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재윤 기자 (mjae@skkuw.com)

롱테일 법칙  ⓒwordpress.com
‘전체 결과의 80%는 20%의 원인에서부터 나온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을 딴 파레토 법칙이다. 이는 이탈리아 국민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소유하고 있다는 발견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파레토 법칙은 ‘잘 팔리는 소수를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마케팅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됐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파레토 법칙과 전면으로 대치되는 롱테일 법칙이 등장했다. 롱테일 법칙이란 매출 하위 80% 제품의 매출액 총합이 상위 20% 제품의 그것보다 크다는 경제 이론이다. 미국의 크리스 앤더슨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매출 그래프를 들어 롱테일 법칙을 설명했다. 온라인 시장은 제품 진열에 대한 물리적 제한 없이 검색만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어, 비주류 제품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파레토 법칙이 반격을 시작하면서 파레토와 롱테일은 승자를 예측할 수 없는 승부를 벌이고 있다. 최근 온라인 시장은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소위 ‘베스트셀러’ 제품군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주류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접근성은 롱테일 법칙 등장 이전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공간의 평등성이 최대 장점이던 온라인 시장조차 파레토 법칙과 다름없는 계층화가 진행 중이다.
최근 들어 위와 같은 파레토의 엎치기 뒤치기가 문화 현상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인디음악 열풍은 문화계 롱테일 법칙의 대표적인 예다. 올해 발매된 인디밴드 10cm와 검정치마는 음반 판매량 2만 장을 훌쩍 넘기며 주류 음반보다도 높은 판매 성적을 기록했다. 90년대에 인디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직접 홍대 라이브 클럽을 방문하거나 인디 앨범을 판매하는 음반점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인터넷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만으로 도 손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어 비주류 음악도 주류 음악만큼 접근하기 편해졌다. 미술계에도 비주류 바람이 불고 있다. 쿤스트독미술연구소 김명숙 연구원의 논문에는 비주류 미술공간인 대안공간의 설립 배경이 명시돼 있다. 김 연구원은 90년대 초 등장한 신진작가들이 공공 미술관, 상업 화랑으로 대표되는 주류 미술계를 벗어나 미술에 대한 다양한 수요와 공급을 만족시키려는 과정에서 대안공간이 등장했다고 보았다. 올해 지방의 한 대안공간에서는 신진 작가의 작품이 모두 매진되는 등 대안공간은 대중과 작가를 잇는 새로운 미술 창구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바야흐로 롱테일 법칙에 따라 비주류 문화가 문화계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롱테일 현상 안에서 다시 파레토 법칙이 나타나는 것은 문화계도 마찬가지다. 비주류 문화가 계층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비주류 문화인 홍대 인디 음악계에서도 모던록 장르는 ‘홍대 주류’라고 불리며 높은 음반 판매량과 대중적 인기를 자랑한다. 반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 씨처럼 음원료를 사이버 머니로 지급받았다는 의혹까지 일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한 뮤지션도 존재한다. 인디문화도 결국 ‘계층화’라는 파레토 법칙의 기본 전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롱테일과 파레토, 주류와 비주류. 주류가 승기를 잡나 싶으면 롱테일이 등장하고, 비주류가 떠오르는 것 같다가도 파레토가 나타나는 둘의 관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맞닿아 있는 듯하다. 뫼비우스의 띠에 안팎이 따로 없듯 어쩌면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란 실존 불가능한 개념인지도 모른다.
파레토 법칙과 롱테일 법칙  ⓒ말도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