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 동아시아학술원 HK(미학 ·미술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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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승혜 교수 제공
"파토스, 나의 정열을 그대의 감성에 통하게 하라."

2011년 여름에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하기 전에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한국일본미술큐레이터로 근무하는 동안, 2011년 봄에 특별전 “The Lure of Painted Poetry: Korean and Japanese Art (한일미술에서 시적 회화를 향한 동경)”을 기획했다. 클리블랜드에서 한국은 야구선수 추신수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미술을 특별전으로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관람객은 한국에 와본 적도 없는 미국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국 미술에는 감정을 보일 듯 말 듯 절제하는 우아함과 유학자 정신의 강직함이 오묘하게 융합된 것에서 매료되었고, 그것을 전달하려는 나의 열정에 감동했다. 이 전시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나의 모습은 201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7시 일본 TBS 보도특집이라는 프로를 통해 인터뷰로 소개되었다. 일본사람이 궁금해 했던 것은 물론 특별전의 내용도 있었지만, 그 속에 숨겨진 미국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한국인의 도전정신이었다. 한국인인 나의 열정이 경기불황으로 우울함에 빠진 일본인을 자극하는 동기가 되었으면 했었다.

나의 열정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살짝 비밀을 알려준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아름다움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그림과 영화처럼 무엇인가를 볼 때 느끼는 감성적 즐거움이 바로 신비한 열정 에너지이다. 나의 연구분야인 미학은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학문이 세분화되는 18세기에 독일의 바움가르텐이 만들어낸 단어인 Ästhetica (감성의 학문)를 한자 단어로 번역한 것이다. ‘감성’이 ‘美, 아름다움’으로 번역된 것이다. 감성은 애매하고 모호해서 똑 부러지게 정의되거나, 도덕적 의무처럼 당위로 명령할 수는 없지만, 늘 감정과 불가분의 관계로 나를 지배한다. 동서양을 비교하자면, 유럽에서 감성이 합리적 이성과 짝이 되어 서로를 보완해준다면, 동아시아에서 감성은 도덕성과 융합된다. 내가 좋아하는 감성에 대한 글은 《중용》의 기쁨, 화남, 슬픔, 즐거움(희로애락)의 감정이 조화롭다는 문구이다. 기쁘고 즐거운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슬프고 화나는 것도 인간적인 감정으로 인정해 준다. 나는 가끔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내는데, 참으로 다행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감성이 질기게 오래 가는 기억이라는 것이다. 몇 일전 한 신문이 기억상실증 환자를 조사하니 정서 기억이 서술과 절차의 기억보다 더 강하게 남아있었다라는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예를 들면 연애 하던 과정은 잊어버려도, 그 감정은 기억한다는 것이다. 따스함과 포근함, 두려움과 분노 등과 같이 감성과 관련된 정서 기억은 뇌질환으로 잘 타격을 받지 않는 곳에 보관되고,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대뇌 피질 곳곳에 흩어져 파묻힌다고 한다.

감성이 가장 오래가는 기억이라면, 멋진 감성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정서 기억을 가질 수 있을까? 감정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이지만, 놀랍게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이 가장 강력해 지는 순간은 많은 사람들과 공감이 이루어졌을 때이다. 대중 속으로 감정이입이다. 21세기에 미학을 ‘아름다움과 대중간의 상호 유익한 관계를 구축하는 감성적 의견 교환 과정’이라고 정의해 본다.

감정이 공감된다 것은 사람들의 생물학적 구조가 공통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으로 마음이 아프면 심장이 있는 곳이 아프다. 뇌에서 호르몬을 분비하는 것일 텐데, 신기한 일이다. 영어권은 heart, 독일어 Herz, 프랑스어로 cœur 라고 하고 한자권에서 心이라고 쓴다. 심장이라고 쓰고 마음이라고 읽는 샘이다. 언어권이 달라도 문화권이 달라도, 심장이라는 내장기관은 마음이라는 뜻을 동시에 함유한다. 신기하다. 왜 심장에 감정을 담은 마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결국 미학은 감정을 응축한 "심장"에 관한 학문일까.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사랑의 빠진 인간의 뇌에 대한 MRI(자기공명영상)으로 연구를 한다. MIT의 미디어 랩은 감정을 측정하는 신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집단 감성도 인간이라는 공통된 생물학적 특성 덕분에 집단지성과 같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MIT의 집단 이성 연구센터가 주장하듯이 집단지성으로 “우리는 나보다 더 똑똑하다(We are smarter than me)”라고 한다면, 우리는 집단 감성으로 더욱 조화롭고 현명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집단 감성은 놀랍게도 유학의 기본 정신이다. 유학자들은 가족, 사회, 국가라는 사회 질서 속에서 희로애락이 조화된 감정을 실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이것이 조선왕조 500년 유학의 위대함이 아닐까? 성균관의 젊은 이들이 조선의 전도유망한 미래를 갈망한 집단 감성이 면면히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곳 성균관대학교라는 생각에 흥분됨을 감출 수 없다. 감성의 가치가 이미 500년도 넘게 우리의 유전자 속에 기억되어 있다.

이러한 집단 감성을 사회 속에서 적극적으로 발현시킬 궁리를 해보자. 최근 미국의 마케팅협회에 의하면, 마케팅이란 ‘소비자, 클라이언트, 파트너, 사회 전반에 가치를 만들고, 전달하고 교환하는 일련의 기관과 과정의 행동’이라고 정의된다.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돈이나 이익을 넘어선 휴머니즘, 인류애라면 좋겠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감정을 진정으로 만족시키는 가치가 아닐까?

세계에서 감성을 휴머니즘로 승화시킨 예술가들로 누가 있을까? 가치로운 생각을 확산시킨다는 컨셉을 내세운 테드가 선정한 예술가들에 눈길이 머문다. 2011년 테드 우승자는 프랑스 사진가 JR이다. 그는 사진으로 인간에 대한 차별과 선입견을 없애고 감정의 조화를 이루는 사진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베네수엘라 지휘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리우라는 빈곤에 시달린 수 천 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아이들의 인생을 바꾸었다. 인류를 위한 소망, 그것이 진정한 감성마케팅의 목표가 아닐까. 이런 예술가들이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의 열정으로 오랫동안 지속될 감동적이며 감성적인 기억을 남긴다. 바로 이것이 인류의 예술사이다.

이제 21세기 아시아의 르네상스시대를 맞이한 우리의 차례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유럽중심의 모더니즘에서 아시아적 사고방식의 가치관 재인식을 가능하게 했고, 유럽의 경기 불안은 유럽중심의 사고방식에 반성을 유도하고 있다. 20세기 일본의 경제대국화, 21세기 중국 경제의 급성장, 20-21세기 한국 전자산업의 세계 경쟁력은 21세기 아시아르네상스적 사고방식의 경제적 토대가 갖추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궁리해보자. 인간의 감성과 사회와의 조화를 기본으로 했던 유학의 정신으로 인류를 감동시키는 아름다움이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파토스, 인류애를 향한 나의 정열을 그대의 감성에 통하게 하라.” 이것이 바로 내가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궁리해 가는 감성마케팅이며, 궁극적으로 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