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리비평 총론

기자명 서준우 기자 (sjw@skkuw.com)

우리는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기막힌 반전 끝에 밝혀진 범인을 보고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우곤 한다. 그러나 오로지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소설에서 드러난 범인이 진범이 아니라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작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소설 속 세상에서 독자의 눈으로 새로운 범인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글ㄴ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 보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같은 소설을 읽고도 당당하게 "진범은 여기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인식을 뒤집는 새로운 해석
추리비평은 추리소설에서 저자가 지목한 범인에 의문을 갖고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려는 텍스트 분석법이다. 이 독특한 방식의 문학 비평은 비평가이자 정신분석가인 파리8대학 프랑스 문학 교수 피에르 바야르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바야르 이전에도 소설 속에서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 제시된 증거들에 의문을 갖고 그것의 오류를 증명해 보이려고 한 시도는 많았다. 하지만 바야르의 소설을 번역한 우리 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김병욱 연구 교수에 따르면 그의 접근은 “단순히 미심쩍은 부분을 집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서 다른 정황을 바탕으로 새로운 범인을 지목하는 추리 비평을 탄생시켰다”는 차이가 있다. 바야르의 이런 접근방법은 출간 이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데 성공했다. 지난 4월엔 우리나라에도 방문해 좌담회를 열고 우리 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창조적 글 읽기’를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야르의 추리 비평이 신선한 접근으로서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진 것만은 아니다. 그의 비평은 기존의 텍스트를 완전히 뒤집고 당연하게 전제된 내용에 대해 의문을 품는 데서 시작한다. 이 과정은 같은 텍스트 안에서 전혀 새로운 해석을 도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바야르는 어떤 방식으로 기존의 작품을 꼬집었을까.

소설 속 숨겨진 진범을 찾다
그의 대표적인 추리 비평 저서로는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셜록 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가 있다. 앞의 두 책은 추리소설 분야의 거장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를 각각 비평한 것이고 『햄릿을 수사한다』는 셰익스피어의 명작으로 꼽히는 『햄릿』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한 책이다. 세 원작 모두 그 권위를 인정받은 작품인 만큼 그동안 소설의 내용에 대해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었다.『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마지막에 살인범으로 밝혀지는 인물이 독자에게 사건을 서술해주던 화자였다는 놀라운 반전 덕분에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그러나 바야르는『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에서 자신만의 추리로 원작소설과 다른 범인을 지목했다. 그의 추리는 문학작품 속 인물들이 자율성을 가진다고 보고 작가도 자기 책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고 가정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그의 또 다른 저서 『셜록 홈즈가 틀렸다』에 등장하는 홈즈는 바야르가 추리를 하는 과정에서 소설의 주인공 그 이상의 존재로 인식된다. 이 책에서 바야르는 코난 도일의 소설 『바스커빌 가의 개』의 진범을 밝히기 위해 원작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셜록 홈즈가 진범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것은 원작의 저자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에게 증오의 감정을 느껴 일부러 홈즈의 추리가 허점을 보이도록 한 이유도 있다고 말한다.
바야르가 그의 저서를 통해 이렇게 픽션과 실재를 넘나드는 해석을 한 것은 그가 문학 속의 인물들이 명백한 실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셜록 홈즈가 죽었을 때 영국인들이 단지 홈즈 시리즈를 더는 볼 수 없다는 것 이상의 슬픔을 표했던 것처럼 ‘허구와 실재 사이에는 높은 투과성’이 있다고 그는 봤다. 우리가 책을 읽는 소설 속으로 깊이 빠져들듯이 허구 속에 살고 있는 등장인물들 또한 때때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로 넘어와 산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믿음은 그의 창작활동 어디에서나 드러나고 있다.

바야르의 다른 비평들
바야르는 추리 비평을 개발하면서 문학에 접근하는 다른 방법도 함께 소개했다. 예상비평과 개선비평이 바로 그것이다. 예상비평은 문학을 접할 때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이 이어지는 것을 당연시하는 데에 의문을 갖고 출발한다. 보통 작가들은 책을 쓸 때 이전의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쓰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때로는 글이 미래에서 영감을 받은 것처럼 쓰일 때도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모파상은 그의 작품 <오를라>부터 시작해 많은 단편들에서 광기 발작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모파상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다다랐을 때 일으킨 광기 발작과 그것이 너무도 흡사하다. 마치 미래에 작가에게서 나타난 광기가 그의 과거 작품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예상비평은 이처럼 책이 쓰인 시점보다 미래에 일어난 일이 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는 독특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선비평은 바야르가 개발한 다른 두 가지 방법보다 텍스트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 비평은 위대한 작가들도 항상 높은 수준의 작품을 써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문학작품에 접근한다. 물론 단순한 ‘수정’이 아닌 ‘개선’이 돼야 하므로 작품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거쳐야 한다. 먼저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거나 일관성이 부족한 부분, 등장인물 선정에 있어 취약한 부분 등을 찾는다. 그리고 작가가 어떤 상황에 처해서 그런 실수를 하게 됐을까를 분석한다. 실수의 배경엔 작가의 창작에 혼란을 가져다 준 어떤 사건이 있었으리라 판단하는 것이다. 이후 그 동기들을 찾아낸다면 제목을 바꾼다거나 수사법을 단순화하는 등 텍스트의 구체적인 개선을 제안하는 것이 개선비평이다. 이처럼 바야르의 비평법은 모두 기존의 텍스트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개입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해석이 완전한 자유를 찾기까지
“제 희망은 우리가 책을 읽거나 해석할 때 의식의 차원 너머에서 작용하는 것을 무대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텍스트가 무한한 유동성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바야르가 개입주의 비평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그가 추리 비평과 같이 다양한 비평 이론을 전개한 것은 이론과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통해 기존 문학의 틀을 깨고자 함이었다. 김병욱 교수는 바야르의 비평에 대해 “하나의 문학 이론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텍스트에 대한 참신한 접근법을 제시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리비평이 독자에게 텍스트를 새롭게 뜯어보는 재미를 주는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자세한 설명을 간과한 부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잠재적인 가능성을 부각시켜 텍스트를 다른 방법으로 다시 읽게 해주는 일은 독서와 해석에 대한 전반적 인식을 성찰하게 해준다.
바야르는 이와 같은 개선 작업이 문학작품들에만 국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인다. 같은 맥락에서 다른 장르의 예술 작품들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정된 인식의 틀을 깨줄 이 발상의 전환은 바야르에 의해, 소설에서부터,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