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자 기반 모형과 축척 지수로 인구분포에 따른 시설분포 및 수치 밝혀내…

기자명 김은진 기자 (eun209@skkuw.com)

 

우리 학교 자과캠 학우라면 학교 근처에 영화관이 없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인사캠과 달리 자과캠 주위에 영화관뿐만 아니라 커피전문점, 화장품 가게 등 상점들이 부족한 편이다. 조사 결과 인사캠 근방 1km 내에는 커피전문점이 약 80개가 넘는 반면, 자과캠은 약 20여 개였다. 이는 서울 번화가에 있는 인사캠과 수원의 한 주택가에 있는 자과캠 주위의 인구수 차이 때문은 아닐까. 여기, 실제로 인구분포와 시설분포 사이의 관계를 규명한 연구가 발표돼 주목을 받았다.
 

 

 

 

ⓒ Carolyn Coles

이원화된 우리 학교의 사례만을 비춰봐도 학교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시설도 많이 분포하고, 그렇지 않으면 분포된 시설의 수가 적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실에서 더 나아가 우리 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와 카이스트 정하웅 교수는 △인구분포와 시설분포 사이의 관계 △인구분포에 따른 적절한 시설의 개수 △시설의 성격에 따라 그것이 분포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알아냈다. 바로 복잡계 분석기법을 이용해 인구분포와 시설분포 사이의 축척 법칙을 밝혀낸 것이다. 본 연구내용은 발표 당시, 세계 저명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복잡계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말하며 여러 가지 독립적인 현상이나 개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 전체적으로 개개인에서 관찰할 수 없었던 새로운 특성을 보인다. 복잡계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로 나비효과가 있다. 이는 브라질에서 시작한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까지 영향을 미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이론으로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세계에서 값을 꺼내다
‘경찰서, 보건소같이 공익을 추구하는 시설과 사립학교, 은행과 같이 이윤을 추구하는 시설이 운영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분포하는 비율 또한 다르지 않을까?’라는 연구팀의 생각에서 이 연구는 시작됐다. 연구팀은 공공시설에 있어서는 방문거리가, 이윤추구시설은 방문자의 수가 시설을 유지하는 데 가장 결정적일 것으로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행위자 기반 분석 모형(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인구분포에 따른 시설분포를 예측했다. 여기서 행위자 기반 분석 모형이란 상호 작용하는 많은 사람(행위자)으로 이뤄진 작은 가상세계를 말한다. 사람이 사는 곳을 정해놓고 주변에 가장 가까운 시설로 이동하도록 사람의 행동을 프로그램화한 것이다. 이때 건물의 위치는 어디가 적절한지 예상할 수 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설은 둘로 나누거나 위치를 옮기는 등의 규칙을 통해 시뮬레이션하는 방법이다”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행위자 기반 분석 모형으로 예측한 결과, 예상대로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 시설의 밀도 또한 높았다. 그리고 인구분포와 시설분포 사이의 관계를 수치화한 ‘축척 지수’가 도출됐다. 축척 지수 값이 1에 가까울수록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 시설 또한 조밀하게 위치했으며 그 반대로 축척 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인구가 분포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해당 시설이 고르게 존재했다. 연구팀의 계산에 의하면 이윤추구시설의 축척 지수는 1, 공공시설은 2/3이었다. 즉, 이윤추구시설은 인구가 분포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밀도로 위치하며 이에 비해 공공시설은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 많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정도가 이윤추구시설보다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관 △카페 △화장품 가게는 이윤추구시설이기 때문에 인사캠과 자과캠 주변의 인구분포와 아주 밀접하게 분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설의 위치가 의미하는 바
이 연구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시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 결과에 대해 김 교수는 “우리나라 보건소의 축척 지수 값이 매우 흥미로웠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보건소의 축척 지수는 0.09로 0과 아주 근소한 차이다. 이는 보건소가 인구수와 상관없이 균일하게 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값을 통해 민간병원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보건소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이윤추구시설의 성격을 띠고 있는 민간병원은 인구 밀도가 낮은 곳에 드물게 위치하는 대신, 고르게 분포된 보건소가 병원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병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범준 교수 제공

시설의 성격에 상관없이 인구가 많은 곳에 시설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실험을 통해 더 구체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이번 연구의 특징적인 점은 인구수와 시설의 성격에 따라 적절한 수치를 이끌어낸 것이다”라고 연구의 의의를 말했다. 김 교수와 정 교수의 연구를 통해 앞으로는 신도시 주위에 신설되어야 하는 초등학교는 몇 곳이 적당한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할 수 있다.
만약 공공시설의 성격을 가진 초등학교를 기업이 운영한다면 이윤추구시설의 분포에 따라 위치할 것이고, 이로 인해 학생들의 통학거리가 불필요하게 늘어날 수 있다. 실제 해당 조사에 의하면 공공시설을 이윤추구시설처럼 방문자 수를 우선으로 고려해서 분포했을 시, 사회적 비용이 50% 이상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혀졌다. 평균 이동거리가 늘고 그에 따른 부가적인 경제적·시간적 비용이 더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연구팀은 공공시설의 사립화·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특히 김 교수는 “국가기관을 민영화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공익적 성격을 가진 기관이 민영화되는 것은 국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손해를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행위는 복잡하기에 사회적 현상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람들의 행위를 일반적인 형태로 규칙화하고 그에 따른 최적화된 값을 구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크게 자각하지 못했던 현상들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래서 인구분포와 시설의 성격에 따른 적절한 축척 지수 값을 활용해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이 같은 연구를 바탕으로 높은 인구밀도 때문에 불필요하게 모여 있는 상점들에게 이상적인 위치를 안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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