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속 노래 '이등병의 편지'

기자명 권세진 기자 (ksj4437@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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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는 둘 사이에 펼쳐질 무궁무진한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희망과 환희로 가득해야 할 그 순간, 혹시 마음 한구석에 약간의 애잔함이 꼬물거리는 느낌을 받지는 않나요? 그런 느낌이 든다면 그건 아마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예감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는 인민군 오경필과 정우진, 국군 이수혁과 남성식, 이 네 명의 군인이 맺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만남은 겉으로는 너무도 평온해 보입니다. 밤마다 남한 병사 두 명이 남북을 잇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가 북한의 두 병사와 만납니다. 노릇노릇 타오르는 난롯가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낄낄거리다가 아침이 오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곤 하는 넷의 관계. 하지만 영화 속 네 인물과 관객은 이 관계가 결말이 분명한 위태위태한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네 사람은 낄낄대는 순간에도 어딘지 슬프고 처량해 보입니다.
영화 특유의 애잔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는 김광석의 목소리도 한몫을 합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 라디오에서는 김광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등병의 편지’를 부릅니다. 노래를 듣던 인민군 오경필은 착잡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광석이는 왜 그리 일찍 죽었대냐……”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는 김광석의 목소리가 너무나 절절하고 애달파 이북의 군인마저도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게 만든 것이지요. 영화 속 노래 ‘이등병의 편지’는 김광석의 눈물 젖은 목소리와 가사를 통해 넷의 만남이 서글픈 끝을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꼭 해다오 /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 열차 시간 다가올 때 두 손 잡던 뜨거움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이등병이 고이 접어 보낸 편지와도 같은 이 노래에서 김광석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떨립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있어야 하는 이등병의 처지가 그리도 안타까웠던 것일까요? 그의 가슴 더 깊은 곳에는 이등병의 삶에서 막을 내릴 하나의 ‘시절’에 대한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입대 전에 이등병이 맺고 있던 일상적 관계들이 2년 후에도 그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당시에는 살아있는 ‘일상’이었던 관계들이 나중에는 빛이 바랜 ‘옛일’이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이등병의 편지’는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하나의 시절이 끝나는 것에 대한 애잔함을 노래합니다. 
영화와 노래는 관계의 끝에 대한 슬픈 정서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관계가 끝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관계를 시작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관계 맺기는 인간의 속성이고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네 명의 병사들은 그들의 관계가 비극으로 끝날 것을 예감하면서도 인간적 끌림을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곧 사회를 떠나 군대로 갈 무수한 젊은이들도 주위 사람들과 열심히, 또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보내고 있는 인생의 한 시절이 곧 끝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끝날 것을 알면서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알쏭달쏭한 관계들, 우리 인간은 그 속에서 아옹다옹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