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영훈 기자 (yhc0821@skkuw.com)

한창 시끄러웠다. 대학에 입학한 후 겪었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학생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오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학보사였고, 대학에 들어간 후 멋지게 캠퍼스 곳곳을 누비면서 취재하는 모습을 꿈꾸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개강 후 설레는 마음으로 개강호 성대신문을 읽고 싶어 배포대를 찾았을 때, 그곳에 떡 하니 놓여있는 파업 문구는 적잖은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일순간 학창시절 기자생활을 하면서 캠퍼스 라이프의 낭만을 만끽하겠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학보사 기자들은 하루하루를 치열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데 내 상상의 나래는 다분히 학보사 기자로서의 고민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보사라는 존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성대신문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성대신문은 과도기를 맞이하면서 성장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묘하게도 성대신문이 이번 일을 이겨낸다면 새롭게 그 태를 탈바꿈할 것이라는 기대감 같은 것이 샘솟았다. 그리고 그 과도기를 거쳐 새로워질 성대신문사의 그 현장에 참여하고 싶었다. '성대신문사는 5학점짜리' 라는 주변의 만류는 나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성장통을 앓고 있던 신문사 내부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그래도 수습기자 트레이닝은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대학언론의 미래를 고민하고, 성대신문의 기존 지면에서 찾았던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리고 대학언론이 보다 많은 학우들에게 읽히고, 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기를 갈구했던 이야기들을 현실화하겠다고 다짐했다. 8주 동안 어느 새 진해진 수습기자들 사이의 유대감은 성대신문의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수습기자 딱지를 뗄 무렵 성대신문이 재발간되고, 업무다운 업무가 주어지는 '보도부 준정기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성대신문이 이렇게 바쁜 페이스로 돌아가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과도기를 거친 성대신문은 이번 방중호부터 조금 더 새로워지고, 조금 더 다채로워지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훗날 언론학자가 되든, 일간지 기자가 되든, 혹은 다른 일을 하든 사회생활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모든 것을 즐겁게 채득하고 있다.

성대신문처럼 나도 일생에서 하나의 변화를 겪었다. 19세에서 20세로 넘어가는 시기, 내게는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자유가 주어졌다. 어떻게 해야 알찬 일상을 보낼 것인지, 어떻게 해야 좋은 친구들을 사귈 지, 연애하고 싶은데 용돈은 어떻게 벌 지... 그 때의 고민을 나열해 보라면 끝도 없다. 가치관 차이로 부모님이랑 참으로 많이도 다퉜다. 그 때 나도 '탈바꿈'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뭘 해야 할 지 모르고 방황하던 나는 당시의 성대신문을 보고 어떤 동질감을 느꼈나 보다. 그리고 성대신문을 꽉 끌어안고서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이제 보도부 준정기자가 된 내 앞에는 두 가지가 보인다. '불나는 일정'과, 학내 사안을 취재하러 뛰어다니면서 튼튼해질 다리. 하지만 성대신문과 함께 성장통을 겪은 입장에서 불평할 입장이 아니다. 성균관대학교의 주체로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의미있는 경험으로 남을 것이고, 알찬 일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앞으로도 성대신문을 안고 있는 팔을 놓을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