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유학대학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최영진 유학대학 교수
지난달 24일, 대만에서 개최된 제4차 국제한학회의(國際漢學會議)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몇 가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이 회의는 대만 최고의 학술기관인 중앙연구원이 10년에 한번 개최하는 학술행사로서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중국학 내지 동아시아학 학술회의이다. 그동안 수많은 국제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였지만, 이 학술회의에 초청된 것만큼 나에게 영광스러운 일은 없었다. 더구나 작년에 작고하신 도원 류승국 선생님께서 1986년 ‘제2회 국제한학회의’에서 한국유학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신 적이 있으셨기 때문에 더욱 감회가 깊었다.
나는 동아시아유학 분과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이명휘(李明輝)등 대만의 대표적인 연구자들과, 중국 청화대학교의 진래(陳來), 프랑스대학교의 앤챙, 미국 보스턴대학교의 존 버트롱(John H. Bthrong), 홍콩중문대학교(전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의 신광래(信廣來) 등 세계적인 유학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송대 신유학을 강의하고 있는 피터 볼(Peter Bol) 교수는 근세중국사 분과에 소속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 세계 각지의 명문대학에서 유학 사상을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한 교수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초청된 것은 '한국'유학사상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원고 청탁을 받고, 19세기에서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전개된 한국유학의 심설논쟁(心說論爭)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이 문제를 중심으로 두 학기 동안 대학원에서 강의하고 학생들과 토론을 하며 자료를 분석하고 금년 3월 말에 원고를 제출하였다. 그동안 외국학자들은 주로 16세기 퇴계와 율곡의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에 대하여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간혹 18세기 ‘호락논쟁(湖洛論爭)’에 대하여 언급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심설논쟁의 존재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는 외국 학자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받아 본 순간,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대만 학자 2명이 심설논쟁에 대하여 발표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 한 가지 놀란 것은 24편의 논문 가운데 8편이 한국유학과 연관된 것이라는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만의 유학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황준걸(黃俊傑) 대만대학교 인문사회고등연구원장은 중국과 일본 유학을 비교하면서 다산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 유학에 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외국학자들이 한국유학에 대하여 발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한국유학이 국제적인 연구 과제로 부상했다는 점을 시사해 주기에 충분하였다. 
외국의 유학 연구자들이 한국유학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동아시아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보려는 연구 경향이 대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 중심에서부터 벗어나 한국과 일본의 유학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연구가 진행되면서 한국유학의 독창성과 우수성에 눈을 뜬 것이다.
현재 대만대학교에서는 2백여 권이 넘는 ‘동아사아유학연구총서’가 간행되고 매년 10회 이상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금년 9월에는 대만대학교에서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보는 한국유학’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유학 연구의 쟁점 가운데 하나인 ‘주리(主理)/주기(主氣)’에 대하여 한중일 학자들이 토론하게 된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내가 상념에 빠진 것은 우리 학교가 ‘세계적인 유학연구의 중심’을 자처했지만 이미 동아시아 유학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이제 더 이상 한국유학이 우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유학대학이 양적으로는 확대되었다지만 우리의, 그리고 나의 연구력은 과연 어느 정도나 될까? 학문은 결국 나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다. 나는 착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