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셜록 홈즈가 틀렸다』리뷰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황무지 한 가운데 자리한 바스커빌 가(家)에는 오랜 전설이 있다. 아름다운 동네 처녀를 겁탈하려 저택에 감금한 가문의 남자와 그를 피해 황무지로 도망친 여자. 그리고 추격 끝에 마주한 두 남녀 앞에 나타나 바스커빌의 목덜미를 무참히 물어뜯은 불을 뿜는 검은 개. 선혈이 낭자한 죽음 앞에 처녀마저 까무러쳐 죽은 후 바스커빌의 남자들은 영영 평온한 죽음을 맞을 수 없었다는 저주서린 이야기는 대대로 가문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1. 사건의 전말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 『바스커빌 가의 개』는 찰스 바스커빌의 돌연사와 함께 그 서막이 열린다. 사립탐정 셜록 홈즈는 사건현장에 커다란 개의 발자국이 있었다는 증언에서 누군가가 검은 개의 전설을 살인에 이용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다음 상속인인 헨리 바스커빌에게도 살해협박이 가해지던 중 홈즈의 수사망에 수상쩍은 부부가 걸려든다. 미모의 여인 베릴과 황무지에 살고 있는 스태플턴이라는 박물학자는 사실 헨리 바스커빌 다음의 상속인이었던 것이다. 헨리의 옷을 빌려 입은 한 무고한 남자마저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실족사하자 홈즈는 스태플턴이 바스커빌 가의 유산을 노리고 앞선 상속인들을 죽이려 한다고 확신한다. 홈즈는 일부러 스탠플턴의 집에 무방비 상태인 헨리를 보내고, 예상대로 그의 집 헛간에서 인(燐)을 발라둔 검은 개가 불을 뿜으며 헨리에게 달려들어 치명상을 입힌다. 잠복하고 있던 홈즈 일행은 총으로 개를 죽이고 곧바로 스태플턴의 집을 덮친다. 이층 방에 포박된 채 갇혀 있던 베릴은 남편이 늪지대로 도망쳤으며 밤안개가 짙어 살아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용한 황무지를 떠들썩하게 한 살인사건은 이렇게 가해자 스스로 늪지대 깊이 묻히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2. 그가 결백했던 이유
하지만 『셜록 홈즈가 틀렸다』는 진범이 법망을 빠져나갔다고 주장한다. 추리비평의 차원에서 스태플턴은 무죄이며 그의 자멸조차 숨겨진 살인범의 치밀한 계산의 결과라는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셜록 홈즈의 추리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이 책은 놀랍게도 아름답고 가녀린 미망인 베릴을 살인자로 지목한다. 어안이 벙벙한 독자들을 위해 저자 피에르 바야르는 2백여 쪽에 걸쳐 ‘셜록 홈즈가 틀린 이유’를 짚어나간다.
바야르는 △우유부단한 왓슨 박사가 사건의 직접적인 관찰자라는 점 △여러 인물들의 증언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는 점 △홈즈가 애초에 바스커빌 가의 전설에 매료돼 나머지 가능성을 간과했다는 점 등을 들어 홈즈의 추리 구성 전체가 시작부터 불완전했음을 일깨우고 있다. 게다가 그는 △개 발자국과 짖는 소리는 개가 살인에 이용됐다는 직접적 증거가 될 수 없고 △개가 헨리에게 달려들었을 때 살해의지가 있었는지는 모호하며 △몸에 인을 바른 것은 개의 안전을 위한 주인의 애정이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펴 ‘개의 무죄’까지 주장한다. 이는 스태플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홈즈가 그를 용의자로 지목한 결정적 이유는 그가 헨리 다음의 상속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인이 성공하고 유산을 차지했다 치더라도 스태플턴은 영원히 경찰에 쫓기고 의심받는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번거롭고 보장되지 않은 방법인 개를 이용한 살인을 저질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3. 그녀의 완벽하고 효율적인 살인
스태플턴을 범인으로 지목한 홈즈가 틀렸다는 바야르의 주장은 그럴듯하다. 문학 텍스트가 낳는 세계는 불완전하며 모든 증거는 끊임없이 의심해야한다는 그의 전제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왜 베릴이 범인인가에 대한 이유까지 훌륭히 제시해야 비로소 그의 추리비평은 완성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봤듯 이 가련한 황무지 마을에서는 총 4건의 살인 및 살인 미수가 일어났다. △찰스 바스커빌의 심장마비 △헨리의 옷을 빌려 입은 남자의 실족사 △헨리 바스커빌의 치명상 △살인범의 누명을 쓴 스태플턴의 죽음까지. 바야르는 우선 찰스의 죽음이 사고사였다고 못 박는다. 사건 현장에 스태플턴과 그의 커다란 애견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개 발자국과 시체 간의 거리로 미뤄봤을 때 당황한 그는 찰스에게 달려가는 개를 다급히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늘 전설을 두려워하던 찰스는 지레 겁을 먹고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뿐이다. 하지만 이 얘기를 전해들은 아내 베릴은 남편을 살인범으로 몰아 죽일 음모를 꾸민다. 베릴은 정부에게 한 눈을 파는 남편에 대한 증오를 소설 내내 드러낸다. 찰스의 사고사와 두 번째 일어난 죽음까지 바스커빌 가의 전설로 수렴되자 이는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다. 이렇게 되면 세 번째 피해자 헨리 바스커빌의 경우는 실패한 살인이 아니라 ‘또다른 살인을 위한 살인미수’가 된다. 베릴은 헨리를 향해 남편의 애견을 풀었고 공격의지가 없었던 개는 총상을 입은 후 흥분해 사람을 물었다. 개가 늪지대로 달아났다고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 후 베릴은 이층 방에서 문을 잠그고 스스로의 손발을 묶었으며 애견을 구하러간 스태플턴은 결국 안개 낀 늪지대에서 죽음을 맞는다. 소설 인물들은 창조주인 작가조차 모르게 독자적 행동을 한다는 바야르의 오싹한 논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4. 왜 코난 도일은 몰랐을까
그렇다면 과연 소설의 원작자 코난 도일은 이런 구성상의 커다란 구멍을 어쩌다 간과한 것일까. 바야르는 문학 속 인물이 우리 세계에 들어와 살아가는 일과 우리가 그들의 세계를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홈즈 콤플렉스’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홈즈 콤플렉스란 마치 셜록 홈즈라는 인물이 자신과 실재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는 환상으로 작가인 코난 도일마저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곧잘 “내가 홈즈를 죽이지 않으면 그가 나를 죽일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홈즈로부터 정체성의 위협을 느꼈으며 소설 덕에 얻은 모든 부와 명예가 자신이 아닌 홈즈 것이라는 모순된 자해에 빠져버렸다. 결국 벼르던 그는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를 죽이지만 독자들과 출판사의 성화에 못이겨 『바스커빌의 개』에서 그를 부활시킬 수밖에 없었다. 바야르는 “코난 도일이 증오에 휩싸여 소설 속에서 홈즈를 부분적으로 삭제하거나 악마적 이미지인 개와 동일시하는 등 상징적 살인을 시도했다”고 전한다. 개인적 원한 풀이에 눈이 먼 작가는 그만 등장인물에 대한 통제를 잃었고 베릴은 아무도 몰래 완벽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5. 에필로그
결코 짧지 않은 『셜록 홈즈는 틀렸다』를 읽는 내내 바야르의 숨결에 홈즈의 귀밑머리가 흔들릴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든다. 그만큼 저자는 셜록 홈즈라는 인물을 가까이서 면밀히 관찰하고 조금의 오류의 가능성까지 잡아내려는 정성을 보인다. 이러한 ‘긍정적 의심’은 독자의 능동적 소설 읽기에 보탬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하나의 예술 작품의 세계에 현실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과연 소설에도 현실에서와 같은 진실성을 부여하는 것이 진정한 문학에의 자유인가, 소설이도록 두는 것이 자유인가. 바야르의 이 획기적인 추리비평조차 또 다른 추리비평의 꺼리가 될 뿐이 아닐까. 안개 걷힌 늪지대 어느 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재회하는 스태플턴 부부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