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물리86) 동문

기자명 권세진 기자 (ksj4437@skkuw.com)

김지은 기자 kimji@skkuw.com
 “손가락에는 지문이 있고, 목소리에는 성문이 있다. 문장에도 그 사람만의 무늬가 있다.” 김병호(물리86) 동문은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과학의 무늬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스무 살 물리학도였던 김 동문은 물리학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아름다운 학문이라는 데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계룡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를 쓰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87년 6월에 민주항쟁이 있었다. “그때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수업을 거부하고, 집회를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술을 먹고, 소위 말하는 개똥철학을 펼치며 싸웠다. 평점은 3.0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친구를 통해 이성복 등의 시집을 얻게 되고, 자연스럽게 시와 가까워졌다. 돈이 안 되는 일이라 고달프다고 하면서도, “시는 이해관계에서 아예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매력적이고 끈을 놓지 못한다”고 말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진실과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시 쓰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1998년 『작가세계』에 「샛강의 노래」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2006년『과속방지턱을 베고 눕다』라는 시집을 발표했고, 지난달 새 시집『포이톨로기(poetologie)』가 나왔다. 물리학도였던 김 동문은 국문학과와 문예창작과 출신이 대부분인 문학계에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슈뢰딩거 방정식과 E=mc² 등의 과학적 소재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시에 녹였기 때문이다.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정서적 충격을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그 충격을 받는 장소가 대부분의 시인과 조금 다를 뿐이다.” 그는 글의 개성을 찾아 나가기 위해 졸업 후 우주론, 상대성 이론 등에 관한 교양 물리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김 동문은 과학 상식을 문학적 언어로 풀어낸 수필집 『과학 인문학』의 저자이기도 하다.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답한다. 학과에 따라 분절된 사고방식 때문에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 안에 자연의 패턴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며,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 또한 동원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실을 제대로 보려면 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접점들, 공통점들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가치 있다.”
그는 ‘상호작용하는 것들의 총체’인 우주를 시와 과학이라는 언어를 이용해 묘사하려 한다. 대학교 4학년 때 들었던 통계역학 수업에서 누군가가 뚱딴지같이 우주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교수는 ‘상호작용하는 것들의 총체’라고 답했다. “120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별이 내는 빛이 내 눈에 보인다는 것은 그 별과 내가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시를 짓는 일이란 과학이든 예술이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밝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동문은 이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사회의 방부제 역할을 하기를 당부했다. “대학생들은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기 때문에 냉철하게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체제에 반대할 수도 있다.” 물리학도였던 자신이 시의 세계를 기웃거렸던 것처럼 대학생들도 이해관계의 테두리 밖을 ‘둘러볼 줄 아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