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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설화의 한 종류이다. 설화는 구비전승되는 허구의 이야기로 신화, 전설, 민담을 포함한다. 그 중 신이나 영웅의 행적을 다룬 이야기를 신화라고 한다. 신화에는 민담적 요소, 역사적 요소가 많이 뒤섞여 있어 민담·전설과 완벽히 구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일관된 세계관,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지명 등 나름의 구체적이고 확고한 체계를 갖춘 일련의 이야기들을 신화라고 한다.

신화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주변 세계를 설명하려는 인간 심리의 산물이다. 신화는 원초에 있었던 일로 자연, 인류, 문화의 상태를 설명하고 이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모든 신화는 기원신화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원적 성격 때문에 신화에는 그것을 낳은 문화의 세계관이 표명되어 있다. 지리적 요소, 인종적 요소 등에 따라 신화들은 그 세계관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인다.

 

문화가 그린 그림, 신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신화는 여러 신화 중 가장 먼저 형성됐다. 메소포타미아는 평야 지대기에 이곳에 위치한 국가는 침략과 정복에 많이 노출됐다. 이런 안정적이지 않은 환경이 사후세계보다는 현실의 향락을 중시하는 신화를 낳았다. 수메르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이 사랑과 성적 매력과 전투를 상징한 이난나 여신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로마 신화의 베누스 등은 이난나의 수많은 변용 중 하나고, 이난나와 뚜렷한 관계는 없지만 게르만 신화의 프레이야처럼 다른 신화에도 사랑을 상징하는 여신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이난나 여신처럼 주체적이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들은 아니었다. 선사 시대에는 여신 숭배 풍조가 강했지만, 점차 도시문명이 발달해 가면서 남신이 여신의 자리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수메르 신화는 9천여 년 전 탄생한 가장 오래된 신화이기 때문에 여신의 지위가 높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집트 신화는 수메르 신화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지만 비교적 고유한 신화체계를 큰 변동 없이 유지했다. 이집트는 사막에 둘러싸여 타민족의 침입이 적었기에 강력한 전제왕권 아래 신화 체계를 종교로서 확고하게 정립해 나갈 수 있었다. 이들은 사후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은 그 신화가 속한 문화권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안정적인 전제국가의 통치 아래 평생 노동하며 살아가던 이집트인들은 사후의 행복을 꿈꾸었고, 수시로 변하는 평야 도시국가의 정세아래 살던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자유분방하게 현세의 쾌락을 추구했다. 자연과 싸우던 바이킹, 게르만 족은 전투에서 죽어야만 신들의 궁전에 초대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한편 상업에 눈이 밝은 그리스인들은 사후세계에 큰 관심이 없었다.

여러 문화권의 신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신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의 신을 악역으로 차용하기도 했다. 수메르 신화가 아카드, 바빌로니아 신화로 그대로 이어지고 히브리 설화에도 흔적을 남긴 것이 공유의 예이다. 한편, 페르시아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는 인도에서는 요물이고, 거꾸로 악마였던 다에와는 인도에서 신이다. 별다른 문화적 접점 없이도 오랜 세월동안 비슷한 신화를 유지해 온 예도 있다. 중국 창세신화와 게르만 창세신화가 이 경우다. 중국 신화에는 태초에 혼돈의 상태에서 태어난 거인 반고가 죽어 그의 몸이 세계를 구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게르만 신화에서도 신들이 무의 세계에 나타난 거인 이미르를 죽여 그 시체로 세계를 창조한다. 칼 융은 이처럼 신화소의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것은 인류가 집단적 무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예술에 녹은 신화, 일상에 스민 신화

신화는 보편적인 정의의 개념, 즉 선과 악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생겨나기 이전에 형성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신화의 세계는 윤리적 규범에 구애받지 않은 인간의 본능과 상상력, 무의식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장이 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신화가 인간의 내면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안내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현대문화와 신화>의 저자 표정옥은 “신화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사유의 공분모”라고 했다. 한 시대, 한 문화권이 공유하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신화가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며 각종 예술의 원형이 되기도 하고, 일상생활의 기초가 되기도 하며 인류의 문화적 풍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신화가 문화예술의 원형으로서 기능한 대표적인 예로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 있다.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 그가 만든 연극들은 신화 속 이야기에서 원형을 차용한 경우가 많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근원신화를 갖고 있다. 바로 바빌로니아 신화 속 ‘피라모스와 티스베 설화’이다. 옛날 바빌로니아에 살던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애틋한 연인관계였다. 그러나 집안끼리의 불화로 그들의 만남은 벽에 부딪힌다. 담벼락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몰래 사랑을 속삭이던 그들은 결국 사랑의 도피를 약속한다. 약속 장소에서 피라모스를 기다리고 있는 티스베 앞에 느닷없이 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몸을 피했는데, 그때 땅에 떨어진 베일을 사자가 피투성이 입으로 물어뜯어 놓았다. 찢긴 베일을 발견한 피라모스는 티스베가 죽은 줄 알고 자살을 하고, 티스베도 그를 따라 죽는다. 세기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도 피라모스와 티스베라는 신화적 원형이 토대가 됐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에게 묵직하고 처절한 철학적 고민을 던져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로부터 원형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신화 속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신탁에 따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운명을 지녔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아들이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끼고, 아버지에 대해 질투와 혐오를 갖는 경향을 말한다. 햄릿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의 애착과 의붓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증오가 극의 갈등을 이끌어 나간다.

신화는 우리 삶 속 곳곳에 알게 모르게 녹아있기도 하다.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의 기원 또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헤라클레스가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 개최한 달리기경기가 최초의 올림픽이라고 설이 있다. 신에 대한 제사의 기능을 했던 올림픽은 이후 도시 간, 국가 간 화합의 장으로 변모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아킬레스건’과 같이 신화 속 인물 이름이 일상 언어에서 쓰이고, ‘나이키’처럼 상표명에 쓰이는 등 신화와 우리 삶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이처럼 신화는 예술 속에서, 또 일상 속에서 원형으로서 살아 숨 쉬며 인간의 내면세계를 깊고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