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법05)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달 4일, 성대신문에는 김다미 성폭력 상담가의 인터뷰 기사가 지면에 실렸다. 그는 우리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통념과 편견이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그릇된 통념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성적인 신체접촉이 아니라면 성폭력이 아니다 △여성들의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했다 △침묵은 사실상의 동의다 등의 통념들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김다미 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 동안, 과연 이 글을 읽는 남성들 중에 몇 사람이나 이 말에 동의할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보통 남성들은 성폭력이라고 하면 성기가 삽입되는 구체적인 행위태양을 떠올리고 △지나치게 야한 옷차림은 남성들의 성욕을 자극하여 어느 정도 성폭력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침묵은 사실상 동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김다미 상담가의 말 그대로, 전부가 다 잘못된 통념이고 왜곡된 편견이다. 실제로 여성의 야한 옷차림과 성폭력 자체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성기 삽입만을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남성주의적인 시각과, 침묵은 사실상의 동의라고 보는 왜곡된 성차별적인 시각이 성폭력 범죄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성폭력과 관련된 이러한 사회 일반인들의 왜곡된 인식을 전문용어로는 ‘강간통념(Rape myth)’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이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였고, 그러한 이유에서 이와 같은 글을 올리게 되었다.
강간통념이란, 간단히 말해서 사실과는 다른 그릇된 편견, 즉 성폭행 범죄를 바라보는 그 사회의 왜곡된 시각을 말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여자들의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외에도 우리 사회 속에는 다양한 모습의 강간통념이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강간범은 정신이상자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강간은 젊고 예쁜 여성에게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잘못 형성된 강간 통념에 속한다. 왜냐하면 실제 성폭행 가해자는 정상적인 사회·가정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성폭행 피해는 용모와 관계없이 생후 몇 개월의 유아부터 70세 이상의 할머니까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간통념은, 가해자로 하여금 성폭력을 충동적인 행동으로 합리화시켜 범죄의 재발 가능성을 높이고, 강간범죄의 책임을 피해자인 여성에게 전가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잘못된 강간통념은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여 형사 정책상으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것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잘못된 형사 정책은 다시 성폭력 범죄 피해를 확대 재생산시키고 강간통념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악순환을 낳기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를 바라보는 왜곡되고 그릇된 시각인 강간통념은, 하루빨리 개선되어야할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그다지 큰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일화적 프레임 위주의 자극적인 언론보도가 끊임없이 우리의 성폭력 범죄 현실을 왜곡시키고 있으며, 성차별적인 가치관이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힘겹고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움직임들이 있다는 기사는 참으로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성폭력 ‘생존자’들의 ‘말하기 대회’를 다룬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만으로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린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전부 다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이 모여 작은 씨앗을 이루고, 싹을 틔워 커다란 나무로 자라나, 퍽퍽하게 말라버린 우리 사회에 촉촉한 생명의 숨길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