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만난 젬베

기자명 유수빈 기자 (newbien@skkuw.com)

영화 속 주인공의 젬베 연주는 현란하고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젬베는 묘한 매력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영화 <더 비지터>의 주인공인 늙은 교수 월터 씨는 노곤한 삶을 살고 있던 인물이다. 그는 20년째 똑같은 강의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왔다. 외로움을 달래고자 피아노를 배우긴 하지만 아무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지루한 월터 씨의 삶은 앙 다문 입과 나른한 눈빛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 늙은 남자의 맥없는 모습에 관객들도 첫 몇 분간은 피곤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의 지루한 초반 전개는 월터 씨가 코네티컷에서 뉴욕으로 이사 오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뉴욕에 있는 그의 아파트엔 이미 누군가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시리아에서 온 불법체류자인 타렙 부부이다. 예상치 못한 불청객에 놀랐지만, 월터 씨는 타렙 부부를 내쫓지 않고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타렙 부부뿐 아니라 그의 삶에 문을 두드린 또 한 명의 손님이 있었으니, 바로 아프리카 전통악기인 젬베다. 월터 씨와 젬베의 첫 만남은 타렙을 통해 이뤄졌다. 타렙은 작은 카페에서 공연하는 젬베 연주자였던 것이다. 타렙이 젬베를 연주하자 월터 씨의 고개가 까딱거린다. 경쾌한 젬베 소리가 나른하던 월터 씨의 일상을 뒤흔들었고, 이를 계기로 그에겐 직접 일상을 바꿔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 월터는 쭈뼛거리며 타렙을 마주 보고 젬베를 배우기 시작한다. 첫 시작이라 그런지 손동작도 영 미덥지 못하다. 탑, 탑, 탑. 느린 젬베 소리는 탁한 울림을 남긴다. 타답타, 타답타, 타답타. 박자가 빨라지며 월터 씨의 손가락은 신이 난다. 월터 씨는 천재적인 젬베 연주가가 아니다. 미숙한 솜씨이지만 그는 그저 어디서나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젬베 가죽을 두드린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관객들에게 젬베가 가깝게 다가온다. 관객은 서툴지만 즐거워하는 월터 씨를 보면서 처음 악기를 배우는 사람의 설렘을 공유한다.

Ⓒ위드시네마

 

거리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사람의 젬베 연주에 월터 씨가 충동적으로 끼어드는 장면에서 그의 완고하던 표정이 처음으로 환해진다. 그 순간, 서로 다른 박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박자를 이룬다. 이제 그는 진심으로 젬베를 즐기게 되었다. 젬베가 없을 때조차 타렙이 가르쳐 준 아프리카의 세 박자에 맞춰 그의 손바닥은 들썩거린다. 젬베와 더불어 월터 씨의 다른 일상도 바뀐다. 월터 씨는 노교수의 일상에서 벗어나 타렙 부부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는 생전 입에 대지 않던 서민 음식을 먹고, 유람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노년의 사랑을 맛보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가면서 그의 삶에 끼어들었던 방문객들도 하나 둘 떠나간다. 타렙 부부가 그만 시리아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젬베 만큼은 월터 씨의 곁에 남는다. 영화는 지하철에서 월터 씨가 젬베를 두드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월터 씨가 퇴장한 후, 영화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젬베 소리는 멎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화가 완전히 끝나면 젬베 소리도 영영 안녕일까? 그렇지 않다. 이제는 관객들이 젬베를 두드릴 차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