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소음

기자명 한지희 기자 (hjh@skkuw.com)

헤어드라이어의 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면 잠이 잘 온다거나 산속에서 바람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안정되며 집중이 잘 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비밀이 귓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인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귓가를 맴돌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소리, 바로 백색소음이다.

 

ⓒbijoy mohan


백색소음이란 다른 주파수대의 소리가 연속적으로 결합한 소음의 일종으로, 사람의 귀로 인식할 수 있는 20~2,000Hz대의 주파수를 포함한 소리다. 모든 종류의 빛을 혼합하면 백색이 되는 것과 같이 백색소음은 특정 청각패턴이 아닌 전체적인 소음레벨을 가진다. 백색소음에는 파도소리, 빗소리와 같은 자연음이 있으며 공기정화장치, 진공청소기 소리와 같은 인공음이 있다. 소음이 지닌 부정적인 어감과 달리 백색소음은 실생활에서 긍정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백색소음이 발생하는 전자기기는 이미 판매 중에 있으며 바람, 파도 소리 등을 백색소음화한 스마트폰 앱도 있다.
백색소음을 바탕으로 한 연구도 발표됐다.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배명진 교수팀은 실제로 자연의 백색소음을 들으면 학생들의 학습효과가 개선된다고 밝혔다. 남녀 중학생을 대상으로 5분 동안 단기 암기력 테스트를 한 결과, 자연 백색소음을 들었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35.2% 향상된 것이다. 집중력의 향상은 백색소음을 들었을 때 뇌파의 반응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배 교수는 또 다른 연구를 통해 백색소음을 들은 피실험자의 알파파가 증가하고 베타파가 감소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알파파는 크게 두 가지 상태에서 발생하는데, 약한 수면상태이거나 정신을 집중했을 때다. 베타파는 감각 활동을 할 때 주로 발생한다. 이는 백색소음이 수면 혹은 집중상태의 뇌파를 유도함을 보여준다.
백색소음은 사운드 마스킹에도 활용된다. ‘마스킹’이란 큰 소리가 작은 소리를 압도해 불분명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사람의 뇌는 약간의 시간 차이만을 둔 소리에 대해 큰 소리만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운드 마스킹은 다른 소리를 통해 어떤 소리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기술로 통칭되며 백색소음이 일정한 레벨로 들리면 주변 소음이 잘 들리지 않거나 특정 소리가 은폐될 수 있다. 카페에서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 비 오는 날 유독 조용하게 느끼는 것 또한 사운드 마스킹을 유도하는 백색소음의 예이다.
한편, 백색소음에 관한 부정적인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에드워드 창(Edward F. Chang) 박사는 연구를 통해 백색소음을 지속적으로 들은 신생아는 언어발달이 더디다는 것을 발견했다. 신생아는 생후 첫 1년 사이에 모국어를 흡수,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 백색소음을 지나치게 듣는다면 사람의 말소리를 듣는 뇌 부위의 발달이 지연돼 언어습득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백색소음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은 상태다. 그럼에도 백색소음을 통해 밝혀진 소음의 긍정적인 측면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강대임) 최재갑 연구원은 “아직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의 연구 성과에 주목해 달라”며 백색소음에 대한 기대의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