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양명지 편집장 (ymj1657@skkuw.com)

그와 나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적어도 ‘텍스트’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비슷했다. 컴퓨터는 물론이요 태블릿 PC를 비롯한 스마트 기기가 판치는 요즘 같은 때에도 그는 짧은 글은 손으로 쓰는 게 좋고, 진짜 좋은 글은 모니터가 아닌 종이로 읽는 게 좋다고 했다. 필자 역시 그렇다. 좋은 글일수록 직접 쓰고 손으로 만지며 넘겨보는 게 더 좋다. 워낙 기계치인지라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탓도 한 몫 했겠다.
필자가 보기에 그는 활자 중독자인 것 같았다. 책을 읽을 때는 물론 길을 가다가 기발한 간판이나 현수막만 보아도 바로 노트를 꺼내 기록하는 게 습관이라고 했다. 쓰고 있는 노트도 보여줬다. 빼곡했다. ‘국가대표 해장국’, ‘바른 길로 가는 신발’ 등 그간 자신이 인상 깊게 봤던 상호 명을 읊으며 거리에 널린 이런 좋은 텍스트들이 자신의 머리에 종을 울린다며 즐거워했다.
지난 8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열린 TBWA KOREA의 ECD 박웅현 씨의 강연에서 그가 한 말들이다. TBWA는 국내 광고업계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저명한 광고 회사라고 한다. 그런 광고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장(長)으로 일하고 있는 게 그다. 과연 그런 창의력 대장들의 우두머리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 마음 반, 이전에 일간지에서 봤던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생긴 그에 대한 호기심 반으로 강연장을 찾았다. 과연 그는 ‘읽기 광(狂)’이었고 요즘처럼 읽는 즐거움을 모르는 세대들에게 그 즐거움을 깨우쳐 주기에 적합한 멘토였다. 2009년에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통해 잘 알려지기도 한 그는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텍스트 세대지만 그것을 요즘의 영상 세대에 맞게 시각적으로 녹여낼 줄 아는 사람이다.
필자는 영상 세대라 칭하기 민망할 정도로 텍스트를 좋아한다.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식탁의 반에는 신문을 펼쳐 놓는다. 이런 필자에게 가족들은 “밥 먹는데 먼지 떨어진다”, “신문 읽느라 너무 느리게 먹는 것 아니냐”며 핀잔을 주곤 한다. 하지만 밥을 먹는 게 식욕을 충족시켜주는 행위라면 신문을 보는 것은 지욕(知慾)을 충족시키는 행위이자 나홀로 식사의 심심함을 덜기 위한 행위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글과 사진이 가득하고 대부분의 경우 필자의 관심사를 다룬 기사가 하나쯤은 있어, 밥 먹는 행위와 신문 읽는 행위를 동시에 하고 있노라면 그 순간 필자는 정말로 충만해진다. 때로는 이 왕성한 지욕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필자의 게으름 탓에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책상에 읽을거리가 하나둘 쌓여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가 하면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기 시작해 놓고 막상 끝을 보는 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스스로의 이런 지욕이 좋다. 그날 강연에서 박웅현 씨도 ‘촉수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읽기의 즐거움을 설파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촉수(촉이라고도 한다)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 촉수란 신문과 책은 물론이요 좋은 사람과의 대화 등 일상에서 감동 받는 순간을 기록하고 그것을 반복해서 볼수록 발달한다고 한다. 강연 말미에 그는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고자 하는데 쉽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했다. “일단 많이 읽고 막 쟁여둬, 그러면 필요할 때 나오거든.” 그의 말마따나 행복해지려면 우선 많이 보고 듣고 읽어 촉을 다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