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지식융합연구소 이인식 소장

기자명 김은진 기자 (eun209@skkuw.com)

마흔여섯.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리 잡은 직장에서 차츰 노후를 준비하려고 하는 그 시기에 대기업 임원이었던 그는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대한민국 1호 과학칼럼니스트’라고 부른다. 그는 바로 지식융합연구소 이인식 소장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금성 반도체 최연소 부장, 대성그룹 상무이사라는 그의 이력을 본다면 평탄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독하게 가난했기 때문에 그는 필사적으로 공부했고 그 결과 8년 만에 대기업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해 탄탄대로 성공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늘 마음 한구석에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었다. 결국 그는 40대 중반에 과학칼럼니스트로 전향했고, 그 후 △동아일보 △부산일보 △조선일보 △한겨레를 비롯한 신문에
470편 이상의 칼럼을, △과학동아 △월간조선 △주간동아 △한겨레21 잡지에 160편이 넘는 칼럼을 기재하는 등 다작의 기록을 세웠다.
국내 과학칼럼 분야 내 최고의 위치에서 융합학문의 중요성을 전파하는 이 소장을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지은 기자 kimji@skkuw.com
<약력>
-광주 출생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전(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전(前) KAIST 겸직교수
-현(現) 지식융합연구소 소장
-《동아일보》,《부산일보》,《조선일보》,《한겨레》등 신문에 470편 이상 칼럼 연재
-《과학동아》,《월간조선》,《주간동아》, 《한겨레 21》등 잡지에 160편 칼럼 연재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월간지 《PEN》 나노기술 칼럼 연재

<수상경력>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과학동아》 창간 20주년 최다 기고자  감사패
-서울대 자랑스런 전자동문상

 

 

■ 직장을 그만두던 1991년 당시, 평생직장이 당연시 여겨지지 않았나
그렇지. 지금도 그렇지만 40대 중반이면 50대까지 하다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였어. 하지만 세상에 한 번 태어났으면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은 없는 것 같았거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서 40대 중반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지. 그래서 고생을 꽤 했지. 그런 선택 뒤에는 아내가 있었어. 다른 아내라면 이게 이혼 사유가 됐을지도 몰라(웃음). 그런데도 우리 아내는 내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위험부담이 있는데도 ‘남자는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죽어야 한다’며 응원해줬지. 정말 고마웠어. 그런 아내가 있었기에 제2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었어.

■ 회사생활을 하는 게 나를 위해 하는 일이 없다고 말했는데
나는 회사생활이 소모적인 삶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누적적인 삶을 살고 싶었어. 글 쓰는 일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남는 거니까. 회사생활은 그렇지 않고 사라져버려. 결코, 그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야. 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러한 삶을 지향할 수도 있지, 소비적인 게 뭐 어때. 근데 난 인생 전반부에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후반부에는 누적적인 삶을, 의미 있는 삶을 살다 죽고 싶었어. 그래서 회사를 뛰쳐나왔지.

■ 직장을 그만두고 성공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91년 가을,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잡지사를 차렸어. 하지만 실패했지. 퇴직금 다 날린 거지 뭐(웃음). 그래서 폐간한 뒤 고시원에 등록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 죽도록 공부만 했어. 그때 과학의 전반적인 분야를 다 공부했어. 내가 모르는 것도 많았고 한 가지 분야만 알아서 책을 쓰기는 불가능하니까.

■ 어떤 점이 힘들었나
일은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데도 프리랜서이다 보니 수입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었지. 불안할 때면 돌멩이가 나를 짓누르는 악몽을 꿔서 새벽에 깨기도 했어. 오죽하면 큰 아이가 대학교 1학년일 때 군대를 등 떠밀어 보내기도 했겠어. 그럴 정도로 힘들 때도 있었지.

(왼쪽부터) 『인문학자, 과학기술을 탐하다』: 이 소장이 기획한 융합 시리즈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다.
『청년인생공부』: 사회 각 분야 멘토들의 강연을 묶은 책으로 이 소장의 융합 강연이 실렸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지난 달 말에 출판된 이 소장의 최신 책으로 자연중심 혁신기술에 대한 내용이다. / 김지은 기자
■혹시 회사생활을 그만두지 않고도 부수적으로 글 쓰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기엔 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까웠어. 자네 인생도 아직 젊으니까 많이 남아 있는 거 같지? 하지만 제한적이야. 지금 내 앞에 있는 커피를 마셔버리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한정돼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면 안 돼. 아무도 보상해줄 수 없거든.

■예나 지금이나 글 쓰는 직업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과학을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을 텐데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대학 다닐 때 소설을 쓰기도 했어.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일단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 근데 소설가는 수백 명인데 과학 분야를 접목해 글 쓰는 사람은 없더라고. 그래서 독자적으로 그 길을 개척해보고자 결심하게 됐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도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는 데 두려움은 없었나
두렵기도 했어. 하지만 나를 내가 믿었어. 그렇다고 무턱대고 믿은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을 만큼 치열하게 노력했지. 유학 한번 다녀오지 않았지만 뒤처지지 않게 영어 공부도 하고, 자료 분석하는데 능숙해질 수 있도록 매일 쉬지 않고 공부했어. 국어 실력은 대학 시절에 소설 쓰면서 길렀고. 그래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어.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하고 싶은 일은 있는데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겁먹지 말고 그만큼 자신의 역량을 끌어 올리는 것을 추천하고 싶어.

■꿈이 있다 하더라도 경제적 문제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할 수도 있지 않은가
가장 먼저 ‘지조를 지키고 자신의 길을 가라’고 말해주고 싶어. 물론 나도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내 신념과 맞지 않는 것은 정중히 거절했거든. 그렇게 명분을 중시하며 살았으면 해.
또 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해 공부했으면 좋겠어. 자신을 강하게 만들면 누구도 탓할 수 없어.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하던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스펙 쌓을 필요도 없고, 세상 탓하지 말고, 죽도록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야. 그 방법밖에 없어. 그게 왕도야.
그리고 평소 후배들에게 늘 ‘Back to the basic’을 강조하는 데 여기서 기본이란 자신의 것을 열심히 하고 다른 분야와 소통하는 것을 의미해. 융합의 시대니까 이런 자세가 당연히 필요하지.

■평소에 전파하고 다니는 융합에 대해
‘융합’이란 용어가 최근에 대두된 것처럼 이야기되는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아. 용어 자체는 최근에 나왔지만 이전에는 ‘학제 간(Interdisciplinary)’이라는 용어로 쓰이고 있었어. 컴퓨터가 생긴 제2차 세계 대전부터 본격적으로 융합은 시작됐어. 이전에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사용해 과학 현상을 분석하는 시대였다면 컴퓨터가 보급된 후, 과학자들이 연구하면서 자연사회현상을 종합할 수 있게 된 거야. 그래서 수평적으로 학문이 융합될 수 있었지. 이때부터 시작된 융합은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거고.
외국에서는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어. 그래서 이런 것을 말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 역할을 내가 하고자 한 거고.

이인식 제공
■융합과 관련해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융합은 △지식융합 △기술융합 △산업융합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지식융합은 인문학과 과학기술을 융합시킨 것으로 주로 학교에서 일어나지. 기술융합은 말 그대로 기술과 기술이 융합된 건데 연구소에서 적용되고 산업융합은 기술융합을 통해 물건을 생산해 내는 것을 의미해.
구체적으로 지식융합 중에서 뇌과학을 예로 들어 보면, 뇌과학과 인문과학이 만나서 △사회신경과학 △신경경제학 △신경마케팅 △신경신학 △신경윤리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났고 뇌과학과 자연과학이 만나 △계산신경과학 △신경정보학 △신경공학 분야가 나온 거야. 신경마케팅은 간단히 말해 펩시와 코카콜라의 싸움 같은 것인데 그 유명한 블라인드 테스트와 관련돼 있어. 실험자가 상표를 가린 채 펩시와 코카콜라를 시음하면 펩시가 맛있다고 하는데 상표를 보여주면 코카콜라가 맛있다고 하는 거야. 그렇게 뇌의 활동을 연구하는 것을 신경마케팅이라고 해. 아주 흥미롭지.
이것뿐만 아니라 신경경제학은 경제학에 심리학, 신경과학을 융합해 인간의 선택, 의사 결정을 연구하는 것이야. 예를 들어 미국의 폴 자크라는 학자가 사람이 누군가를 신뢰할 때 뇌 안에서 어떤 물질이 나오는지 연구했는데 그 물질이 옥시토신이었어. 근데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은 △모성애 △사랑 △포옹과 같은 정서와 100% 관련돼있지. 여기서 신뢰 행동이 이성에 의해 의식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유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그러니까 사람이 누군가를 믿을 때 이성이 개입한다기보다 그냥 느낀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신경경제학이야.

■그렇다면 융합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융합 시대에 걸맞게 깊이 공부하고 널리 대화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우선 깊이 공부하는 것은 자신의 분야를 그만큼 공부하라는 것이고 널리 대화하는 것은 그 분야의 인재를 방문해 대화하라는 것을 의미해. 인재를 방문하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선 해당 분야의 책을 많이 읽고, 또 전문가를 만나 강연을 듣는 게 있어. 요즘 대학생들을 위한 강연은 거의 무료잖아. 게다가 전문가들이 쓴 책은 일생일대를 걸고 공부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그런 책을 사서 읽는다는 건 얼마나 이익이고 경제적이야, 안 그래?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그렇게 공부했으면 좋겠어.

■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루하루 생활하는 게 바쁘고 또 먹고 살기 힘들 수도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기 어렵지만 나누고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남을 위해 살았으면 한다는 거지.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이 커피부터 앉아 있는 의자까지 모두 다른 사람이 만든 것, 우리가 도움받고 살지 않나? 그만큼 우리도 남한테 돌려줘야지. 우리는 남이 해놓은 거 다 즐기면서 자기는 자신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지, 안 그래?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덕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해.
우리도 우리가 한 것 덕분에 누군가가 인생을 편하게 살도록 해줘야지. 그게 내가 말하는 남을 위한 삶이야. 이는 결국 자신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어. 왜냐면 남을 위해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할 것이고 바로 그것이 자신을 발전하게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