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인디아 블로그>

기자명 권세진 기자 (ksj4437@skkuw.com)

계단을 내려갈수록 인도풍의 향냄새는 짙어진다. 지하 3층의 소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낯선 공간이 펼쳐진다. 신비로운 음악이 흐르고 무대에는 알록달록 수를 놓은 인도의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관객들이 객석을 채우는 동안 두 주인공 찬영과 혁진은 느린 동작으로 돌아다니며 인도의 전통 차 ‘짜이’를 한 잔씩 대접한다. 잠시 후 “인도에 다녀온 적 있으세요?”라는 찬영의 물음과 함께 연극이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연극은 대본이 먼저 만들어진 뒤 배우를 캐스팅한다. <인디아 블로그>는 반대로 배우들과 제작진이 함께 인도여행을 하며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무대를 장식한 소품들도 그때 공수해 온 것이다. 길 위에서 그들이 본 것과 느낀 감정들은 극장 안에 퍼져있는 인도의 향기와 버무려져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찬영은 옛 여자 친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듣고 먹먹함을 주체할 수 없어 인도를 찾는다. 그녀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인도행 비행기에서 그는 혁진을 만난다. 혁진은 말 한마디 없이 인도로 떠나버린 여자 친구를 찾아 무작정 길을 나섰다. 둘은 금세 친해져 뭄바이에서부터 갠지스 강이 있는 바라나시까지의 여정을 함께한다. 누군가의 ‘떠남’ 때문에 시작된 인도여행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것이다. 인도 곳곳을 여행하며 찬영은 이제는 사라졌다고 믿고 있던 그녀와의 추억들을 조우한다. 함께했던 장소를 떠나지 않고 머물러있는 추억들에게 그는 “오랜만”이라고 말한다. 반면 여자 친구를 찾으러 온 혁진은 인도여행을 통해 차츰 깨닫는다. 그녀는 혁진의 곁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 떠나버렸다는 것을. 모든 것에는 놓아줄 때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그제야 인정한다.
이처럼 둘의 여정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가득하다. 연극은 우리에게 “열심히 걸어라. 사람을 만나고, 떠남을 인정하고 다시 만남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만남의 어색함과 떠남의 허무함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그 두려움을 넘어서면 수많은 만남과 떠남 속에서 생동감 넘치는 삶을 느낄 수 있다. <인디아 블로그>는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그 자체라는 것을 알려주려 한다.
또한, <인디아 블로그>는 우리에게 ‘인도식 시간 보내는 법’을 가르친다. 바라나시에 있는 갠지스 강 어귀를 인도 사람들은 ‘가트’라고 부른다. 찬영과 혁진이 바라나시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온종일 가트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걸어 다니는 것뿐이다. 다른 여행자들이나 인도 현지인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가트에 멍하니 앉아있던 혁진은 말한다. “여긴 내가 살던 곳하고 시간이 좀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실제로 인도의 시간은 서울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확한 일정에 맞추느라 우리는 항상 바쁘게 종종걸음친다. 반면 인도에서는 온종일 강을 따라 천천히 걸어다녀도 괜찮을 것만 같다. 찬영은 인도여행을 마치며 “낭만을 잊지 마라. 돈이 없어 바퀴벌레가 나오는 방에서 가방을 끌어안고 자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강가에 나가 짜이 한 잔을 마시라”고 우리에게 당부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관객은 인도에 다녀온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인도여행을 가야할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여행길에서 만날 인연, 거꾸로 흐르는 인도의 시간. 저 둘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인도에 가보라는 것일까? 찬영과 혁진은 자꾸만 우리를 부추긴다. 알고 싶으면 가보라고.

△공연명:<인디아 블로그>
△공연일시:2012년 5월 20일까지
△공연장소:대학로 문화 공간 필링 2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