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은진 기자 (eun209@skkuw.com)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힉스 입자에게 다른 입자가 이 시에서 말하는 ‘그’가 아니었을까. 이론상으로 질량이 0이었던 입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고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힉스 입자가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힉스 입자가 이러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 여부에 과학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 해, 12월 13일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이하 CERN)에 이목이 쏠린 것이 바로 그것이다. CERN은 당시까지 진행된 연구내용을 바탕으로 힉스 입자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 정확도는 98~99%지만 아직 1~2% 불확실성이 존재해 속단하기는 이르기 때문에 힉스 입자를 ‘완전히 발견’한 것이 아니라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흔적만을 발견’했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입자에게 질량을 부여하다
그렇다면 힉스 입자는 대체 무엇이길래 학계에서 주목하고 있을까. 힉스 입자는 표준모형이론을 완성시킬 수 있는 마지막 단서이기 때문이다. 표준모형이란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인간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현대 입자물리학 이론이다. 표준모형에 의하면 우주를 이루고 있는 입자는 기본입자와 매개입자로 나뉘며 이들의 종류는 총 17가지다. 그 중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하나의 입자가 있는데 그것이 힉스 입자다.
앞서 언급했듯 나머지 16개의 입자는 이론상으로 질량이 0이지만 사실은 그럴 수가 없다. “만약 실제로 입자의 질량이 0이라면 중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태양, 별, 은하 또한 존재할 수 없다”고 한국 CMS* 실험사업팀 대표인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박인규 교수는 설명했다. 다시 말해, 모든 입자는 질량이 0이 아니며 서로 다른 질량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입자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역할을 힉스 입자가 할 것이라고 이론적으로 영국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Peter Higgs)가 제안한 것이다.
그의 가설에 의하면 빅뱅 당시 힉스 입자가 생성됐다가 사라지면서 실제로 보이지는 않지만 만들어진 힉스장이 온 우주의 공간에 가득 차있다. 힉스장에서 입자들이 운동할 때 마찰을 일으켜 질량을 갖게 된다. 마치 바람에 맞서는 방향으로 걸어갈 경우 반대 방향으로 걸어갈 때보다 더 큰 저항을 받는 것처럼 운동 방향에 따라 입자들이 다른 마찰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이 느껴지는 것과 같이 힉스장 또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해도 곳곳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 red_ lion moving from Millenium Falcon to Eclipse

실마리를 발견하기까지
힉스 입자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만들어지는 순간 붕괴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붕괴된 입자는 더 이상 힉스 입자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입자로 바뀌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없다. 따라서 힉스 입자의 존재 여부를 밝히기 위해서 가속기와 검출기를 이용한다. 가속기를 통해 높은 에너지를 가해주면 초기 우주가 생성됐던 빅뱅 환경을 재현할 수 있고, 힉스 입자가 붕괴돼 남긴 입자들을 검출하기 위해 검출기가 이용된다.
가속기에서 입자를 일정 에너지로 가속시키면 그 에너지가 변환되어 초기 입자와 질량이 다른 입자가 생성된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²을 떠올리면 알 수 있다. 가속시킨 에너지가 질량으로 바뀌어 초기의 입자와 다른 질량을 가진 입자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CERN의 경우 대형 강입자가속기(LHC, Large Hadron Collider)를 사용한다. 박 교수는 “LHC의 경우 수소원자의 핵인 양성자를 가속시키는데 각 양성자를 3.5TeV*로 가속시키면 수백 GeV*대의 힉스 입자를 생성하기에는 충분한 에너지”라고 설명했다. 이때 힉스 입자가 생성되더라도 순식간에 붕괴되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박 교수는 “마치 깨진 유리공의 파편을 모아 복원하는 것처럼 붕괴된 입자 파편들을 분석해 합쳐보면 붕괴전 입자의 질량을 예측할 수 있다”며 “입자가 쪼개져 나오는 순간을 찍을 때 검출기가 사용된다”고 말했다. 한국 CMS사업 초대 단장을 역임한 우리 학교 최영일 교수는 LHC에 관해 “아직 목표한 에너지의 절반밖에 가속시키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현재도 더 높은 에너지로 양성자를 가속시켜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표준모형이론이라는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인 힉스 입자를 발견해 표준모형이론이 완성된다면 어떻게 될까? “발견된 힉스가 주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후속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최 교수는 말했다. 만일 1~2%의 확률로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경우,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우주와 기원과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우주는 어떻게 이뤄졌을까?’라는 물음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는 근본적인 생각이다. 힉스 입자를 연구하는 입자 물리학 또한 세상, 우주를 이루는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학문이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인류의 지적 자산을 축적하는데 힉스 입자가 큰 기여를 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힉스 입자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 기사도우미
CMS : 검출기의 이름이자 CMS국제공동연구단의 이름(보통 검출기 이름을 국제공동연구팀 이름으로 사용함)
TeV : 테라 전자볼트, 1조 전자볼트
GeV : 기가 전자볼트, 10억 전자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