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지희 기자 (hjh@skkuw.com)

누구는 잠들 준비를 하거나 누구는 친구와 잠깐 수다를 떨기 좋은 시각. 누구에게는 감성이 높아지는 시각. 바로 오후 11시 59분, 나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생각해 봤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그때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몇 월 며칠 11시 59분엔 기사를 썼고, 몇 월 며칠엔 트레이닝 과제를 했다. 몇 월 며칠엔 다른 학우들처럼 책상 앞에 앉아 시험공부를 했다. 하루가 바뀌는 그즈음, 나는 온전히 ‘일상적’이라 말하기에 모호한 그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내 USB 신문사 폴더 속 가득 찬 문서들이 내 지난 한 학기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트레이닝 과제를 한 흔적들,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되는대로 휘갈겨 놓은 글들, A4 반장도 안 되는 글을 신문에 실으려고 A4 5장 가량의 글을 썼던 흔적들. 완성본이 되지 못하고 나만 간직하게 된 것들이 보였다. 그곳에는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깎고 다듬는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하루처럼 이어지지만 잠든 사람에게는 하루의 경계선이 되는 그 지점에는 나는 무언가 이전의 내 일상과는 다른 것들을 고민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이렇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나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지난 학기 동안 나는 이틀을 하루로 만들어가며 ‘신문’에 대해 고민해 보기도 하고 ‘사회’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도 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하루의 연속.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고민. 이런 것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수많은 고민을 할수록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적어진다. 그러나 ‘성대신문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을 했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뭔가의 답을 말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을 막기 어렵다. 이틀을 하루로, 하루의 시간을 이틀만큼 쪼개 쓴 지난 학기를 생각한다면 앞으로 내가 며칠을 하루로 만들지, 하루를 얼마로 쪼개가며 무엇을 하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