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오상 편집장 (osyoo@skkuw.com)

한 고사성어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다. 중국 전국시대의 명의로 잘 알려진 편작(扁鵲)과 채(蔡)나라 환공(桓公)의 일이었다. 하루는 편작이 환공의 피부병을 보고 증세가 심해질 것이니 속히 치료하라 충고했다. 하지만 환공은 자신에겐 병이 없다며 무시했다.
열흘 뒤 편작은 다시 환공을 찾아가 이번에는 병이 살 속까지 퍼졌다 진단했다.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으나 환공은 역시 이를 무시했다. 다시 열흘 뒤, 내장까지 병이 퍼진 환공은 또다시 편작의 충고를 듣지 않고 내쫓았다.
그로부터 열흘 뒤 환공을 찾아온 편작은 멀리서 바라보다가 떠나버렸다. 환공이 사람을 보내 이유를 묻자 편작은 병이 이미 골수까지 스며들어 고칠 수 없기 때문이라 답했다. 닷새 후, 환공이 몸의 통증을 느껴 편작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떠난 후였다.
꽤나 유명한 고사성어 ‘호질기의(護疾忌醫)’의 유래다. 잘못이 있음에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충고를 무시한다는 뜻의 위 고사성어는 지난 2008년을 정리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당시에는 주위의 충고를 무시한 채 국정운영을 임의로 진행한 정부를 꼬집자는 의미에서 선정된 단어였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봐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비단 정부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렇다.
학교 밖에서는 진보와 보수 모두가 ‘호질기의’의 정확한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최루탄을 던지거나 물대포를 쏴댄다. 최루탄을 국회에 던진 국회의원은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한다. 물론 물대포를 쏜 담당자도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한다.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준이나 원칙이 없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지난 목요일, 우리 학교 학부 총학생회 ‘태평성대’가 3 선본의 치열한 접전 끝에 당선됐다. 지난 수년간 총학생회는 외부의 비판에 귀를 닫은 일방적인 운영으로 인해 학우들로부터 비판받아왔다. 이를 인식한 듯 3 선본 모두 소통에 관심을 두고 공약을 발표했다. 수년 만에 3선본의 경선으로 학내 민주주의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올 해. 앞으로 학내자치를 이끌어 갈 총학생회에 학우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큰 것도 이 때문이다.
비판은 약과 같아서 혀는 쓰지만 몸에는 좋다. 필자도 그렇지만 자기를 비판하는 말을 곱게만 받아들이기는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사회 전체를 염두에 둔다면 비판은 분명 필요한 과정이다. 진짜 문제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발생한다. 자기 뜻대로 일을 처리하고 나중에 와서는 합의하에 했다고 발뺌하는 졸렬한 작태나 주위의 진심어린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는 집단 자체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특히 국회위원과 같이 한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당장의 비판을 참지 못하는 지도자는 구성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이런 사실은 응당 받아들여야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군주가 고집이 센 성격으로 간언은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여 제 멋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한비자가 말한 나라가 망할 징조 중 하나다. 한비자는 나라를  두고 논했지만 이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연말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이번 2011년, 자신이 이런 우를 범하지는 않았나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