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철학사전

기자명 황보경 기자 (HBK_P@skkuw.com)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것은 고유한 사상과 문화가 자신의 고유 자질을 간직한 채 하나로 어울려 무지개를 빚어내는 것이다”

도서출판 동방의 벗, 2011
34명의 교수가 집필하고 6명의 교수가 편찬 위원을 맡은 『한국철학사전』이 2년 7개월간의 작업을 거쳐 지난 7월 발간됐다. 이는 한국 철학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후 표제어를 선정해 설명한 것으로 한국 철학의 역사상 최초의 철학사전이다. 편찬위원회는 발간사를 통해 위와 같이 말했는데 이는 한 권의 철학사전도 편찬되지 않았던 한국 철학의 현실에서 이 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함축하고 있다.
『한국철학사전』에 실린 표제어는 △중국, 서양 등의 철학과 분명히 구분되는 독창성 △한국 내부 사상계 및 사회에 미친 영향력 △나름의 체계와 논리 등 6가지의 기준으로 선정됐다. 책은 ‘고대한국사상’부터 ‘근대수용기 및 현대한국철학’까지 6장으로 구성되며 각 장은 용어·인물·저술편으로 나뉜다. 또한 표제어에 관해 평면적으로 서술하기보다는 계보학적 관점에서 심층적 해석을 덧붙여 서술했다.
예를 들어 3번째 장인 ‘유교와 실학철학’에는 △율곡 이이의 기발일도설 △녹문 임성주의 기일분수설 △바르고 진실한 본심인 실심 등 15개의 표제어가 망라됐는데 그 중 사전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일례로 표제어 ‘인(仁)’이 있다.
공자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말조심하는 것’, ‘타인을 손님 대하듯 하는 것’ 등 인에 대해 다르게 설명했다. 따라서 수준이 높고 결함도 거의 없는 사람에게는 인에 대해서도 매우 수준 높게 설명했는데 그런 사람 중 한 명인 제자 안회에게는 ‘남과 하나로 통해 있는 한 마음’이라 설명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사전은 인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영원한 생명 △본래의 모습이나 상태로 정의했다.
사전에 따르면 인 사상은 산을 좋아하고 가만있기를 좋아하며 오래 사는 사람인 ‘인자’의 특징인데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전형적인 인자의 특성을 보인다. 그런데 역사적 사료를 통해 고대에 인과 ‘이(夷)’가 동일어로 사용됐으며 한국인의 조상이 이족(夷族)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사전은 인 사상이 한국인의 정서와 상통한다고 추론한다. 따라서 인 사상은 ‘너와 나는 같다’라는 한국인의 ‘우리주의’에서 자기중심주의라는 단점을 제거하고 타인을 자신처럼 아낀다는 장점을 살린 개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4번째 장 ‘민족종교와 도교철학’ 용어편에는 총 22개의 표제어가 실렸는데 △민족종교의 공통된 사상적 특징인 개벽 △모든 현상을 기(氣)의 운동과 작용으로 이해하는 기학 외에도 △민요 아리랑 △태극기처럼 한민족의 공통된 사상을 담고 있는 친숙한 표제어가 눈에 띈다.
조선말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공사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인부들이 출신 지역에 따라 다른 아리랑을 불러 공사장이 아리랑 학습현장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아리랑은 민간에서 광범위하게 불렸는데 한민족은 일제 강점하에서 전국 각지로 흩어지는 역사적 수난을 당하는 과정에서도 아리랑을 불러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했다. 따라서 사전은 위와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아리랑을 ‘식민의 폭압에서 한민족의 서러움과 한을 표출하는 노래이자 민족 독립을 위해 전의를 불태우고 겨레얼을 표현하는 마음의 모태’로 설명한다.
이처럼 『한국철학사전』은 기존의 동양 혹은 서양철학에서 한국적으로 수용된 부분을 한데 모은 후 해석을 덧대는 작업으로 표제어 하나하나를 한국 철학으로 다시 한 번 완성했다. 편찬위원을 맡은 우리 학교 이기동 교수(유동)는 “한국 철학이 뭔지 잘 모르는 이들에게 (사전은) 큰 도움이 될 것” 이라며 “예를 들어 한국 철학으로서의 유학은 ‘하늘개념’ 등이 강해 종교성이 짙은데 사전은 이러한 한국 철학만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