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 속 아리아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쇼생크탈출>. 살인 혐의로 수감된 한 남자가 19년 만에 자유를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혹시 기억하나요?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은 ‘탈옥’ 이전에 ‘탈세’의 죄를 물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여기,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려 자수를 한 양심적인 금융 사기범이 있습니다. 
어느 날 쇼생크의 죄수들은 일제히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운동장 한 가운데 위치한 높다란 확성기에서 난생 처음 듣는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넋 놓고 듣던 한 죄수의 독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새가 날아와 벽을 허물어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잠시나마 쇼생크 안의 모든 것이 자유를 느꼈다”
음악을 튼 용감한 위인은 주인공 앤디입니다. 그는 6년에 걸친 노력으로 마침내 교도소 도서관을 위한 첫 지원을 얻어냈지요. 그의 앞에는 기부된 헌책과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물건을 정리하던 그는 반색하며 레코드 판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곤 주저 없이 온 교도소에 쩌렁쩌렁 틀어버렸지요. 결국 앤디는 흠씬 두들겨 맞고 독방으로 끌려갔지만, 연행되는 그의 만면에는 이상하게도 평화가 가득했습니다.
쇼생크를 흔든 곡목은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입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3막에 등장하는 아리아지요. <피가로의 결혼>은 시녀 수잔나의 결혼에 대해 초야권을 행사하려던 백작이 결국 망신을 당한다는 내용의 풍자극입니다. 백작부인과 새 신부 수잔나는 각각 시들해진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피가로에게 순결을 선물하기 위해 깜찍한 음모를 꾸밉니다. 수잔나가 밀회를 약속하는 편지를 백작에게 보내면, 백작부인이 대신 나가 남편을 놀려주려는 것이지요.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는 두 여인이 속임수 편지를 쓰며 부르는 이중창입니다. 교도소 하늘에 드리운 아름다운 노랫말은 사실 서로 다른 목적을 띈 두 여인의 ‘작당모의’였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앤디는 왜 이 곡을 쇼생크에 울려 퍼지도록 한 것일까요. 또한 죄수들은 왜 자유를 느낄 수 있었을까요. 은행 간부 출신인 앤디는 그간 쇼생크의 소장과 간수들의 탈세를 몰래 도왔습니다. 덕분에 재산을 두둑이 챙긴 소장은 그의 요구라면 이례적으로 수용해줬지요. 이 은밀한 거래를 통해 앤디는 교도소 안에 도서관을 세우고, 죄수들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의도의 선악을 떠나 그가 저지른 일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죄를 감독하고, 반성해야할 사람들 사이에 또 다른 작당이 오간 것입니다. 앤디는 자신을 영웅이라고 치하하는 동료 죄수들에게 씁쓸하게 말합니다. "나는 재정 고문을 해주는 죄수일 뿐이야. 귀여운 강아지지"
가엾은 우리의 주인공은 ‘대리 자수’를 통해 죄책감을 덜어보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범죄 장소가 교도소이기 때문에, 공범자가 간수와 소장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돈 세탁과 탈세의 죄는 오히려 처벌을 원해도 받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앤디는 아리아 속 여인들의 목소리를 빌어 자신이 가담한 작당을 간접적으로 고백하려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품고 살아가던 쇼생크의 죄수들 또한 같은 이유에서 자유를 느꼈고 말입니다.   
크든 작든, 첫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간에 ‘죄’라는 단어라면 재빨리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양심의 혼탁 정도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방법은 천차만별일 테지요. 중세 여인 둘에게 대리 자수를 부탁한 주인공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레코드 판 앞에 앉아 지그시 기지개를 켜던 앤디는 진정한 자유인의 얼굴이었으니까요. 게다가 하늘도 결국 그의 탈옥을 눈감아주지 않았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