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금지가요왜사>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금 누군가가 당신의 입을 막는다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을까? 박

정희 정권 그때 그 시절에는 검열이란 억압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연극 <금지가요왜사>는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그 시대 사람들의 심정을 현대인의 마음속에 아로새긴다.

연극은 군대를 연상시키는 초록 그물로 둘러싸여있었다. 어눌하게 혼자 덩그러니 걸린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은 무대를 삭막하게 만든다. 등 돌리고 떨어져 있는 책상 사이로 함 대위가 뚜벅뚜벅 걸어와 이야기한다. "절대 정치적 의도는 없습니다. 우리 연극의 존재 이유는 암울했던 가요계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입니다."라고 연극에 앞서 연극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무대는 주로 윤 소위와 조 중위가 노래를 금지할지 말지 실랑히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상부에서는 국가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만든 노래를 무조건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윤 소위는 그 명령에 찜찜해한다. 자신을 비롯해 모두가 좋아하는 노래를 금지하기위해 억지스러운 핑계를 만들라니. 윤 소위는 야유도 해보고 울상도 지어보지만, 조 중위는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금지 사유를 만든다. 그는 조영남의 노래 <최 진사댁 셋째 딸>을 통금위반죄, 주거침입죄, 사행활침해죄, 공무집행방해죄 등 누가 들어도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금지한다. 그리고 외래어 순화를 위해 그룹 <어니언스>를 <양파>로 바꾸고 미풍양속을 위해 짧은 치마를 누비 치마로 바꾸라는 등 가요를 탄압한다. 하지만 정작 박정희 대통령은 금지한 노래 <동백아가씨>를 즐겨 부른다니, 이 무슨 모순인가. 가요를 금지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자 점점 조 중위도 자기 일에 회의감을 느낀다. 연극의 백미는 연기자들이 중간마다 금지곡을 구성지게 부르는 장면들이다. 노래를 들을 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그 당시 가수들이 품은 가숨 속 울분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얼마나 부르고 싶었을까.

검열해야 할 곡을 기다리는 도중 현대 가요앨범이 가득 들어있는 소포가 잘못 배달된다. 그들은 앨범을 하나씩 꺼내면서 한마디씩 한다. "표지 모델이 옷을 덜 입었어!", "그룹 이름이 왜 백두산이야. 한라산으로 바꿔!", "노래 제목이 <다 줄거야>라고?뭘 다 준다는 거야? 음담패설이네!" 노래를 금지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그 당시엔 발매되자마자 금지되는 노래들을 지금은 마음 놓고 부를 수 있다. 확실히 표현의 자유가 좀 더 보장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검열이 억지스럽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로 가사에 '술'과 관련된 어구가 있어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되었던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이 있다. 술 때문에 애꿎은 노래가 청소년유해매체로 선정돼야 한다면, 청소년들은 술이란 단어를 써도 안 되고 진열장에 있는 술도 가려야 하지 않을까?

검열은 어느 시대나 필요하다. 타인의 사생활을 유출한다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정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연극<금지가요왜사>와 같이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검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검열관조차도 자신이 하는 일에 자괴감을 느낄 정도면 검열의 수위가 그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것이 틀림없다. 물론 여기에 절대적인 검열의 기준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로 정권을 비판하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주장은 사회에 필요한 요소다. 이런 부분까지 검열하는 행태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