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재윤 기자 (mjae@skkuw.com)

1. 고등학생 시절,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나 또한 대입을 위해 논술을 공부했다. 2시간 남짓한 수업시간 동안 친구들은 원고지를 빼곡하게 채우고 집으로 향했지만 학원 문이 닫을 시간까지도 나는 애꿎은 연필만 문지르며 몇 글자를 썼다 지웠다 할 뿐이었다. 글 쓰는 것이 수능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싫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글쓰기 교양과목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수업이었고 지금도 수강신청을 할 때는 수업 계획서를 고르고 골라 글쓰기 과제가 없는 수업을 골라 듣는다.

2. 나는 꼬마였던 시절부터 얌전하게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편이었다. 자라서도 남들이 다 겪는다는 불같은 사춘기 한 번 겪지 않고 십 대를 보내고 이십 대를 맞이했다. 부모님께서 유별나게 100점을 받아오라, 1등을 해오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아니지만 공부에 열을 올렸고 착한 딸이란 칭찬을 듣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었다. 왜냐고? 나는 남들만큼, 남들과 비슷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남들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3. 글쓰기가 싫어 논술학원 가는 날이 일주일 중 가장 싫었던 스물한 살의 내가, 대학생활은 학점을 관리하고 스펙을 쌓는 기간이라고 여겼던 내가 성대신문 문화부 기자가 된 것은 내 삶의 첫 일탈이었다.
학보사 기자가 돼 글을 쓰는 생활을 택했지만 나는 여전히 기사 작성보다는 취재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1년 반 동안 ‘정재윤 기자’라는 필명을 단 원고지 300매에 가까운 기사들을 써내며, 금요일마다 호암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신문의 활자 그리고 종이냄새는 내게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학보사 기자가 돼 학생 신분보다는 기자 생활을 우선시하지만 나는 여전히 남들보다 뒤처질까 불안을 안고 산다. 그러나 ‘문화부 기자’라는 이름으로 만난 여러 인물들은 모두 내게 말했다. 남들이 갔던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지 말라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슬퍼하라고.
이번 주에도 나는 밀린 과제를 위해 도서관에 가는 대신 백남준과 존 케이지를 택했고, 한 문장 한 문장 기사를 토해내며 금요일 밤을 꼬박 새웠다. 나의 지난 1년 반이 내 삶을 이미 송두리째 바꿨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진동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