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만난 우쿨렐레

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맛있다…” 밀가루 배달을 온 뽀얀 청년. 잠겨 있지 않은 대문을 열고 부엌에 들어와 임무를 완수했지만, 바로 떠나기 아쉬웠다. 집주인의 환상적인 요리솜씨를 알고 일부러 만나러 온 터다. 조심조심 둘러보던 그는 작은 냄비에 담긴 생선조림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몰래 맛을 보기에 이른다. 맛에 감탄하던 순간, 갑자기 등에 느껴지는 통증에 놀라 뒤돌아보니 자그마한 할머니가 딱총을 치켜들고 경계하고 있다. 일순 흐르는 긴장은 할머니의 눈길이 밀가루 포대를 스치면서 풀린다. 할머니는 딱총으로 위협하며 “그거, 고양이 밥이야”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청년은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한다. “엄청 맛있어요” 맛있다고! 그 기분 좋은 말에 할머니가 아까와는 달리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거, 고양이 밥이에요”라고 해본다. 다시 “엄청 맛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홀로 살며 사람 밥 대신 고양이 밥만 해왔던 할머니는 매일 라면만 먹고 산다는 청년에게 저녁마다 밥을 해줄 테니 찾아오라고 했다. 고양이 밥을 먹고도 “엄청 맛있어요”라고 두 번이나 말해준 그에게, 그녀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진진

지난주 목요일 개봉한 일본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의 첫 장면이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하와이의 호노카아 마을을 배경으로 소녀 같은 할머니 ‘비이’와 매일 그녀의 요리를 먹으러 찾아오는 대학생 ‘레오’의 이야기다. 비이는 예기치 않게 나타난 청년 레오에게 설레는 마음을 느낀다. 50년 만에 찾아온 감정에 비이는 순수하게 기뻐하고, 질투하고, 감사한다. 한편 레오는 그런 비이의 마음을 알 리가 없다. 그는 영화관에서 잡일을 하며 여유로운 하와이 생활을 즐길 뿐이다.

<하와이언 레시피>는 영화의 모든 요소를 동원해 서로 다른 포물선을 그리는 둘의 감정선을 섬세히 묘사한다. 예를 들어보면, 레오가 일하는 영화관에 자주 놀러오는 뚱뚱한 소년이 있다. 비이가 레오를 만나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할 때는 우쿨렐레로 발랄한 곡을 연주하던 소년이, 레오의 상사 바즈 할아버지가 팔을 다쳤을 때는 시무룩하게 발밑만 쳐다본다. 레오가 영화 상영에 도전했다가 실패할 때는 떨어지고 망가진 물건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뿐만 아니라 영상과 음악도 섬세하다. 하와이의 탁 트인 풍경,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의 모습, 감각적인 소리 덕분에 영화관을 나설 때 유쾌한 기분에 젖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고작 세 번 등장한 우쿨렐레에 왠지 마음이 쏠리더라고 하면 과장일까. 우쿨렐레는 작은 기타 모양의 하와이 전통 악기다. ‘벼룩’이라는 뜻의 이름답게 톡 튀는 쾌활한 음색을 가졌다. 가끔 등장하는 우쿨렐레는 뚱뚱한 소년의 팔에 안겨 간간히 통통거리는 소리를 들려줄 뿐이지만 신기하게도 존재감이 뚜렷하다. 영화의 감성을 그대로 닮아있는 악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비이는 딱총을 가지고 다니고, 바즈의 팔 깁스에 장난스런 낙서를 하는 발랄한 할머니다. 우쿨렐레의 귀여운 외관을 연상시킨다. 장조의 밝은 노래에 어울리는 우쿨렐레의 음색은 하와이의 시원한 바람과 맑은 햇살과도 닮았다.

Ⓒ진진

특별한 경험을 통해 그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던 사물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우쿨렐레라는 악기가 마치 하와이를 압축해 놓은 물건 같다고 느끼는 순간, 이 순간이 우리가 여유와 유쾌함을 상징하는 우쿨렐레에 반하는 순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