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잡지 전문서점 '매거진랜드'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그거, 들어왔소?” 어느 홍대 골목. 허름한 상점 안에서 은밀한 거래가 오간다. ‘물건’을 찾는 이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 시도 때도 없는 “까도 되요? 진짜 까요!” 외마디 외침의 정체도 도무지 모르겠다. 자 이제 몇 걸음 물러서 간판을 올려다보자. 삼원색으로 빛나는 그 이름. ‘매거진랜드’다.
물건을 찾던 그들은 애독자요, 까겠다고 덤빈 그녀들은 비닐포장을 벗기고 싶었을 뿐이니, 이 곳은 다름 아닌 국내 유일의 외국잡지 전문서점이다. 잡지가 ‘흩뿌려진’ 이 협소한 공간 안에는 없는 게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하는 잡지는 뭐든지 구해준다는 소문도 딱 10%만 거짓말, 90%는 진짜란다. 실제로 2년여의 수소문 끝에 1930년도 패션잡지를 구해준 일화도 있다니 믿어도 괜찮을 듯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 매대 위에 누운 어여쁜 패션잡지들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신간들은 정면의 벽에 삼삼오오 등을 기대고 오매불망 팔리기를 기대하는 중. 아래쪽 책꽂이에 빼곡히 들어찬 과월호는 최대 70%까지 할인 가능하다. 매장 안쪽에는 디자인, 예술 관련 단행본도 천장까지 꽂혀있다. 건축, 경제, 과학, 디자인, 인테리어, 예술 등등 종류만 열댓 가지에다 그 수는 2천 권에 달해 입이 절로 벌어질 지경. 그 방대한 양이 무색하도록 잡지 이름만 대면 몇 초 만에 찾아준다니 이 또한 기분 좋은 충격이다.
“잉크냄새 때문에 눈이 따갑고 머리가 아프다고들 하는데 난 그것마저 좋아” 장장 20년을 외국 서적 수입 회사에서 일한 걸로 모자라, 매거진랜드를 차린 주인장 이규택 씨의 말이다. “내 자본은 돈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말할 만큼 적어도 경력 10년은 돼야 잡지를 팔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알바생도 쓸 수 없으니 행여나 아프기라도 할까봐 매사 건강을 챙긴다고 한다.
장장 13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덕에 단골손님도 마를 날이 없다. 꼼꼼한 상담을 거쳐 꼭 맞는 잡지를 찾아주니 주객 간에 정도 도탑다. 이규택 씨가 보유하고 있는 손님 연락처만 5백여 개. ‘<더 젠틀 우먼> 들어옴!’ 문자 한통에 단골들이 앞 다투어 몰려온다. 섬유와 현대미술을 전공한다는 김민지(24), 이여진(24) 씨는 지난 겨울 매거진랜드에서 살다시피 했단다. “기본으로 두 시간은 놀다가요. 보물 같은 곳이라 남한테 잘 알려주지도 않아요(웃음)” 회화 잡지를 훑어보던 어린이 동화 일러스트 작가 분도 한 마디 거든다. “현대를 잘 짚는 좋은 잡지는 미래적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해요”
이렇듯 단골의 사랑을 먹고 사는 매거진랜드지만, 이규택 씨도 소형책방의 위기를 인정했다. 온라인 매장과 대형 서점들은 책을 제공받는 원가 자체가 달라서, 작은 책방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고. “특이하고, 남들이 안하는 걸 해야 살아남지. 쉽게 가질 수 없는 물건을 취급하니까 손님들도 여기를 찾는 거야” 특성화 전략이 바로 매거진랜드의 상술이라며 그는 호탕하게 웃어버린다.


책장에 무수한 이야기를 앙다문 그들이 매거진랜드에서 당신을 기다린다. 새 잡지의 짱짱한 비닐포장을 마구 벗기는 쾌감, 본의 아니게 수없이 옷깃을 스치는 인연은 덤이니 사양하지 말 것. 토요일, 비 오는 날, 많이 판 날은 하해와 같은 할인이 봄비처럼 내린다니 쏠쏠히 참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