북을 닦는다. 이것저것 닦다가 경찰관의 몸도 닦는다. 황당한 표정의 경찰. 점점 밑으로 내려가다 화들짝 놀라 도도한 척 하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기자는 뒤 쪽으로 물러나 언니를 위 아래로 흝으며 수상한 눈길로 바라본다.
언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계속해서 여러 가지 포즈를 잡으며 과도하게 도도한 척을 한다.
몇 가지 자세를 해보다 맘에 드는 포즈를 찾고 그 자세로 고정해있다.
 
언니 : 자, 이제 질문하세요.
 
반장 황당한 표정, 인상을 쓴다.
 
언니 :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뭐가 알고 싶으신 거죠? 자세한 사항은 제 매니저와 상의…
 
기자와 반장의 눈초리와 썰렁한 분위기를 느끼고 똑바로 앉는다.
 
언니 : (선글라스를 벗으며 조용하게) 동생이 없어졌어요.
반장 : (별게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모니터를 보며) 일단 성함 먼저 말씀하시죠. 그 다음엔 주민번호랑 주소를….
 
언니가 반장의 말을 끊으며 발끈해 소리 지른다.
 
언니 : 지금 그렇게 태연하실 때가 아니라고요! 내 동생이 없어졌다니깐요?
 
반장은 아랑곳 하지 않고 무심한 태도로 일관한다.
 
언니 : 그러니까 분명 그저께 밤까지 통화를 했어요. 집에 가고 있다고 했고, 전 잠이 들었죠. 아, 아니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아 맞아 감독님이 주신<최 양을 피하는 방법>을 보고 있었죠. 다음 날 촬영이 있었거든요. 근데 이번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3D로 촬영을 한 번 해본다고 하셔셔 제가 특별히.. (반장얼굴을 손으로 스캔하며) 아, 그 작품 반장님 나이대면 보셨겠네요. 중 장년층한테 인기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안경은 쓰고 보셨어요? 촌스럽게 몰래 다운받아 보신 건 아니죠?
기자 : 오, 어쩐지 각이 다르다 했어요. 배우시구나. (명함을 내밀며) 저 조중 일보 나대영 입니다. 근데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신인이신가? (방정맞게) 거 제가 또 연예부 쪽에 잘 아는 기자들이 많은데 말이죠 허허.
언니 : 아 전 아까 말했다시피 중장년층, 그러니까 부장급만 상대해서.
기자 : 네?
 
반장이 기자의 말을 가로챈다.
 
반장 : 사적인 얘기는 조사 후에 하시고,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언니 : 아 양양 이예요.
반장 : 양양? 아 성이 양 씨인가 보군요.
언니 : 그냥 양양으로 해두죠.
반장 : (슬슬 열 받는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언니 : (신분증을 내밀며) 배우니까 배우협회 등록증도 되는 거죠?
 
언니가 신분증을 찾아 꺼내어 반장에게 건네주며 말을 한다.
 
언니 : 착한 아이였어요. 제 말을 얼마나 잘 듣는 아이 였다구요. 제가 엄마 대신이었거든요. 엄마 없는 애 같다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애썼다구요. 그래서 대학원까지 보냈는데. 아 제가 배우가 됐을 때도 무척 좋아했어요. 저보다 더 신나 했죠. 전 제가 손수 엄선한 작품들로 동생 성교육을 했다 구요.
 
반장 : (신분증을 보며 무심하게 타자를 친다) 연희동 사시고, 양. 귀. 비.. 양귀비?
 
언니 : 호호호 이름이랑 얼굴이랑 너무 매치가 잘 되신다 이거지. 배우협회에도 하나밖에 없는 이름이랬어요. 호호 어 그러니까.. 어디까지 했더라? 아 성교육! 그건 제가 동생을 키우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었어요. 덕분에 동생은 티 없이 맑은 아이로 자랐죠. 아마 동생은 제가 보여 주기 전에 몰래 찾아봤을 거예요. 내가 어떤 연기를 하는지 궁금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제 연기는…
반장 : 됐구요. 동생 얘기나 해보세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언니 : 이런 일이….있었을 거예요. 응 맞아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때가 한 십년 전 이니까 그 애가 열네 살 정도? 였을 거예요. 전 한창 감독님들 만나고 다니느라 정신없을 때 였죠. (히스테리컬 한 느낌) 동생한테 소홀 했던 건 어쩔 수 없었어요. 내가 그 사람들 만나서 히죽히죽 웃고 떠들고 했던 건 다 그 애를 위한 거였으니까요. 급식비를 몇 달 째 못 내서 밥을 굶고 다니는 것도 몰랐죠. 난 하루하루 야위어 가길래 턱선이 날렵해졌다고 남성미가 충만해졌다며 좋아했었는데. 근데 하루는 그것 때문에 학교에서 좀 창피를 당한 모양 이예요. 반 친구들 전부가 듣는 데서 선생님이 급식비 안 낸다고 면박을 줬다나. 맞아 그 날 밤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날 성질이 나서 급식비 3년 치를 일시불 해버렸죠. 아니 그런 몰상식한 선생이 있을 수 있나요?
기자 : 흥분 가라 앉히시구요. 그럼 이번에도 가출 아닌가요?
반장 : (노트북을 덮으며) 아 그거 가출이면 수사할 필요가 없는데.
언니 : 요즘엔 밥은 잘 먹고 다녔는데…. 아 애인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쉬는 날은 반찬을 잔뜩 해두었었거든요. 전 그 애한테 엄마였으니까요.(뿌듯해 하며) 그런데 다음날이면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더라구요. 사내놈이 계집애처럼 섬세해서. 이게 한 5년쯤 반복됐었으니까 아마 사귄 지 꽤 오래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그 여자애는 제 동생한테 흥미가 떨어 진 지 오래돼보였어요. 전 그 애 얼굴만 봐도 알 수 있거든요. 아, 뭐 남자도 잘 알구요 호호. 그런데 그렇게 지극 정성이더니.
 
언니 뭔가 깨달은 듯, 표정이 돌변한다.
그 때 뿔테 안경을 낀 남자(애인)가 안경을 잡고 눈을 빼꿈 거리며 안으로 들어온다. 경찰서 내부를 두리번거린다.
 
언니 : (들어오는 남자를 신경질적으로 쳐다보며 꽥 소리 지른다)아, 그 기지베랑 도망을 갔나? 이 망할 새끼가.
 
남자 언니의 말을 듣고 자리에 정지한다.
 
애인 : 아, 여기가 서대문 경찰서 맞습니까?
반장 : 네, 무슨 일 이시죠?
애인 : 아 그러니까 서대문에서 일어난 일은 여기다 신고하면 되는 거 맞습니까?
 
기자가 남자 곁에 다가와 위아래로 흝어 본다. 그리고 언니를 한번 보더니 별로 건수가 안 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뒤 켠에 의자에 가 앉는다.
 
반장 : 네, 맞습니다 (귀찮은 듯이) 무슨 일이시죠?
 
반장은 말하면서 뒤켠에 있는 책꽂이에서 서류를 찾는다.
 
애인 : (반장에게로 달려와 반장 얼굴 바로 옆에서)그러니까 서대문에 살던 사람이 사라졌으면 여기다 신고하면 되는 거 맞습니까?
반장 : 네네
 
반장은 서류를 찾으며 대답하다 고개를 돌린다. 애인의 얼굴이 코앞에 있자 놀라 자빠진다.
기자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예감하고 수첩을 들고 그에게 다시 재빠르게 다가온다.
 
기자 : 무슨 일 이시죠? 아 저 이쪽 분보다 제가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해 드릴수도 있는데 헤헤
애인 :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제 애인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애인이요. (약간의 쉼, 울컥해서)남들은 둘도 있고 셋도 있드만. 아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명 정도 더 만들어 놓는 건데 말입니다.
 
언니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기자 : (관객을 쳐다보며)에 또 실종사건?
 
무심하던 반장의 표정이 호기심 가득하게 변한다.
언니와 애인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흝어본다.
 
반장 : (손을 맞잡으며 입맛을 다신다) 아 그러면 일단 그 쪽에 앉아 계세요.
애인 : 앉으라 구요? (당황 한다) 아…전 서있겠습니다. 서 있는 게 편합니다.
 
애인이 선 곳은 기자의 시야를 가리는 부분이다.
기자는 언니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힐끔 힐끔 거리다 애인의 어깨를 잡고 뒷켠 의자에 데리고 가 앉힌다.
애인은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치질에 걸려있다.
 
애인 : 으…….
 
기자, 반장, 언니가 놀라서 쳐다본다.
 
애인 : 아…….(눈치를 보며) 지병입니다. 아니, 명예로운 병이라고 할 수 있죠. (뿌듯하다) 제가 평소에 워낙 오래 앉아있어서요.
기자 : 아이구, 거 미안하게 됐어요. 근데 치질 그거 그거 부끄러운 병 아니라구. 현대인이라는 증거라니깐. (애인의 얼굴을 관찰한다) 근데 딱 보니 사이즈 나오네. 고시공부 하죠? 어디, 노량진? 신림?
 
애인이 고통스러워하며 천천히 다시 일어선다.
반쯤 일어섰는데 기자가 갑자기 다시 어깨를 눌러서 앉힌다.
 
기자 : 거 앉은 김에 계속 앉아 있지?
 
애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관객을 보며)
다른 사람들은 애인의 행동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반장이 서서 돌아다니며 이야기 한다.
책상 앞 의자에 언니가 앉아있다.
뒤 켠 의자에는 애인이 최대한 엉덩이의 끝만 걸친 채로 앉아 있다. 그가 언니를 계속 바라보며 관찰한다.
기자는 앉아서 끄적거리고 있다.
 
반장 : 그러니까, 하루 사이에 두 명이 실종 됐다라…(혼자 계속 왔다 갔다 거리며 고민을 한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 애인을 보며) 사이가 어땠나요?
애인 : (눈을 꿈뻑이며, 계속 언니를 쳐다보고 있다) 네?
반장 : 그러니까 그 없어진 애인하고 그 쪽의 사이가 어땠냐 구요?
애인 : 뭐 사이야..아니 그런걸 왜 물으시죠? 여기는 수사를 이런 식으로 합니까? 그거 뭐 조서 이런 거 꾸미면서 차근차근히, 체계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반장 : (언니, 애인을 번갈아 보며)내가 볼 땐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박수를 치며 의지를 다진다.)자, (입맛을 다신다.) 이게 바로 내가 기다려온 사건 같군요.
애인 : (관객을 보면서 무대를 이리저리 살핀다)아니 모 경찰서에 경찰이라곤 딱 한 명이고, 여기 경찰서 맞습니까?
반장 : 애인 찾고 싶으신 거 맞죠?
애인 : 그럼요 찾아야죠 내 사랑.
반장 : 그럼 수사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마지막으로 만나신 게 언제죠?
애인 : 마지막 이라……….그녀와 저 사이에 마지막은 없습니다.
반장 : 하 장난 그만 치시구요.
애인 : 장난? 경찰님 눈에는 이게 장난처럼 보입니까?
반장 : 휴 마지막으로 만난게 언제라구요?
애인 : 어젯밤 꿈 속 입니다. (당당하다가 경찰이 멱살을 잡자 쫄아서…) 일주일 전에 제 방에서 데이트를 했습니다. 저한테는 한 달에 한번 사치를 부리는 날입니다. 치킨을 시켜먹었거든요. 미드도 보고. (결연한 느낌)그 방에서 저는 짐승입니다. 외로운 짐승. 아무 소리도 내면 안됩니다. 근데 며칠 전엔 옆방사람이 여자 친구를 데려 왔더랍니다. 마침 공부가 잘 되던 때였는데, 어찌나 시끄럽던지. 스트레스도 이빠이 쌓였겠다 욕을 한 바가지 해주려고 뛰쳐나갔는데, (관객에게 들이댄다)문 앞에서 소리가 들렸어요. 아~ 아~(신음소리를 내며)신이 제게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메시지를 들으려고 더 가까이....좀 더 가까이..아~~
 
반장은 애인의 말을 받아 적으며 점점 황당해 하는 표정을 짓는다.
 
반장이 손으로 딱 소리를 내자 조명이 어두워지고 갑자기 모든 사람이 동작을 멈춘다.
반장이 관객을 바라보며 말한다.
 
반장 :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이 두 사람, 정상이 아닌 거 같죠? (대답 유도) 네? 저도 정상이 아닌 거 같다 구요? 크흠. 이 두 사람, 사람 찾으러 왔는데 전혀 초조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말인 즉슨, 평범한 수사법은 통할 것 같지 않다 이 말 입니다. 그래서 저의 20년 노하우가 담겨있는 수사법을 10년 만에 써보려고 합니다. 다들 놀라지 마세요. (손으로 딱 소리)
 
원래 움직임으로 돌아온다.
 
반장 : (턱을 만지며) 어 거 나 기자
 
기자가 반장 곁으로 뛰어온다.
기자와 반장이 쑥덕쑥덕 회의를 한다.
 
반장 : 나 기자는 어떻게 생각하나?
기자 : 뭘 말이예요?
반장 : 아 저 인간들 말이야. 냄새가 나.
기자 : 무슨 냄새요?
반장 : 그냥 실종신고를 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야. 흠..피해자를 실종신고하고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거지.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헛소리 지껄여 대면서 태연할 수가 없거든.
기자 : 에? 우리 반장님 또 추리소설 쓰기 시작하셨네. 반장님, 거 저번에도 헛다리 짚으셔가지고 그 위에서..
반장 : (말 끊고) 두고 보라구. 이번엔 진짜니까. 느낌 왔거든. 훗 드디어 때가 온 것 같다. 그래 이번에 크게 한 건 잡아서 난 진급 하고.
기자 : 난 승진하고
 
반장과 기자가 손을 붙잡고 킥킥 댄다.
킥킥거리자 언니와 애인이 쳐다본다.
 
반장 :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그래 그게 좋겠지? 아무래도 자료를 찾아봐야겠어. 당장 정보과로 가지.
기자 : 정보과요? 아, 진짜 무심하시기는 저 며칠 전에 정보과 박 순경한테 차인 거 모르세요?
반장 : 넌 만날 차이면서 왜 그래 새삼스럽게~
 
반장이 인상 쓰며 기자의 귀를 잡아끌고 나간다.
암전.
 
 
 
 
적막 속에서 언니는 도도한 몸짓으로 경찰서 이 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애인이 갑자기 가방을 뒤지더니 종이와 펜을 꺼내 들고 언니에게 간다.
 
애인 : 저..저기……….맞죠?
언니 : (도도하게 웃으며)네?
애인 : (언니 목 뒤에 점을 보고 지금까지와 다르게 호탕해지며)하하하하 맞네 맞아. (언니 손을 덥석 잡으며)아니 어젯밤에 모니터에서 보던 사람을 여기서 다 만나다니 세상 참 좁네 좁아.
언니 : (뜸을 들이다 무언가 알았다는 듯이 도도하게)아~~~~
 
애인에게 시선이 쏠린다.
 
애인 : 어젯밤 제가 (갑자기 팔을 벌리며) 제 팔의 한 쪽 너비 정도 되는 침대에 앉아서 헌법 책을 펴 놓고 서론만 30번째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1센티 정도 열려있는 창문 틈으로 무르익은 밤공기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하는 새벽 2시 12분정도?(혼자 심취해서 밤공기를 느낀다.) 저는 헌법을 제 몸에 흡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만 되면 몸이 근질근질 한 게 가만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 몸이 헌법 때문에 조금 긴장하는 것 같아서 긴장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럴 땐 그냥 제 몸한테 정신을 맡겨야 하죠.
애인 : (사람이 갑자기 호탕해진다. 언니 등을 치며) 내가 그 쪽 덕분에 요즘 아주 살맛납니다. 특히 어제는 그 왜 요즘 유행하는 3D안경을 끼고 감상했는데, 좀 다르덥디다. 기분 탓이겠죠? 아무튼 그 작품은 21세기에 길이 남을 명작입니다. 개인소장 가치가 있어요. (무릎을 끓고 등판을 내밀며) 여기,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언니 : 여기다가요?
 
애인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언니 : 풋, 성함이?
애인 : 변태균 입니다.
언니 : 뭐라구요?
애인 : 변.태.균 이요.
언니 : (황당해하며) 아…
애인 : 거기 이름 밑에 이번 2011년 53회 사법시험 꼭 수석합격 하세요. 이렇게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흐흐. 감사합니다.
 
언니가 등에 글씨를 적으니 간지러워 한다.
 
애인 : 으 흐흐 흐흐흐흐흐
언니 : (뒤통수를 치며)아니 지금 경찰서에서 저 성희롱 하시는 거예요?
 
애인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눈을 꿈뻑 거리는 표정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언니 : (떨떠름한 표정으로) 뭐 그래도 그 쪽 그 럭셔리한 취향은 맘에 드네요. 다들 내가 사라져봐야 소중함을 느끼지. 내가 있어서 이 밤이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거라구요. 평화, 그거 참 멋진 말 이예요. 그죠? 제가 또 평화주의자거든요. 몸으로 평화를 실천하는.
 
언니가 도취해서 이상한 몸짓을 한다.
그 때 기자가 다급히 백수(반장)의 멱살을 잡고 들어온다. 잠복 수사를 위해 반장이 백수로 분장한 것.
백수의 얼굴에는 점이 찍혀 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기자 : 내가 어 잠깐 화장실 갔다가 배가 너무 고파 가지고 편의점에 야식 사러 갔는데 아니 이 자식이 빵을 훔치고 있더라구요. 참 나 지가 장발장도 아니고 하 거 내가 기자인 걸 못 알아본 게지. 딱 걸린 거지. 그래서 어 형사님의 무료한 일상에 한 줄기 빛이 될까 하고 내가 냅다 낚아채왔어요. 형사님?
 
기자가 고개를 돌리는데 반장이 없다.
백수의 멱살을 잡은 상태로 서로 고개를 번갈아가며,
 
기자 : 어, 형사님? 우리 반장님? 어디 가셨을까? 우리 반장님 못 봤어요?
애인 : (눈을 끔뻑이며) 아까 뭐 찾아보러 가신다구…
 
멱살이 잡혔던 백수가 기자를 떨쳐내고 기자의 멱살을 잡으려는데 기자가 얄밉게 계속 피한다. 두세 번 실랑이를 하다 백수가 기자의 멱살을 잡고 서럽게 소리친다.
 
백수 : 아니, 제가 뭐 반짝이는 걸 훔쳤습니꺼 시퍼런걸 훔쳤습니꺼? 이 나라에 날고 기는 도둑눔들이 을마나 많은데. 자고로 요즘 도둑질은 소리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은행계좌로 슬금슬금 빼먹는 게 대세라구예. 내 배가 고파서 입이 삼삼한게, 빵 하나 그거 오백원 짜리 하나 먹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죽을죄를 지은 겁니꺼?
 
기자가 더 더 크게 하라는 눈짓을 보낸다.
 
백수 : (발끈해서) 아니 이 피 끓는 청춘한테 빵 하나도 못 멕여주는 이 나라는 대체 뭡니꺼? 그리고 당신! 당신은 그냥 주머니에 오백원 넣어주고 조용히 사라져 버렸으면 그럼 됐을 거 아닌 게요.
 
기자는 멱살 잡힌 채로도 얄밉게 취재수첩을 꺼내 수첩에 기록을 한다. 그러다 백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가 윙크를 하며 살며시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서 쥐어준다(아까 주머니에 넣었던 빵).
 
백수 손에 쥐어진 빵을 한번 보고 기자를 내려놓는다.
백수 빵을 뜯어 먹으면서 뒷켠 자리에 가 앉는다.
백수가 빵을 뜯음과 동시에 멈춘 것처럼 보였던 형사와 언니 애인도 풀어져 원 위치로 간다.
 
백수 : 하 여긴 좀 따뜻하네예. 이제 살겠네 살겠어. 서울역도 오늘은 꽉 찼습디더.
 
백수 외에 모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백수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백수 : (빵을 먹다가 자신을 향한 시선을 눈치 챈다. 민망한 듯 웃으며) 아 그러니까.. 제가 행색이 이래 뵈도 집 없는 남잔겨.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아 여기 경찰서니까 사람 좀 찾을 수 있나요? 내 돈 떼먹고 간 기지베 하나. 그 망할 기지베.
기자 : 아 그 쪽도 찾을 사람이 있어요?
백수 : 전 원래 500에 30사는 남자 였으예. 직업은 없어두 소소한 일거리로 젊은 나이에 내 집 마련에 성공한 남자였지예.(으스댐) 근데 그 내 돈 떼먹은 기지베 때문에 다 망해버렸으요. 내가 그 기지베 잡을려고 형사…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백수 : 형님하고 연도 끊었지요.
언니 : (하트눈빛으로, 멍청한 느낌) 와~ 보기와 다르게 로맨트? 로맨?? 로맨시스트 시네요.
백수 : (갑자기 멋있는 척 목소리를 굵게 하며)하 그게 또 그렇게 되나예? 하하
애인 : (언니가 백수에게 관심을 보이자 경계한다.) 저 그런데 왜 자꾸 말 중간 중간에 반말을 쓰시는 겁니까? 엄연히 우리는 모두 초면인데 말입니다. 굉장히 정말로 몹시 매우 기분이 언짢습니다.
 
백수와 애인이 실랑이를 벌이자, 기자가 상황을 정리한다.
 
기자 : 그 분이 언제 사라지셨죠?
백수 : 10년 전이요. 아니 아니 며칠 전에 급하다면서 돈을 계좌로 쏴달라고 합디더. 너무 다급해 하길래 방 보증금 냅다 빼서 바로 쏴줬으예. 돈이 10원도 남김없이 다 보내졌다는 메시지가 떴을 때는 전 너무 행복해서 날아ㅡ갈 것 같았심더. (감정을 곱씹는다) 아 맞슴니더. 정말 그랬어예. 다른 누구도 아니구 나를, 이 박천민이를 애타게 찾았으니까. 나가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고 필링. (다리가 길어 보이는 척 하며) 키다리 아저씨가 된 것 같았심더.
 
모두의 시선의 백수의 다리로 향한다.
기자가 백수를 보며 엄지를 치켜든다.
 
백수 : (짧은 다리를 보며) 아 그러니까 느낌만이요. 지금은 그 기지베 때문에 목발 짚고 다니게 생겼심더.
언니 : (백수를 지켜보다 기자를 보며) 저기요, 기자님. 제가 제일 먼저 왔는데요. 왜 자꾸 이 분한테만 질문하세요? 요즘은 경찰서에도 상도덕이 없어.
백수 : 아, 허허 뉴페이스라 그런가 보지예. 보니까 다들 누구 찾으러 오셨나 보네예.
언니 : 전 동생
애인 : 전 애인
백수 : (언니와 애인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며) 아 동생, 애인..다들 한시가 급하시겠네예.
 
백수가 반장 책상을 뒤적뒤적 거린다. 자신의 책상이므로 익숙한 느낌으로.
 
애인 : (언니를 쿡 찌르며) 근데 저기요, 아까부터 제가 좀 불편했는데요. 아까 로맨시스트니 상도덕이니 하셨는데 상도덕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상은 헤아릴 상 자구요. (언니 못 알아듣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상업 활동에서 지켜야 할 도덕. 특히 상업자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의를 이를 때 쓸 수 있는 말이죠.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은..어..(옆에 있던 종이에 글씨를 써서 언니 얼굴에 갖다 대며) 그러니까 이건 입구자 부수를 쓰는 11획의 한자로 헤아린다, 즉 이게 말이죠..상거래에서 그러니까..
언니 : (못 알아듣는 말 하니까 당황해서 가방을 들고 문가로 가며) 어우 아까 물을 너무 마셨나봐,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암전.
 
 
 
#2. 화장실(언니/교수)
 
무대 한 켠 조명만 비춘다.
거울이 있고 화장실 세면대가 있다.(간단하게)
교수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다.(못 생기게 분장)
언니가 앞쪽 에서 씩씩대면서 들어온다.
 
언니 : 아니 무슨 남자가 쫌생이 같이 단어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지고, 징말
 
그러다 사람을 발견하고 도도한 척 하며 세면대 앞에 서고 교수를 힐끔 힐끔 살펴본다.
교수가 언니를 경계한다. 둘은 좁은 세면대를 놓고 살짝 자리싸움을 한다.
 
언니 : 이것 봐요, 그 쪽 부피가 크다고, 여기 자리도 넓게 차지하라는 법 있나요? 아니 부피가 좀 크면 비켜서면 될 꺼 아니야? 제가 꺼내놓을 화장품이 조금 있어서.
교수 : (뒤에서 등산가방을 꺼내올리며) 저도 화장품 많거든요?
언니 : 아 네 그러시겠죠, 모 넓어서 많이 바르셔야 되니까. 화장품 금방 쓰시겠네요. 요즘 대용량도 많이 나오던데 호호
 
교수가 째려본다. 열받아서 등산가방 안의 아령을 꺼내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둘은 계속 엉덩이를 씰룩 거리면서 자리싸움을 한다. 점점 격해진다.
그러다 언니가 넘어진다. (경쾌한 음악 들어감)
 
언니 : 아니, 이 여자가 교양이 없어? 못 생겼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지.
교수 : (엄청 크게 말한다.) 뭐라구요? 방금 뭐라 그랬어요?
언니 : 어머 어머 무식하게 목소리 까지 커 진짜.
교수 : 누가 누구한테 교양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저 대학에서 교양강의 하는 여자거든요?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봅시다 그 쪽이 교양 있어 보이는지, 내가 교양 있어 보이는지. 경찰서에 미니스커트 입고 이렇게 화장 떡칠 하고 오는 여자는 교양이 있는 겁니까?(약간의 쉼)아하.. 보아하니 꽃뱀이구만? 그 와중에 화장 고칠 정신이 있어요?
언니 : (당당하게 쳐다보며 말한다)네, 전 시대의 아이폰 이거든요.
교수 : 아이콘이겠지 이 멍청한 년아.
 
언니는 계속해서 화장을 고치고 있다.
교수만 열 받아 죽을 것 같은 느낌.
 
 
언니 : (교수의 피부를 만져보며) 음, 교수님은 약간 건성이시니까 요 제품보다는 (자기 것을 보여주며) 요 제품을 쓰는 게 더 교수님을 돋보이게 해줄 꺼 예요. 흐흐. 화장을 잘하면 걸음걸이도 달라지구, 걸음걸이가 달라지면 (교수의 어깨를 치며) 남자들이 따르죠.
교수 : 전 남자 만나려고 화장하는 댁같은 그런 여자 아닙니다. 당신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구요.
 
언니가 립스틱을 칠한다.
교수가 언니를 지켜보다가 재빨리 립스틱을 꺼내 따라 칠한다.
그런데 돼지입술처럼 이상하게 그린다.
 
언니 : (교수의 자세를 고쳐주며) 립스틱도 입술 선을 따라 이렇게 그리셔야죠.
 
그 때 교수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교수가 주머니 속 쪽지를 꺼내보며 유창하게 영어로 통화한다.
 
교수 : Oh Hi, Mark. Oh really? yesterday...........um...oh my trouble seem so far away!

언니를 흘깃하는데 언니가 째려보고 있다. 교수는 당황해 컨닝페이퍼를 놓쳐버리고
막 뱉는다.
 
교수 : long time no see. twinkle, twinkle little star. How are you? What? Crazy? Mother father valet parking man!!!
 
교수 : 이번에 제출한 논문이 좀 어렵긴 한가 봐요 마이 셀룰러폰으로 자꾸 전화해서 물어들 대시니. 호호 이번엔 좀 획기적인 방식으로 논문작업을 했더니 바로 이렇게 성과가 드러나네요. 이번논문은 규제와 economy성장의 관련성에 관해서 아주 과학적으로 분석 한..
 
그 때 술 취한 남자취객이 여자화장실을 남자화장실로 착각하고 들어온다.
 
취객 : 어? 뭐야 나 기다리고 있었어?
 
언니는 많이 겪어본 듯 한심하게 쳐다보며 얼른 짐을 챙겨 나간다.
그 때 취객이 비틀거리면서 교수를 안는다.
교수가 몸은 가만히 있고 괴성만 지른다.(약간 좋으면서 싫어하는 척 하는 느낌의 괴성)
언니가 나가다 돌아보며 말한다.
 
언니 : 아 교수님, 아까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얼굴에 향수를 뿌리시면 어떡해요? 호호
교수 :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이 사람 뭐야, 뭐야, 이봐요 아이 이봐요~ 아이 참 저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거든요? (그러면서 취객을 밀쳐 넘어뜨린다.) 아이 무슨 남자가 그렇게 히바리가 없어. 민다고 진짜 가면 어떡해(일으켜 세우며 안긴다.) 어머 박력 있다.
 
 
교수가 계속해서 괴성을 지른다.
암전.
 
 


#3. 경찰서 내부(백수/언니/애인/교수/기자)
 
암전 되어 있는 상황에서 반장 쪽에만 불이 켜지고 나머지는 멈춰있다.
 
반장 : 백수로 분장한 제 모습 완벽하지 않습니까? 뭐 이제야 서로 경계를 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제가 등장함으로써 말이죠 하하. 그런데 2%부족한 이 느낌.. 흠.. 그래서 더 완벽한 수사를 위해 저의 히든카드를 꺼내보려 합니다. (약병을 꺼내며) 바로 요것.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무대 오른쪽. 간이 테이블. 조명은 무대의 반만 비춘다.
애인도  앉아서 먹고 싶지만 망설인다.
 
언니 : (애인을 보며) 앉으시지 서서 계속 뭐하고 있어요?

애인이 의자를 들어 엉덩이에 붙인 다음 의자와 함께 앉으려고 한다.
거의 다 앉으려는 찰나 백수가 그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일어서 반대편에 있는 단무지를 가져온다.
 
백수 : 아 거 무가 너무 멀리 있어서.
 
애인, 고통스러워한다.
 
이 때, 교수가 씩씩 거리며 들어온다.
교수가 흥분해서 언니에게 따진다.
언니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교수 : (소리를 지른다.) 아니 이보세요, 경박해도 정도가 있지 내가 소리 지르는 거 못 들었어요?
언니  : 못 들었어요~(얄밉게)
 
경찰서 내부의 시선이 교수에게 집중된다.
교수가 씩씩대다 치킨을 보고 눈이 초롱초롱 해진다.

 
교수 : 아니 음식을 이렇게 남기면 쓰나. (주위를 둘러보며) 그나저나 형사님 어디 가셨죠?
백수 : 아.
 
백수가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들다 말고 머리를 긁적인다.
 
백수 : 형사님 잠깐 뭐 찾으러 가셨습니더. 무슨 일 때문에 오셨으예.
교수 : 여기 실종신고 하려면 어디로 가야 되죠? 잘못 찾아온 거 같은데.
백수 : 실종? 여기 다 사람 찾으러 온 사람들 인겨.
언니 : 반장님은 왜 안 오시지?
백수 : 거 내가 천천히 오시라고 했어예. (안주머니에서 맥주를 꺼내며) 저 우리 요게 없으면 섭하지예. 다 같이 딱 한잔, 한잔씩만 하입시더.
애인 : (술병을 만지며)오, 이건 어디나라 맥주입니까?
백수 : 아~ 이거? 우리집 !!
 
백수가 잔을 따라 돌린다. 그 때 뻐꾸기 시계소리가 세 번 울린다.
 
언니 : 어머, 경찰서에서 뻐꾸기가 우네.
백수 : 아 저거, 건전지를 안 갈아줘서 맛이 갓심더. 열두시에도 세 번, 여섯시에도 세 번, 뭔놈의 뻐꾸기도 국산이라 삼세번밖에 몰라예.
 
교수가 혼자 한잔 들이킨다.
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질세라 한잔 들이킨다.
 
교수, 언니 : 크아~
 
언니가 목을 부여잡고 숨소리를 거칠게 낸다.
 
언니 : 어디서 타는 냄새 나지 않아요?
백수 : (불이 났는줄 알고 놀라 수선을 떤다.) 타..타?타? 타요? 뭐가 뭐가 타는겨? 뭐요 어디?
언니 : (배시시 웃으며) 제 목이 타는 것 같아요. 이거 죽인다~ 한잔 더.
애인 : 귀비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전 귀비씨의 흑기사가 되겠습니다.
 
애인이 술을 먹기 전에 기도를 한다. 그리고는 두 잔을 연거푸 마신다.
언니는 애인이 마신 자기 잔을 아까워하며 입맛을 다시다 정색한다.
언니가 잔을 따라 마시려 하자 애인이 막는다. 티격태격 말이 오고 간다.

 
교수 : (약간 혀꼬인 투로) 아이 누가 경찰서에서 연애질이야.
백수 : (잔을 따라주며) 자자, 싸우지들 마시고 사이좋게 한잔 씩 합시다.
언니 : 음 이렇게 있으니까 대학교 때로 돌아간 거 같네요. 뭐 나쁘지 않네요.
교수 : 어디 대학 나오셨어요?
언니 : 아, 그건 제 사생활이거든요? 뭐 네이버에 검색해보시던지.
애인 : 아~ (기지개를 펴며) 만날 코딱지만한 방에 있다가 이렇게 탁 트인데 오니까 몸 안에 세포 하나하나가 다 살아나는 느낌입니다. (관객석을 보며) 사람도 득실득실하구. (조명을 느낀다.) 제 몸이 저에게 가만있을 수가 없다 합니다. (한잔 들이킨다) 저 노래 한 곡해도 될까요?
 
애인이 일어나 음치처럼 노래를 부른다.(음치 박치의 느낌. 모범생의 느낌이 나도록)
 
언니 : 노래하니까 분위기가 확 사는 것 같아요.
백수 : (어이없어하며) 아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교수는 혼자 술을 먹고 안주를 먹고 있다 잔이 양에 안차 병 째 들이킨다. 그러더니 헛기침을 하면서 갑자기 일어나 미녀는 괴로워 노래를 부른다.
세 명이 멍하니 쳐다본다.
 
교수 : 난 너무 이뻐, 난 참 섹시해 (얼굴을 감싸며) 미모는 나의 무기
백수: 아..정말 진짜 굉장한 무기네요. 아우 식후라 다행이네요.
언니 : (회상에 젖는다.) 어? 그거 그거. 그 노래 나도 참 좋아했던 노랜데. 그 노래로 오디션을 봤었거든요. 뭐 전부 떨어지긴 했지만. 보는 눈이 없었던 거지. 나한테 고급스러운 느낌이 없다나?
애인 : 뭐 그런 과가 아닌 신 건 맞습니다. 사람은 자기 주제를 알아야 하니까요. 아니 제 말은..
 
언니가 째려본다. 성질이 나 술을 들이켜고 일어난다. 여러 가지 색이 어우러진 사이키 조명으로 바뀌고 노래가 나온다. 춤을 추며 이야기 한다.(뮤지컬 노래에 맞춰서 짧게)
 
언니 : (당차게) 전 노래를 잘해요. 그런데 춤까지 잘 추죠. 학교에서 전 가난하고 가족 없는 전형적인 불쌍한 캐릭터였어요. 하지만 노래하고 춤출 땐 애들이 절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죠. 그때만큼은 내가 (춤을 추다 멈추고, 포인트) 걔네들의 우상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한 살 한 살 나이만 더 먹길 바랬죠. 성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뮤지컬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주인집 아줌마(교수) : 아니 이러다 1년 채우겠네, 거 월세는 언제 낼 거야? 만날 그렇게 뛰고 뒹구르고 한다고 어디서 돈이 나와? 빨리 월세 내놔~!!
 
언니 : 그러다 스무 살이 됐고, 그냥 무작정 매일매일 대학로의 연습실에 출근 했어요. 그런데 난 거기서… 투명인간이었어요. (쓸고 닦으면서) 그래도 죽어라 했죠. 한 달, 두 달, 세 달 매일 매일 쓸고 닦고 또 쓸고 닦았어요.
 
선배(교수) : (언니를 쿡 찌르며) 야.
 
언니는 청소하느라 한 번에 못 알아듣다가 주변을 살핀다.
 
선배(애인) : 야, 너 말이야 너.
언니 : 네? 저요?
선배(애인) : 너 노래 한번 해볼래?
언니 : 노래요? 지금요?
선배(애인) : 응 당장 지금 여기서.
 
언니 목청을 가듬고 노래를 한다. 그러나 음치에 삑사리에 엉망이다.
 
언니 : 그 노래는 내가 들어도 최악이었어요. 다섯 달을 맨날 쓸고 닦고만 했으니..그 때 불렀던 노래가(교수를 가리키며) 저 노래예요.
 
조명이 다시 밝아진다.
백수는 계속 적고 있다.
 
애인 : (변태스러운 느낌) 뮤지컬..? 어쩐지 발성이 남다르시더라..그럼 지금 하시는 일은 뭐 아르바이트 정도? 거 몸 쓰는 아르바이트가 제일 힘들텐데.
교수 : 배우..이신가 봐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언니 : 처음엔 그랬죠. 그냥 잠깐 하고 마는 거라고. 동생 가방 끈 늘려주려면 어쩔 수 없었거든요. 난 끈 짧은 가방 들고 다니느라구 힘들었으니까. 책도 안 들어가는 그 코딱지만 한 가방. 대학원 가고 싶다 해서 진짜 너무 한다 싶어서 울컥했었는데, 그래도 우리 집안에 박사 나온다고 좋아했죠. 박사. 석사도 아니고 박사. 생각만 해도 멋있지 않나요?
교수 : (혀가 꼬여서) 그렇죠. 제가 바로 박사임 입니다.
언니 : 박사임? 이름 따라 간다더니. 박사 동생만 없었어도 전 지금쯤 못해도 조연급 정도는 됐을 꺼예요. 이런 물에서 놀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구요.
애인 : 그럼 전 동생분께 감사해야 하는 건가요? 하하. 그래도 귀비씨는 어린 나이에 사회적인 명성도 쌓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지 않습니까? 전 (한쪽 팔을 벌리며) 이만한 너비의 방에서 5년 째 서식 중… 아니 공부 중입니다.
교수 : (음식이 입에 가득한 채로) 아..이쪽은 고시생?
애인 : 뭐 저도 어디 믿을 만한 구석이 있어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닙니다. 아 전 3대독자이긴 하지만요. 그게 제 발목을 잡죠.
 
조명이 약간 어두워진다.
 
아버지(백수) : 아이구, 우리 검사님 오셨네. (애인 왼쪽에서 멈춰진 채로 애인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애인 : 뭐 20년 동안 들어와서 거북하지도 않습니다. 어쩔 땐 제가 이미 검사가 된 거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못 다 이룬 꿈 제가 이뤄야 하죠.
 
여자친구(언니) : 졸지 말구, 이번엔 정말 합격해야 하잖아? 내가 영양소 다 생각해서 골고루 넣어 놓은 거니까 꼭 한 번씩 다 젓가락질 해야 해. (애인 오른쪽에서 멈춰진 채로 애인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
 
애인 : 5년 동안 저한테 반찬 꼬박꼬박 갖다 주는 제 애인입니다. 일주일전에 제 방에서 데이트를 할 때도 전 헌법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맞아, 그 날이었어요. 그런데 그 날따라 책에 정말 손톱만한 하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겁니다. 그래서 얼른 죽였는데, 이번엔 책꽂이에, 그것도 세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것도 얼른 죽였는데, 이번엔 물컵 속에, 서랍 속에, 제 신발 속에, 그리고 제 머릿속에까지(앞에 있는 관객에게 몸을 흔들며, 미친 사람 느낌) 벌레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녀에게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벌레냐며 절 미친 사람 취급 하더군요. 절 그렇게 미치게 만든 사람들이 누군데.
 
애인이 큰 소리로 말하자 두 명의 시선이 집중된다.
 
애인 : 이제는 내가 꿈을 꾸는 건지 그 사람의 꿈을 제가 대신 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방 천지에 벌레가 가득한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확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없어졌어요.
 
애인이 슬픈 표정을 짓는다.
조명이 밝아진다.
 
그 때 기자가 부산을 떨며 철가방을 들고 앞에서 들어온다.
 
기자 : (철가방을 놓고 음식을 꺼낸다.) 여기 다들 모여계시네? (관객석에 있는 애인을 보며) 이 양반은 왜 여기 있어. 일로와 봐요. 어떻게 조사는 다들 끝내셨어요?
백수 : (철가방 든 기자를 의아하게 보며) 당신 직업이 뭡니까?
기자 : 전 대한민국 자유언론의 수호자이지요. (철가방을 본다) 아 모 거리 없을까 싶어서 요 동네 돌아다니다가 중국집 갔는데 아, 오늘 새벽영업 끝났다고 떨이로 군만두랑 깐풍기랑 오향장육 요거 요거 요거 세 가지나 챙겨주셨어요. 그 내 후배가 요 지역지 기자거든. 홍보기사 하나 써 달라 이거지 모. 이게 다 저의 이 영업수완 덕분이죠. (교수를 보며) 아 이 분은 누구신가? 그 쪽도 사람 찾으러 왔어요?
교수 : (취해서) 아, 저는 제 논문을 대필하던 친구가 없어져서요.
기자 : 네? 대..?뭐 아…교수님이신가 보네.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언니 : 아~ 이건 좀 먹을 만하네. 어디 좀 먹어 볼까??
 
기자가 백수에게 결제한 영수증과 카드를 준다.
다들 음식을 먹는다.
애인은 먹기 전에 또 기도를 한다.
 
백수 : 음, 이 오향장육 은은한 향이 쥑이네. 깐풍기도 꼬슬꼬슬한게. 간만에 위에 지방층 좀 쌓이겠어예. 역시 비싼 게 맛있긴 해요.
애인 : (정색하며) 그래서 자본주의가 정교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수 : (음식을 허겁지겁 먹으며) 자, 자.. 그래 뭐 그래서 내가 서울역에서 잠을 자는 거 아닙니꺼.
교수 : (잔뜩 놓인 음식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먹을 게 많아서 나 같은 스타일이 안 먹히는 거 아세요? 그게 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거란 말이예요. 먹을 게 부족 했어봐요. 나처럼 이런 풍만한 스타일이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근데 지금은 풍요의 시대라구, 이렇게 먹을 게 쌓여 있으니까 뚱뚱한 사람은 뭐 인생에 좌절하고 실패한 사람처럼 쳐다보잖아요? 이것 보세요. 이 분이 이렇게 쭉쭉 빵빵 하셔도 사회적으로는 제가 더 성공 했다구요. 근데 왜 저를 다들 루저 취급하는지 정말 기가 차서.
언니 : (교수를 째려보면서) 저도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든요? 뭐 쪼금 어두운 사회지만.
교수 : (계속 우걱우걱 먹는다) 근데 이거 신고하면 며칠 만에 찾을 수 있죠?
기자 : 뭐 경우에 따라 다르죠. 아, 교수님이 찾으시는 친구가 그 논문을 같이..
교수 : 논문심사가 얼마 안 남았는데..
 
교수가 우걱우걱 먹다가 사래를 들린다. 백수가 술을 건네준다.
 
백수 : 어이구, 이것도 마셔가면서 드셔요.
 
교수가 맥주를 한 컵 먹고 계속 기침을 하며 가슴을 세게 치다가 우는 시늉이 된다.
 
기자 : 그니까 그 교수님하고 그 친구하고 그 이제 논문을 같이 쓰는 중이었던 거죠? 같이. 그 친구가 교수님을 조금 도와주는 식으로. 고런 거 요즘 많이들 하시더라고. 맞죠?
 
교수 : 같이가 아니라 대필. 기자분이 대필도 모르시나? 대필이라니까 대필? 대신 써주는 거? 몰라?
 
가만히 듣고 있던 기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기자 : (조그만 소리로) 어, 부장님? 부장님 나 한 건 잡았어요. 거 내일 신문 사회면에 조그맣게 한 칸 비워놔요. 아니 좀 커질 수도 있겠어. 넉넉하게. 아 이번엔 진짜 라니까? (교수를 보며) 교수님 힘드시죠? 교수님 속상한 거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래서 말인데, 간단하게 진짜 30초면 돼. 그 인터뷰 좀 해 주실 수 있어요?
교수 : 인터뷰? 그거 하면 나 정교수 시켜 주는 거예요?
기자 : 그럼 그럼 그럼. 지금 여기저기서 전화오고 난리야. (숟가락 쥐어주면서 우쭈쭈) 자 자 이거 잡으시고, 간단해요 그냥 교수님 심경을 아주 간단하게 릴렉스 하게 이야기 하시면 됩니다. 자.
교수 : 이번엔 꼭 정교수로 임용되고 싶었는데. 시간강사 짓도 이젠 지겹다구요. 방학만 되면 난 조마조마 전화를 기다려요. 다음에도 강의를 할 수 있을까? 강의 준비를 하다가도 어느새 전화기만 이렇게 넋 놓고 보고 있어요. 그 짓 안 해본 사람은 몰라. 이번엔 이 짓을 좀 그만 하나 싶었는데. 그래서 그 돈 주고 대필을 맡긴 건데. 아 걔가 논문을 써준 사람들은 턱 교수 임용이 되 덥니다. 내가 다 쓰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랬지. 누가 쓰다가 도망가래.
기자 : 오케이.
백수 : (떠보는 식으로) 거 요즘 같이 다 까발려지는 세상에 누가 무슨 조건으로 대필을 해줍니꺼?
교수 : 다 있어요 그런 게.
언니 : 난 시간강사만 해도 감자덕지 할 텐데.
애인 : 에이 또 그게 그게 아닙니다. 그게 한끝차이인데 또 천지차이 입니다. 귀비씨는 모르실겁니다. 모르는 게 약이죠.
언니 : 지금 저 가방 끈 짧다구 무시하시는 거예요?
 
언니가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며 말한다.
 
언니 : 숟가락은 또 어디 갔어? 난 포크 아니면 안 먹는데.
교수 : 그럼 손으로 먹어. 이년아
백수 : 아!
 
백수가 뒤에서 뭔가를 꺼내는 듯 하다 손가랑 세 개를 거꾸로 펴서 언니 앞에 들이대며 호탕하게 웃는다.
 
백수 : (정중하게)포크 여기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안 좋다.
 
언니 : 어쩜,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 남자다우시네요.
애인 : (백수를 제치며.) 귀비씨 제 손가락이 더 얇아서 더 잘 찍힐 것 같지 않으십니까?
교수 : 나도 포크가 있어야 되는데..(애인 손을 잡고 비튼다.)
 
애인 괴로워하며 교수의 이마에 부적을 붙인다.
 
백수가 코를 훔치며 고개를 숙인다.
백수가 언니의 먹는 모습을 보더니 품에서 사진을 꺼내 보고 있다.
백수가 미간을 잡으며 슬퍼하는 척을 한다.
언니가 사진을 힐끔 본다.
 
언니 : 미인이시다. 뭐 저보다는 아니지만.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백수의 사진과 맞붙이며) 제 동생하고 잘 어울릴 꺼 같죠? 이 분 찾으시면 저한테 꼭 전화주세요.
 
애인이 백수의 사진을 보더니 자기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백수에게 보여주며 말한다.
 
애인 : 여기 제 애인도 보십시오. 제 스타일이 이렇습니다. (언니를 가르키며) 여기 이 분하고도 느낌이 좀 비슷하지 않습니까? 허허
 
 
백수가 애인의 사진을 보더니 표정이 굳는다.
기자가 백수의 표정을 보고 애인의 사진을 힐끔 본다.
교수가 아무 말이 없자 무대 위의 시선이 교수에게 주목된다. 기자가 교수이마의 부적을 떼 준다.(부적은 행동을 멈추게 함)
 
교수 : 거 다들 됐고요. (교수도 핸드폰을 내밀며) 얘, 얘나 빨리 찾아주세요.
 
백수가 사진 사진을 함께 보더니 번뜩이는 표정을 짓는다.
미션임파서블 배경음악 등장.
백수가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낀다.
뮤지컬 느낌. 여러 가지 조명 색이 섞여 비추어 정신없는 느낌.
기자가 언니, 애인, 교수가 들고 있는 사진을 벽에 붙인다.
기자, 언니, 애인, 교수는 움직임을 멈춘다. 백수는 돌아다니면서 이야기 하고, 세 명은 고정된 표정과 움직임으로 백수가 묻는 말에 입만 벙끗한다.
백수는 콜롬보 형사 톤으로 묻는다. 전체적으로 리듬감 있게.
 
백수 : 없어지던 날, 날씨는 어땠죠?
언니, 애인, 교수 : 비가 내렸어요.
백수 : 생김새는 어떻죠? 아, 머리 스타일 같은 것이요.
언니, 애인, 교수 : 숏커트
백수 :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어떤 옷을 입고 있었죠?
언니, 애인, 교수 : 빨간색과 검정색 줄무늬 옷
백수 : 꼭 찾고 싶은가요?
언니 : 제 동생은 저한테 보석 같은 존재였고, 제 인생의 희망이었어요…
+애인 : 제 애인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둘도 없을 겁니다. 그런 사람은..
+교수 : 같이 논문 작업을 했어요. 장학금을 챙겨주려 했는데..
 
세 명이 동시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 시끄러운 소리에 세 명도 정신이 든다.
언니 :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기자 : 자자자~
 
기자가 비어있는 잔에 술을 따른다.
 
기자 : 거우리 다 우울한 사람끼리 한 잔 합시다. 자 짠짠짠
 
백수가 한 잔 들이 키더니 배에서 꾸루룩 소리가 난다. 표정이 일그러지다가 손에 사진 세 장을 든 채로 화장실로 냅다 달려간다.
 
기자 : 저 냥반은 한잔만 먹어도 저래.
애인 : 두 분 오늘 처음 보신 사이지 않습니까?
기자 : 어..그게. 처음 오셔셔 헤매시네. (백수가 나간 방향을 보며) 에이 저기요, 거기 화장실 아닌데
 
기자가 당황해서 백수를 부르며 쫓아 나간다. 나가면서 조그만 녹음기를 흘리고 나간다.
교수는 술도 많이 먹는다. 컵으로는 양이 안차서 그릇이 담겨있었던 그릇에 술을 교수 혼자 마시고 있다.
 
 
 


#4. 경찰서 내부(반장/기자/언니/애인/교수)
 
애인은 언니에게 기대어 있고 언니는 눈이 풀린 채로 턱을 괴고 있다.
언니는 술주정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교수는 끊임없이 계속 술을 마시고 있다.
시간이 흘러 술을 더 많이 먹어서 취해 있다.
 
 
교수 : (취해서) 근데요 거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전혀 악의는 없다구. 두 분 다 왜 찾을려 그래요? 거 나 같으면 시원하다 싶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안 찾을 텐데.
 
언니와 애인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교수 : 그게 그렇잖아요? (일어서면서 언니와 애인을 가리키며) 두 분은 엄연히 나랑 다르지. 나는 (테이블을 치며) 기.필.코 걔를 찾아야 된다구. 아 그게 내 살길이거든. 찾으면 만사형통이지. (비웃음) 다들 좀 솔직해져 봅시다. (비틀거리며 의자 뒤쪽으로 간다) 그쪽들은 따지고 보면 애물단지 하나씩 없어진 거잖아요. (언니의 뒤에서) 그 쪽은 새빠지게 동생 가방 끈 늘려 줄려다가 그 쪽 인생이 그렇게 됐잖아요? 근데 이제 동생 없어졌으니까 그 험한 일 안 해도 되고. 다시 쓸고 닦고 하면서 맘껏 노래랑 춤 연습도 할 수 있잖아요. (언니의 얼굴을 누르며) 아직 팽팽한 게 젊어 보이는데. (애인의 뒤에서) 그 쪽도 그 쪽만 (양 턱을 괴면서 옆에 얼굴을 들이댄다)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해바라기 같은 사람 없어졌으니까 짐을 하나 던 거잖아요? 이제 정말 그쪽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잖아요. 온전히 자기만의 꿈을 꾸면서.
 
교수 : (앞으로 나오며)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숨 막히지 않아요?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는데 말 이예요.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언니와 애인이 서로를 본다.
애인이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끓고 기도하는 시늉을 한다.
앞에 서있던 교수가 화들짝 놀란다.
 
교수 : 뭐하세요?
애인 : 잠시 나쁜 맘을 먹어서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수 : (애인 옆에 쓰러지듯 앉으며 애인의 얼굴에 들이대고) 거 참 계속 고상한 척 하시네. 
 
언니는 바닥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보며 계속 혼자 술을 마시다 갑자기 테이블에 컵을 세게 내려놓는다.
그러자 투닥거리던 애인과 교수가 뒤를 돌아본다.
 
언니 : 따지고 보면 제일 불쌍한 건 나지. 난 핏줄이라구요. 영~원히 헤어질 수 없는. 감옥이기도 하고 천국이기도 한 그런 존재. 내가 안 찾으면 아마 아무도 걔를 안 찾을 꺼야.
 
교수 : 빙고. 바로 그거예요. 그쪽이 안 찾으면 그만이지. 그럼 게임 오바. (일어서서) 그리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거지. 화려한 조명 아래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윙크로 마무리. 사람들은 경이로운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보겠지. (언니를 보며) 이런 기회가 다시 올 꺼 같아요?
 
언니가 허공을 보며 상상에 잠겨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언니가 잔을 들고 일어나 비틀거리며 춤을 춘다.
애인이 그 모습을 보고 자기 자리에 돌아와  앉아 이야기 한다.
 
애인 : 귀비씨 안됩니다. 귀비씨는 지금이 제일 아름답습니다.
 
애인의 외침에 언니가 놀라서 제 정신으로 돌아온다.
 
언니 : (애인을 바라보며 생각, 3초정도) 아름다워? 속으론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구? 사람들은 다 뒤에서 나를 흝어봐. 그쪽처럼. 그 더러운 눈빛으로. 그 시선이 싫어서 난 항상 더 당당한 척을 해. 그러면 기분은 좀 나으니까. 밖에 나갈 땐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게 선글라스는 필수지.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들을 해. 돈에 눈먼 그저 그런 여자들 인 것처럼. 근데 뭐 이게 내 운명이니까. 적어도 날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 동생이 있었으니까. 이를 악물고 했지.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아주는 사람 있으니까.
애인 : 귀, 귀비씨..
언니 : 내가 그렇게 지를 위해 한 몸 바쳐가면서 어떻게 살았는데! 내가 동생 가방 끈 늘려주느라고 뮤지컬포기하고 에로배우 된 거. 그거 그거 하나 억울해서 이러는 거 같아요? 그런거 수십 번 수백 번도 할 수 있다구. (감정을 곱씹는다) 어려서부터 맨날 내 옷 입고 화장하고, 남자새끼가 맨날 계집애처럼 하길래 그냥 그런가 부다 했는데. 대학도 가구 군대도 가구 여자도 만나다 보면 달라지겠지 했는데. 결국 결국 여자가 되고 싶다고 합디다. 그 말만은, 그 말만은 제발 안하길 빌었는데. 내가 지를 위해 희생한 건 안중에도 없었던 거야. 이기적인 놈.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했는데 나한테 이래 이놈아.(애인을 잡고 울부짖는다.)
 
교수는 드디어 본심을 드러내는 구나 하는 표정.
애인의 표정은 심각하다.
 
언니 : (비웃음) 상대할 가치도 없었지. 말도 꺼내지 마세요. 그 이후로 없는 사람 취급했으니까.
 
약간 정적.
 
애인 : 그 사람도 그 사람도 귀비씨 동생처럼 그런 마음이었겠죠? 짐작은 안 가지만.
 
언니와 교수가 의아한 하는 표정으로 애인을 쳐다본다.
 
애인 : 긴 생머리에 반짝 이는 눈망울. 첫눈에 반했던 사람이었는데. 반찬 꼬박꼬박 챙겨다 주던 제 애인이요. 남자였습니다. 남자. 그 기지베가, 아니 그 놈이, 아니 그 자식이, 아니 그 분께서 내 뒷통수를 확 친 겁니다.
교수 : (언니를 가리키며) 이쪽은 그렇다 치고 이 사람이 소설 쓰고 있어 지금. 아니 취중이라구 말 막하시네. 그냥 찾기 싫으면 깔끔하게 취소해요. 응? 남자답게.
언니 : 말도 안 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애인 : 그건..그건 늘 제 뒤에 있었으니까요. (앞으로 나오며 억울한 느낌으로 울분토로) 물론 제가 헌법 책 보느라 아이 컨택 하는 시간이 많이 없긴 했지만. 온 천지에 벌레가 보였던 그 날 이었습니다. 그녀는 가만히 뒤에서 절 보고만 있더라구요. 그래서 좀만 도와달라고, 도와달라고 그녀를 봤는데! 왠 남자가 서있는 거에요 남자가. 그 순간은 그녀도 벌레처럼 보이더군요. 그걸 몰랐던 저도 참 우습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고 나니 내가 사랑한 사람이 그 사람인지 5년 동안 1mm도 자라지 않았던 그 긴 생머리인지 모르겠더 라구요. 수백 번 기도를 해봤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교수 : 진짠가 보네? 그럼 더 잘됐지 뭐. 진짜 안 찾으면 되겠네. 그게 제일 깔끔하지.
애인 : 아니요 찾아서 다 따질 겁니다.
교수 : 찾아서 따져서 뭐 어쩔 건데? 계속 만날꺼예요? 그럴 수 있을 거 같아? 그 쪽이 그 남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도 결국 사람이 제일 사랑하는 건 나. 자기 자신이라구. 내 자신을 속이면서 그렇게 위선 떨고 이해하는 척 하는 거 계속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애인 : 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 두지 마십시오.
교수 : 훈수? 훈수가 아니라 솔직한 거지. 사람은 다 이기적이니까.
 
애인이 열받아 비틀거리며 밖에 나가려 하자 언니가 애인을 붙잡는다.
 
언니 : 갈 때 가더라두 같이 갑시다.
애인 : 전 지금 가보겠습니다.
언니 : 아니 갈 때 가더라두 해결하구 가자구요.
애인 : 해결? 뭘 말입니까?
언니 : 갈 때 가더라두 이거 취소 하구 가자구요.
애인 : 네?
언니 : 더 늦으면 취소도 못할 꺼야. 얼른 취소하러 가요.
애인 : 귀비씨
언니 : (간절하게) 나 진짜 진짜 뮤지컬 배우 하고 싶거든요. 이거 놓치면 안 될 거 같아. 그럼 영원히 난 삼류야. 태균씨 내 팬이니까 나 이해할 수 있죠?
교수 : 그렇지. (술을 들이킨다)
언니 : (애인에게) 우리,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란 법 없잖아요. 그 좁은 방에서 5년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게 이게 마지막 기회인 거 같아요. 어쩌면 새로운 인생을 살라구 일부러 없어져준 걸지도 몰라. 
 
애인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언니 : 찾으면 찾고 나면 난 또 그 촬영장에 가야하구, 또 그 더러운 눈빛들이 날.. (머리를 쥐어뜯는다)
 
한참 정적. 애인은 교수와 양귀비를 번갈아 한참 본다.
 
애인 : (술을 들이킨다) 그래요 귀비씨. 귀비씨 말이 맞습니다. 나도 그 발도 쭉 못 뻗는 방 그 방에 다시 들어가긴 싫단 말입니다. (자포자기 한 느낌) 맞아요 이게 기회인 거 같습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요. 내가 아까 아닌 척 하긴 했지만 경찰서에 오면서도 마음 한 켠이 뭔가 후련하다 했더니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잘됐죠 뭐. 없어진 걸로 근심거리 모두 해결되었으니. 이제 고민해야 할, 기도해야 할 이유도 없어진 겁니다. 그래 이게 제일 깨끗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전 깨끗한 걸 찾고 있었습니다. 경찰서에 오길 잘했어요.

변태균, 고개를 떨어뜨린다.
 
양귀비와 변태균이 잠든 모습을 본 교수가 그들의 얼굴을 살피며 잔을 들고 일어나 약간 앞으로 나오며 말한다.
교수 : (야비하게)그래도 난 찾을 거라구 찾을꺼야. 내 전 재산을 갖다 부었다구. (씁쓸한 미소) 이 박사임이가!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대로 끝낼 순 없지. 난 할 수 있어. 난 될 거야…. 정교수. 찾을 꺼야.
 
뒤를 돌아 잠들어 있는 양귀비와 변태균을 응시하다 잔을 본다.
 
교수 : (자조적인 느낌)이게 나한텐 마지막 기회였다구. 육두품이 성골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교수가 바닥에 쓰러져 널브러진다.
 
조명이 꺼지고 무대 왼쪽에만(경찰서부분) 조명이 들어온다.
반장과 기자가 같이 들어오면서 말한다.
 
기자 : 아 거참, 반장님 연기에 몰입은 하셔도 거 술은 마시지 말라니까. 화장실 또 막혔잖아요.
 
기자 : 으흐 이번에는 진짜 한 건 할 거 같단 말이지. 부장님한테 1면을 비워 놓으라고 해야 하나? 아까 봤죠? 순발력 있게 인터뷰 따낸 거. 아 이번에 특종상 받는거 아니야? 아 거 양복도 옛날꺼 밖에 없는데. 아 이거 아까 거기 놓고 있다 가져왔는데 들어봐봐요.
 
기자가 녹음기를 건네준다.
반장은 모니터를 보면서 녹음기에 녹음된 것을 앞으로 감았다 뒤로 감았다 하며 듣는다.
 
반장 녹음기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오른쪽에 조명이 켜진다.
애인, 언니, 교수 세 명은 멈춰진 채로 있다.
 
반장 : (세 명을 짚어가며) 양귀비, 변태균, 박사임. 몇 주 전에 왔다간 양성민이 기억나나?
기자 : 아 그 사람 하이힐 신고 또각또각 걷던 사람. 그 소리 때문에 내가 기억하지. 내가 그 사람으로 기획하나 잡을려다가 나가리 먹었잖아요.
반장 : 그 사람이 무슨 말 했는지도 기억하지?
기자 : 그럼 그거 아마 내 수첩 78페이지쯤에 있을 텐데 어디 보자. 근데 그 여자? 아 여자라고 하는 게 맞나? 아무튼 그 사람이 왜?
 
그 때 뻐꾸기시계가 세 번 울리고 조명이 세 번 깜박인다.
깜박이는 중에 형사와 기자는 허공을 이리저리 보면서 놀란다.
조명이 켜지면 회상신.
반장과  기자의 차림새가 달라져있다.(과거모습, 겉옷 벗기나 안경 쓰기)
책상 앞에 애인이 앉아있다.(양성민 등장)
양성민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고 반장과 기자가 그를 이리 저리 살핀다.
 
반장 : 성함과 주민번호를 말씀하셔야..
성민 : 양성민. 871102-1058247
반장 : 871102 1058..1? (모니터를 보다가 그를 본다.)
성민 : 아직 1이예요. 곧 바꿀 꺼 예요.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성민 : (해맑게) 일본에 갈꺼거든요. 바꾸러 가는 건 아니예요. 찾으러 가는 거지. (웃으며)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다들 바꾼다고 생각하는데, 전 본래의 저를 찾으려는 것 뿐 이예요. 이젠 겉모습도 완벽히. 전 쭉 여자였거든요. 아마 엄마 뱃속에서도 여자였을 거예요. 그런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죠.
반장 : 아..예. 근데 이 신고가 그게..
성민 :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어쩌면 그냥 이대로 조금 숨기면서 조금 거짓말 하면서 살면 뭐 어떻게 살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어요. 근데, 이제 때가 된 것 같아요.
 
기자. 건수가 되겠다는 표정            
 
기자 : 아 (명함을 내밀며) 저 조중일보 나대영 입니다. 제가 뭔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성민 : (명함을 한참 보며 생각에 잠긴다.) 사람들한테 저를 그냥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해주세요. 전 항상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유 없이 욕도 많이 먹었어요. 계집애 같다구요. 내가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그냥 내 존재 자체를 싫어했어요.
기자 : 안 그래도 저희가 기획기사를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잘 됐네요. 내가 고대로 실어 드릴께. 인터뷰 한번 하실까?

반장이 기자머리에 꿀밤을 먹인다. 약간 정적.

성민 : 근데 나를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똑같았어요. 그 사람들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씁쓸한 웃음)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죽기 전에 진짜 여자 한 번 되보려구요. 저에게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 예요.
                                                  
뻐꾸기시계가 세 번 울리고 다시 조명이 깜박인다. 반장, 기자, 성민 모두 허공을 본다. 원위치로 돌아온다.
 
반장 : 이 세 사람이 한날한시에 이곳으로 오다니. 나대영아 니네 부장한테 1면 비워 놓으라고 해라. 여기 이 사람들 사진 한 장 씩 찍고.
기자 : 아 근데, 나 취재 더 해야 되는데. 1면 기사 쓸려면 진짜든 가짜든 일단 이것저것 많이 모아야 된다구.
반장 : 그래 마지막이다. 모아라 모아. 양껏.
 
쓰러진 사람들을 붙잡고 흔들며 악착같이 취재를 하려는 기자의 모습.
암전.


 
#5. 경찰서 내부(반장/기자/언니/애인/교수)
                                               
교수는 바닥에 널 부러져 있고 언니는 요염하게 누워있다. 애인은 의자에 널브러져 있다.
 
기자 : 이 사람들 또 된통 먹었더라고. 역시 반장님 수사법은 실패한 적이 없다니까.
어 거 다들 괜찮으세요?
 
교수는 그대로 누워서 잠이 들어 코를 곤다, 언니는 일어나 앉고, 애인은 일어선다.
 
애인 : (손을 들고) 취소하겠습니다.
언니 : (손을 들고) 저도 취소하겠습니다. (교수를 가리키며) 아 이분 것도 같이요.
기자 : 뭘 취소하시겠다는 겁니까?
애인 : 아 그러니까 실종신고 한 거 취소하겠습니다. 안 찾을려구요. 저희 모두 새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언니 : 전화위복이라고 하죠.
애인 : 바쁘시겠지만 취소 부탁드립니다. 어디다 싸인 하면 되나요?
 
반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며 이야기 한다.
 
반장 : 그러실 필요가..
언니 : 아 그러니까 일단 취소를 먼저 해 주세요.
반장 : 그러니까 그러실 필요가..
애인 : 신고는 다 받아주고 취소는 내 맘대로 못합니까?
반장 : 그러니까 취소가...
 
교수가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
 
교수 : 뭐야, 여기 너무 불편해.
 
짜증내면서 반장이 교수에게 다시 부적을 붙인다.
 
반장 : 취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세 분은 이미 실종신고 된 상태니깐요.
언니 : 그러니까 그걸 취소해 달라니깐요? 형사님도 참.
반장 : 양귀비씨, 변태균씨, 박사임씨 세 분은 이미 실종신고 된 상태. 그러니까 누군가 한 발 앞서 세 분을 실종신고를 했다는 거죠.
 
언니, 애인, 교수가 놀라 형사를 쳐다본다.
기자도 놀라면서 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이야기 한다.
 
기자 : 어, 부장님? 1면이야 1면..아 그렇다니까..
반장 : (세 명을 보며) 양성민씨를 찾으시나요?
 
언니, 애인, 교수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반장 : 실종자들이 제 발로 경찰서에 오다니. 양성민씨는 며칠 전 방문 하셔셔 세 분을 실종신고 하셨습니다. 그 분도 세 분을 자신의 삶에서 지우고 자신의 삶을 찾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일본으로 가신다구.
언니, 애인, 교수 : 그럴리가 없어.
언니 : 그럼 그 쪽들이 찾던 사람이 내 동생 성..?
애인, 교수 : (서로를 보며)그 쪽이..?
 
세 명이 동시에 뒤엉키며 말한다.
 
언니 : (구두를 벗어 애인을 때리며) 이 나쁜 자식아 내 동생이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니가.
애인 : 이렇게 보니까 닮긴 닮았네. 마음고생 심하셨죠?
교수 : 내 돈 내놔 내 돈. 돈을 내놓던지 논문을 내놓던지 그거 내 전 재산이란 말이야.
 
그 때 뻐꾸기 시계소리가 세 번 울린다.
모든 움직임이 정지 했다 풀린다.
 
언니 : 세 번. 동생이 올 시간 이예요. 밥 차려주러 가야겠어요.
교수 : (벌떡 일어나 나가며) 그럼 일본으로 가면 내 논문 찾을 수 있는 건가?
애인 : 한 시간 있으면 그녀가 올 겁니다. 벌레 잡으러 가야겠어요.
기자 : (애인을 따라가며) 저기요, 이거 인터뷰 하나만 해주시면 되는데. 간단해요 간단해. 30초면 되요. 어려울 거 없다구..

후다닥 들어가는 세사람. 그들을 뒤따라가는 기자.
반장이 그들을 지켜보다 책상으로 돌아가 앉아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가 지지직거리며 소리를 낸다.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뉴스 : 일본 규슈에 위치한 양씨의 자취방에서는 그가 홀로 혼란스러워 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나왔습니다. 남자 옷과 여자 옷, 하이힐과 남성용 부츠가 공존했고, 정신분석과 다중인격을 다룬 책들이 있었습니다. 주검의 부패 정도를 확인한 경찰은 사망시각을 발견 1주 전쯤으로 추정했습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두고…..(볼륨이 줄어든다.)

관객을 바라보는 반장의 눈빛.
천천히 조명이 어두워진다.
암전.

 

당선소감

  "실종 사건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소파에 누워 무심하게 채널을 돌리던 제 리모컨이 멈춰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홉시 뉴스에 등장하고 있는 실종사건과 경찰서. 그 두 가지면 충분했습니다. 실종사건이면 타인을 깊게 이해하려 하지 않는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녹여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습니다. 그 날로 경찰서를 배경으로 한 연극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심각한 이야기이지만 유쾌하게 풀어내려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아이러니에서 나오는 코믹함을 즐기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블랙코미디극 '경찰서블루스'를 완성했습니다. 에로배우, 고시생, 시간강사, 백수 그리고 형사와 기자라는 여섯 명의 각기 다른 인물들을 모두 매력 있게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풀어 나가는 게 힘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어설픔에 피식 웃음이 지어집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애착이 가는 극본이기도 합니다. 성대문학상을 발판삼아서 앞으로도 글로, 연극으로, 영화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