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덕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우수작: 소설 <88만원세대의 은밀한 매력>, 소설<파랑새>
가작: 시나리오 <경찰서블루스>
 
이번 성대문학상 산문부문 공모에는 예년의 절반 수준이 채 안 되는 12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그 중 두 편은 각각 시나리오와 희곡이었다. 응모 기간이 짧았다고는 하나 크게 줄어둔 숫자였고 작품들의 성취 수준도 고만고만했다. 어쩌면 거친대로 가장 치열한 사회적?문학적 문제제기를 보여주는 대학문예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망실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시대적?세대적 파국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이런 때일수록, 시대고(時代苦)를 앓고 있는 하나하나의 문재(文才)들을 소중하게 여기야 할 터이고, 그런 마음으로 작품들을 읽어갔다.
  이번 응모작들에서도 ‘정규적 삶에 대한 희망에 나날의 삶을 저당잡힌’ 세대에 관한 이야기가 적잖았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실제 삶의 학생들처럼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고, 처음부터 우울한 끝을 보면서도 ‘정규성의 희미한 빛’을 좆아 간절하지만 지리멸렬한 노력들을 하고 있었다. 속악한 추구는 속악한 욕망을 낳고 속악한 방법을 낳고 있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폐색감은 환멸의 서사로 작동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그대로 절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언어와 이야기들은 익숙한 것, 기지(旣知)의 것일 때가 많았다. 한편 흥미로웠던 점은 앞서의 경향의 반작용 때문인지, ‘지금 여기’를 멀리 벗어나 하드보일드의 세계, SF의 세계, 역사적 공간으로 이동해간 글들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서 장르적 관심과 문학 수업의 경로를 넘어서는 ‘이유’를 발견하기란 조금 힘들었다. 이를테면 하드보일드식 글씨기의 저변에 자리 잡은 스타일의 단순함이 보여주는  관계와 삶의 선명함, 역사/SF와 현실이 맺는 일종의 은유적/알레고리적 관계와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고 읽을 때, 응모된 소설들의 의도는 막연하기만 했다.  
  이런 단처(短處)들을 비교적 진지하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넘어선 듯 보이는 작품들이 없지 않았다. <파랑새>는 늙은 피터팬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사회적 의무를 벗어나 ‘파랑새’라는 희망과 아름다움의 이름을 쫓으려 하자마자 파멸의 행로로 빠져드는 한 중년 사내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배면에 우리 삶의 정동(情動)이 흐르고 있었다. <88만원세대의 은밀한 매력>은 거의 원고지 1000매에 가까운 분량의 유일한 장편응모작이었다. 소위 88만원 세대 혹은 삼무세대(三無世代, 직장/연애?결혼/자녀 없음)로 일컬어지는 졸업준비생들의 상처뿐인 사회입사식을 다루고 있었다. 단번에 ‘노블’로 나아가려는 그 열정이 돋보였지만, 성(性)과 연관된 이야기들은 너무 ‘익숙한 이탈’처럼 보였고, 문장들의 반성력 역시 아직 잘 조련되지 못한 듯 했다. 두 작품을 우수작으로 추천한다. 문장이 좋기로는 <영안실>이었고, 문학에 대한 이해의 높이로는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돋보였지만, 거기에 담긴 삶이나 인물들이 너무도 소박했다. 전자에는 사건성이 부족했고, 후자는 ‘거짓말’에 대한 최초의 아포리즘을 끝까지 밀고나갈 힘이 없는 듯했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보았으면 좋겠다.
  희곡 및 시나리오 부분에서는 <경찰서블루스>가 그 중 나아보였다. 6명의 인물들이 경찰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인데, 이 여섯 명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든다. 무대라는 특성을 잘 살린 경제적인 구성이 돋보였지만, 이는 스테레오 타입화된 인물들이라는 이 희곡의 단점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가작으로 삼고자 한다. 결과가 아니라 가능성을 믿기로 하며, 내년의 성대문학상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더 깊고 넓은 정진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