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양명지 편집장 (ymj1657@skkuw.com)

‘세계 최악의 도시 3위 서울’, ‘2012년 꼭 해야 할 10가지 중 하나, 여수세계박람회 관람하기.’
세계 최대의 독립 여행 출판사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이 우리나라를 두고 내린 상반된 평가다. 멋없이 획일적으로 지어진 건물과 도로 때문에 서울을 ‘영혼도 마음도 없다’고 표현한 게 불과 2년 전인데, 지금은 여수와 제주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 이 출판사. 론리 플래닛은 무일푼의 20대 영국인 부부에 의해 1972년에 설립됐다. 이 젊은 부부는 ‘아홉 시 출근 다섯 시 퇴근’이라는 판에 박힌 삶이 싫어 아시아 대륙 횡단을 필두로 여행을 시작했다. 50대가 된 지금은 수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큰 기업의 경영자로 성장했다.『론리 플래닛 스토리』는 오직 여행에 대한 열정 하나로 평생을 여행에만 몰두한 부부가 써내려 간 이야기다.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부부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 적지 않은 부(富)까지 안겨줬으니 말이다.
필자에게 현재 최대의 관심사는 여행이다. 많은 대학생이 그렇겠지만 필자 역시 오랫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꿈꿔왔고 드디어 올여름,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여행에 대한 필자의 갈망은 작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1학년 여름을 제외하고는 방학 때마다 짧게라도 여행을 다니곤 했다. 1학년 겨울 구례 화엄사 템플 스테이를 시작으로 2학년 여름에는 일본 오사카와 부산 여행, 같은 해 겨울 안동 하회마을과 영주 부석사 여행까지. 필자의 여행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점점 알차고 영양가 있게 발전해 왔다. 특히 작년 여름 일본 여행은 필자의 생애 첫 외국여행이었다. 어느 여행지에서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새로운 환경이기에 숨통이 트이고 분방해 지게 마련이지만, 이국의 새로운 풍경과 함께라면 그 자유는 한 뼘 더해진다. 또 여행지에서는 새로운 나를 보게 된다. 내가 이렇게 자유롭고 대범한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고, 아직 어린 애 같은 호기심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20여 년을 함께 했지만 나 자신도 잘 모르는 나를, 낯선 곳에서는 마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신문사 생활이 끝나거든 훌쩍 떠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기 위해서.
한 달 동안 떠난다는 필자의 말에 축하 인사를 건네는 이들이 많다. 재밌겠다고, 좋은 것 많이 보고 듣고 맛보고 오라고들 한마디씩 한다. 하지만 이 여행이 조금 길어질 수도 있겠다고 말하면 의견이 갈린다. 한 학기 휴학한 후에 돈을 좀 벌어서 2~3개월 정도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일부는 “너무 길고 대책 없지 않느냐”고 하고 몇몇은 “지금 아니면 언제 그래 보겠냐”며 도전해 보라 한다. 전자는, 남들은 인턴 하나 더 하고 무슨 국가공인자격증입네 하는 것들을 하나라도 따보려고 아등바등하는 때에 너는 속 편히 여행이나 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일 것이다. 물론 필자도 그런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벌써 국가고시를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고 여러 대외활동을 섭렵하다시피 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에 반해 필자는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뭘 좋아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짧은 경험들만 가지고 쉽게 판단해 버리고 싶지도 않다. 
스펙 쌓기, 꼭 해야 하나 싶다. 이 시대 청춘의 멘토라는 사람들이 누누이 말하지 않나. 스펙이 아닌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라고. 그런데 집과 도서관만 오가는 생활에서 자신만의 스토리가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 예고 없이 닥치는 돌발 상황들 모두 겪어봐야 나를 알고 스토리가 생긴다. 여행만한 게 없다. 물론 건강한 신체와 도전 정신만 가지고는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일단 마음을 먹었다면 여행 경비 마련에서부터 복잡다단한 정보 수집과 각종 예약까지 고생할 각오는 해야 한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방학 때마다 떠나는 여행은 필자에게 다음 학기를 살아갈 원동력이 돼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떠나게 될 여행들은 멋진 인생을 사는 데 원동력이 되고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직 자기 자신을 마주한 적 없는 청춘이라면, 낯선 곳에 자신을 한 번쯤 내던져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 한국문화인류학회,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일조각, 2006. 본 글의 제목은 책의 이름에서 빌려 왔으며 책 내용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