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210 '보통사람' 김웅용이 사는 모습
IQ 210 '보통사람' 김웅용이 사는 모습
  • 정지은 기자
  • 승인 2012.09.11 13:33
  • 호수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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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 IQ 210 충북개발공사 김웅용 처장

1세 때 한글과 천자문을 뗐다. 4세 때 미적분을 풀었다. 만 4년 8개월 때 미국전문가들이 측정한 그의 IQ는 210이었다. 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IQ로 기네스북에 등재된다. 8세가 되던 1970년 청강생 자격으로 콜로라도 대학 유학길에 오른다. 이후 그곳에서 핵/열·물리학 석·박사 과정을 밟는다. 11세에 미국항공우주국 NASA의 연구원이 됐다. 그러나 몇 년간 연구원으로 지내던 그는 1978년에 돌연 한국으로 귀국한다. 카이스트에 진학하려 했으나 초중고 졸업장이 없던 그에겐 녹록지 않았다. 초·중·고를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체력장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가 그를 ‘실패한 천재’라 명명하는 언론과 마주친다. 재수 끝에 서울에서 버틸 수 없다고 느낀 그는 일부러 안면부지의 충북으로 간다. 충북대에 진학해 토목공학과를 전공한다. 석·박사를 그곳에서 보내는 동안 친구를 사귀고, 아내도 만났다. 이후 여러 대학 강단에 섰다. 한 때 교수를 꿈꿨지만 ‘천재’인 그에게도 우리나라의 학벌 만능주의는 영향을 미쳤다. 지방대를 나온 그가 교수가 되기란 쉽지 않았다. 2006년 충북개발공사가 생기자 취직했고 지금은 사업처 처장을 맡고 있다.
 
 
 
 
 
지민섭 기자 jms2011@
 
 
 
■ NASA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돌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NASA에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행정가가 모든 것을 조정했다. 난 수 많은 팀 중 하나에 속해 있었을 뿐이었다. 연구가 비밀리에 진행됐기 때문에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 그냥 시키는 대로 일만 했다. 어릴 때는 그것이 국위선양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견뎠다. 근데 문득 ‘이게 내가 할 일인가’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 즉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 충북대 토목공학과에 진학한 계기는
한국에 돌아와서 체력장을 보는데 언론에서 계속 나를 취재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외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뒤 연구소에 있다가 정신병자가 돼서 돌아왔다고 수군댔다. 정말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그해엔 대학을 못 갔고 재수했다. 고향은 서울이지만 일부러 아는 사람이 없는 충북을 택했다. 이전에 공부했던 기본 물리학의 대부분이 토목공학 쪽에서 실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해당 전공을 선택하게 됐다.
 
■충북개발공사에서 하는 일은
서울의 SH공사처럼 지역마다 광역 단체가 있다. 여기는 충북이라 충북개발공사다. 2006년에 이곳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채로 지원해서 들어왔다. 창단 멤버로 들어와 처음부터 모든 걸 만들었다. 내가 하자고 하면 바로 실현이 됐다. 정말 멋지지 않나. 팀장으로 시작해서 부장을 거쳐 올해 처장이 됐다. 사장과 이사 다음이 처장인데, 사장과 이사는 3년만 계약직으로 근무한다. 그러니 최상의 직장 아니겠나. 60세까지 정년인데 난 지금 50세니까 안정적인 직장이기도 하다.
 
■ 지난 해부터 올해까지 약 1년 간 MBC 스페셜 촬영에 임했는데
나이도 많이 먹었고 하니 계속 은둔하면서 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처음엔 거절했으나 PD가 여러 번 찾아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담겠다고 하길래 수락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에 대한 뜬소문과 비방을 없앨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시간짜리 방송을 위해 1년 간 촬영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자연도 아닌 인간을 이렇게 오랜 기간 촬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들었다.
 
 
 
■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생각은
1978년에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카이스트에 찾아갔더니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려고 하니 중학교와 초등학교 것까지 봐야했다. 우리나라는 정말 철저하게 증명서를 요구하는 사회라고 느꼈다. 또한 줄 세우는 관습도 정말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갖고 있는 특성을 키워주면 되는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걸 잘 하기를 바란다. 특정 부문이 두드러지게 뛰어나지 않아도 평균적으로 우수하면 그 아이가 일등이다. 두 과목을 80점 맞는 아이와 각 과목을 100점 받고 40점 받는 아이가 있을 때, 100점을 받은 아이는 그 과목에 있어서만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다. 각 영역에서 100점인 아이들을 모아놓아야 하는데 평균 80점인 아이들을 모아놓으니까 창의적인 부분이 발휘가 안 되는 거다.
 
■ 자녀 교육 방침은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질문이 아이들도 공부를 잘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조기교육을 시킬 것 같은가? 어릴 적 기억이 있기에 제 때 공부하면서 나이에 맞는 친구를 사귀는 게 최고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이가 특별히 잘하는 재능의 한 부분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아이한테 계속 일등하면 스트레스 받으니 딱 한 번만 1등하라고 말한다. 한 번 일등을 해보면 아이가 ‘난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하게 돼 자신감을 갖게 된다.
 
■ 야학 교사를 했다고 들었는데
5년 정도 했는데 정말 보람 있었다. 의지를 갖고 배우러 오는 분들이라 절대 졸지도 않고 열심히 수업에 참여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며 배운다. 야학에서 선생 역할을 하는 대학생들도 참 좋았다. 나중에 보니 야학 선생을 했던 이들이 다 사회에서 잘 살고 있었다. 대학생들에게 야학에 꼭 참여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누군가가 내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날 ‘소소한 행복을 찾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대단한 행복과 소소한 행복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늘 행복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힘들더라도 ‘이걸 하면 뭔가 되겠구나’하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일을 해나하는 과정과 그 성취의 기쁨을 합한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일을 하면 절망스러울 뿐이다.
 
■ 요즘 청춘의 아픔을 참고 견디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대학생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대학생들이 자신들을 짓누르고 있는 사회를 깼으면 좋겠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판을 깰 수 있는 것이 대학생의 저력이다. 어른이 되면 실리를 따지게 돼 제약조건이 많아진다. 주눅 들지 말라. 그리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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